산업은행이 리먼브러더스 인수설이 공식 확인된 것은 지난달 20일. 산업은행이 리먼브러더스의 지분 50%를 인수하기 위한 협상을 벌이다가 결렬됐다는 사실이 파이낸셜타임즈 등을 통해 알려졌다. 서브프라임 관련 채권에 상당한 자산이 물려있는 리먼브러더스는 2분기에만 28억 달러의 손실을 냈고 추가 부실은 제대로 파악조차 안 되는 상황이다. 2분기 실적 발표 이후 주가가 20달러 이하로 떨어지면서 국내 언론에서도 '이 정도면 싸다'는 입질이 시작되던 무렵이었다.
그러나 산업은행과 리먼브러더스의 인수협상은 연거푸 난항에 부딪혔다. 리먼브러더스가 가격을 너무 세게 부른다는 추측 보도가 이어졌고 그 뒤 지분을 25%로 낮추고 60억 달러 수준에서 다시 협상을 재개했다는 외신보도가 나왔다. 8월22일 주가가 14.41달러. 주식수가 6억9440만주니까 시가총액은 100억7835만달러에 이른다. 25%를 인수한다면 시장가격으로는 25억 달러면 충분한 셈인데, 이를 2배가 훨씬 넘는 가격에 인수할 계획이었다는 이야기다.
▲ 리먼브러더스 주가 추이. | ||
흥미로운 것은 국내 언론의 반응이다. 리먼브러더스는 이미 가치평가를 하기 어려울만큼 부실이 심각한 상황인데 상당수 국내 언론은 주가가 많이 빠졌으니 살 만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세계 4위의 투자은행을 인수한다는 설레임도 한몫을 했다. 론스타펀드가 내다팔려는 외환은행의 지분 51%가 60억 달러가 넘는데 그 돈이면 세계 4위 투자은행의 최대주주가 될 수 있다는 계산도 나왔다.
▲ 조선일보 8월27일 30면. | ||
김기훈 경제부 차장대우는 이 칼럼에서 "서울과 월스트리트를 직접 연결하는 금융 고속도로가 생긴다"느니 "그러면 한국 금융기관들의 눈높이가 일제히 월스트리트 수준으로 높아지면서 말로만 외치던 금융 세계화의 문이 열릴 것"이라느니 온갖 장밋빛 전망을 늘어놓았다. "일본이나 중국도 하지 못한 일"이라면서 감개무량한 어조로 "만년 금융 후진국인 우리가 요즘과 같은 가격에 세계 일류를 인수할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머니투데이는 한 발 더 나갔다. 머니투데이 박종면 편집인은 1일 "산업은행장 잘못 뽑았다"는 제목의 칼럼에서 민유성 산업은행장을 "투자은행(IB) 업무에 관한 한 국내 최고 전문가"라고 추켜세우면서 "(리먼브러더스 인수는) 미국이 서브프라임 위기로 고전하는 지금이 글로벌 IB를 인수할 수 있는 적기고 장부가 대비 5~10%의 싼 값으로 인수할 수 있는 아주 흔치 않은 기회"라고 평가했다.
박 편집인은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헐값에 팔았다 해서 지금도 당시 담당 국장이 교도소와 재판장을 오가는 현실에서 무슨 열정이 남았다고 이런 일에 리스크를 걸겠는가"라고 반문하면서 "모간스탠리와 블랙스톤에 수십억 달러씩 투자한 데 이어 미국과 유럽의 초대형 IB 인수를 추진하는 중국이 그저 부럽다"고 털어놓았다. 박 편집인은 "앞으로는 낯 뜨겁게 금융허브니 글로벌 IB니 하는 말은 하지 말자"고 비꼬기도 했다.
▲ 머니투데이 9월1일 6면. | ||
결국 산업은행의 리먼브러더스 인수는 최종 결렬된 것으로 확인됐지만 그 사이에 리먼브러더스의 주가는 다시 반토막이 났다. 가격이 더 낮아졌으니 이제는 더 매력적인 협상을 할 수 있게 된 것일까. 오히려 리먼브러더스는 이제 퇴출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와 있다. 자칫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으면 세계 최대의 부실을 끌어안고 함께 침몰하는 끔찍한 사태를 맞게 됐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언론의 무분별한 한탕주의를 경계해야 한다는 훌륭한 교훈을 얻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