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이사회가 8일 오전 정연주 사장에 대한 감사원의 해임 제청 안을 논의, 결정할 예정인 가운데, 전날(7일) 밤 서울 여의도 KBS 앞이 경찰의 공권력에 먼저 초토화가 됐다. 이날 '공영방송을 지키겠다'며 평화롭게 촛불문화제를 이어가던 시민들과 언론단체 대표들이 순식간에 경찰에 강제 진압 연행됐고, 이는 이명박 정부의 일사불란한 언론 장악 통제 시도의 한 단면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축구 경기' 보다가 10분 만에 강제 해산

   
  ▲ 현재 KBS이사진 11명은 친정부성향과 정 사장해임에 반대하는 이사가 7:4로 나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범국민행동이 촛불문화제가 열리기 전 KBS사옥 앞에 게시한 이사들의 사진. 이치열 기자 truth710  
 

   
  ▲ 경찰이 7일 밤 KBS사옥 앞에서 촛불문화제를 마치고 시민들과 베이징 올림픽 한국 대 카메룬 축구경기 길거리 응원전을 펼치던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을 강제연행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7일 밤 KBS 앞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서 경찰의 강제 진압 ·해산은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방송장악·네티즌탄압 저지 범국민대책위' 주최로 열린 촛불 문화제가 1부 행사를 마무리짓고 밤 9시50분께 한국과 카메룬과의 올림픽 축구 예선 경기를 보며 거리응원으로 전환되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밤 10시 정각을 기해 먼저 이철성 영등포경찰서장이 앞장서 경찰들이 집회 맨 앞줄에 앉아 있던 범국민대책위 지도부와 국회의원들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곧 이어 뒤쪽에서 축구 경기를 보던 참가자들과 길 건너편 인도에 있던 참가자들이 무차별로 강제 해산, 연행됐다. 사지가 들려나가는 이들 가운데는 고령의 노인들도 보였다. 불과 10분만이었다. 밤 9시20분께 집회 해산을 요구하는 첫 경고방송을 보낸 경찰이 불과 40여 분 만에 물리력을 동원한 강제해산에 들어간 것이다.

강제연행, 범국민대책위 지도부 겨냥

이날 밤 10시 반께, 경찰은 여경들에 둘러싸여 고립되어 있던 지도부들마저 연행하기 시작했다. 맨 앞에 앉아있던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이 먼저 들려나갔다. 성유보 범국민대책위 상임위원장도 들려나갔고, 정청래 전 의원도 들려나갔다. 한 경찰 간부가 "저 사람이 언론노조 위원장이야?" 라고 재차 확인하기도 했다. 사지가 들린 채 연행되는 최 위원장을 보고 항의하던 박성제 언론노조 MBC 본부 위원장도 뒤쪽에서 목을 낚아 채인 채 순식간에 전경들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 촛불문화제가 끝나고 KBS사옥 앞 인도에서 베이징 올림픽 축구경기 한국 대 카메룬전 거리응원을 펼치던 시민들을 둘러싼 경찰들은 22시 30분경 강제연행을 시작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KBS 앞에서 열린 평화 문화제는 경찰의 강제해산 시작 후 30여분 만에 아수라장이 됐다. 8일 아침 예정된 KBS 이사회를 앞두고 경찰 공권력의 극에 달한 모습을 바라보며 남겨진 참가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특히 범국민대책위 지도부들을 겨냥한 조직적인 강제연행에 남겨진 사람들은 허탈함과 당혹함을 감출 수 없어했다.

KBS 사장 몰아내기에 공권력 남용

"부당한 'KBS 사장 몰아내기'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이 두려우니 이렇게 공권력을 남용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KBS 사장을 바꾸기 위한 시도 자체가 무리함을 반증하는 것 아닌가".

자리 그대로 앉은 채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당혹스럽고 상기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지금 대한민국 경찰들 눈에 보이는 것은 이명박뿐인 것 같다. 국민을 위한 '공권력'이 아닌 개인을 위한 '사권력' 뿐이다. 내일 아침 경찰 폭력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겠다."

