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캄한 산 중턱에 홀로 앉아 시가지를 가득 메운 촛불의 행렬을 보면서, 국민을 편안하게 모시지 못한 저 자신을 자책했다.” 지난 6월19일 이명박 대통령의 청와대 특별 기자회견은 국민의 ‘감성코드’를 자극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뼈저린 반성’을 다짐했다. 회견문은 중앙일보 정치부장과 논설위원을 지낸 김두우 청와대 정무2비서관의 작품이었다.

   
  ▲ 한나라당 이사철(사진 오른쪽) 의원, 민주당 강기정 의원이 29일 열린 쇠고기 국정조사특위에서 PD수첩 관계자의 증인채택 문제를 놓고 의사진행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민들은 ‘광우병 괴담‘에 몸을 숨긴 정부에 맞서 5월2일부터 한 달이 넘도록 촛불을 들었다. 대통령 특별 회견은 정부정책과 국정 기조의 변화로 이어질 것이란 기대를 낳기도 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지방의 군 휴양지에서 휴가를 보내던 7월29일 정부·여당은 ‘광우병 괴담’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다.

이 대통령이 특별 기자회견에서 국민에게 고개를 숙인 지 40일 만이다. 검찰은 29일 MBC ‘PD수첩’이 보도한 광우병 쇠고기 위험성은 제작진이 왜곡했거나 의도적으로 편집했다는 내용의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광우병에 대한 국민 우려는 검역주권을 내준 정부 책임이 아니라 MBC라는 방송사의 한 시사프로그램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검찰의 이러한 발표는 여당의 행보와 발을 맞추는 모습이다. 국회 쇠고기 국정조사는 한나라당의 PD수첩 관련자 출석 요구 논란으로 파행이 이어졌다.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29일 원내 대책회의에서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공포와 괴담이 사실인지도 밝혀서 국민에게 정확하게 정보를 전달하는 것도 이번 국정조사의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국정조사로 한미 쇠고기 협상의 의혹을 풀어주길 기대했던 이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본말이 전도된 여당의 태도에 대해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는 “국정조사 특위 첫 회의부터 한나라당은 진실규명보다는 정부 감싸기에 바빴다”고 비판했다.

여당과 검찰 논리대로라면 MBC의 한 시사프로그램은 3개월 가까이 국민이 촛불을 들도록 선동했다는 결론에 이른다. 실제로 김정권 한나라당 공보부대표는 이날 PD수첩을 “광우병 괴담의 진원지”로 규정했다.

이와 관련해 서울신문은 이날 1면에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중·고생 800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10대 청소년 중 71%는 자발적으로 참여했다고 답변했다. 촛불집회 주관단체의 권유 때문에 참여했다는 이들은 1%에 그쳤다. 쇠고기와 촛불집회 관련 정보 습득 경로는 51%가 인터넷 웹사이트라고 답변했고 방송은 17%로 조사됐다.

촛불집회에 정치적 배후가 있다거나 PD수첩이 국민을 선동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민주당 언론장악저지대책위원회는 29일 성명을 통해 “내용이 많았지만 결국 검찰이 한 말은 자료 공개 요구나 공개 해명 요구였다. 도무지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내용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면서 “검찰은 혐의를 입증할 자신이 없으면 지금이라도 ‘혐의 없음’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수사를 종결하기 바란다”고 주장했다.

박승흡 민주노동당 대변인은 “의혹 지피기 수사에 불과했다. 검찰의 과잉수사이자 검찰권 남용”이라며 “PD수첩을 왜곡방송으로 규정해 공격하려는 전형적인 방송 길들이기”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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