실제 두 달 가까이 KBS 앞에서 촛불문화제가 이어져왔으나 폭력적인 상황은 극히 일부였을 뿐더러 경찰에 의한 강제진압이 이루어진 일도 없었다. 결국 내일 예정된 이사회를 원천봉쇄하고 해임안 '날치기' 의결을 위한 경찰 공권력의 '자발적'이고 '과도한' 봉사라는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검·경·감사원·국세청 국가기관 총동원 '군사작전' 방불

비단 경찰 공권력만이 아니다. 실로 이명박 정부의 언론 탄압에 국가 권력기관은 조직적이고 일사불란하게 읍소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KBS 정연주 사장 해임 건만 하더라도 검찰, 감사원, 국세청 등 국가기관이 총동원되어 '언론 장악' 시나리오에 충견이 됐다.  
 
"이건 청와대의 총 지휘라고 밖에 볼 수 없다"

7일 밤 경찰의 강제진압 직후 최문순 민주당 의원은 "감사원이 한 달여 만에 졸속 감사 결과를 내놓더니 곧바로 KBS 이사회가 이를 안건으로 받아 안았다. 경찰은 내일 이사회를 원천봉쇄하기 하기 위해 물리력을 동원해 대책위 지도부와 시민들을 과도하게 진압했다. 국가 권력기관들이 일정한 지휘 통제 하에 시기를 딱딱 맞춰가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정확한 계산 속에 마치 군사작전처럼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 놀랍다"고 말했다.

최 의원은 "이 상태로 이사회가 정연주 사장 해임 제청안을 날치기 통과시키면 결국 공은 대통령에게 넘어가게 될 것"이라며, "내일 당장 청와대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 오후 7시 경부터 시작된 촛불문화제 내내 불이 꺼져 있던 KBS사옥은 경찰의 연행이 마무리 될 무렵, 기다렸다는 듯이 환하게 불을 밝혔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KBS 이사회 '해임 제청안' 가결 가능성 높아

   
  ▲  KBS 사옥을 원천봉쇄한 경찰. 촛불문화제에서 노회찬 전 의원은 격려사를 통해 "현 정권은 검찰, 감사원, 경찰 등 군대만 빼놓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방송장악을 시도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동을 계속한다면 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같은 종말을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이치열 기자 truth710@  
 
KBS 이사회는 8일 오전 10시부터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제1회의실에서 임시이사회를 연다. 안건은 '감사원의 해임요구에 따른 해임 제청 및 이사회 해임 사유에 따른 해임 제청안'으로, 이 자리에서 감사원의 정 사장에 대한 해임 요구를 수용할지 결정할 예정이다.

일부 이사들은 "감사원에 KBS 사장에 대한 해임 제청 권한이 없어 안건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반발하고 있다. 한 이사는 "일방적인 표결에 붙여질 경우, 찬반을 묻는데 참여할 생각이 없다. 안건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데 무슨 표결인가. 논의하고 항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추천 이사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상황에서 해임 제청안이 가결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해임 제청안이 가결될 경우 결국 공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넘어가게 된다. 초법적 결정이라는 '무리수'는 여전히 안고 가는 셈이다.

"언론인에 대한 이런 탄압, 87년 이후 처음"

KBS에 대한 압박이 긴박하게 돌아가는 며칠 사이, YTN 구본홍 사장도 'KBS 시나리오'에 발을 맞추듯 '기습 출근'과 '2박 3일' 작전을 구가하며 동시에 직원들에 대한 '징계'라는 강수를 두고 버티기를 하고 있다. 

최문순 의원은 이날 경찰의 강경 진압을 보며 "87년 이후 처음인 것 같다"고 말했다. "몇 번의 파업이 있긴 했지만, 언론사들에 대한 공권력이 이 정도는 아니었다"는 얘기다. 언론인들이 무차별 강제 연행되는 이날 밤, 8일 오전 벌어질 초유의 공영방송 사장 해임이라는 언론 장악의 예고편이 드러났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