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를 제약하는 헌법 조항을 고치자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뉴라이트전국연합 대표 출신의 이석연 법제처장의 16일 한 세미나에서 한 발언이 발단이었다.

이 처장이 “현행 헌법 규정 중에는 자유시장경제라는 헌법의 기본원리를 제약하는 규정이 많이 산재해 있다”면서 “개헌 과정에서 경제에 대한 국가관여를 규정한 조항을 자유시장경제 원리에 맞게 손질하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헌법 119조 2항은 경제에 대한 국가 관여를 규정했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조항”이라며 “헌법 126조는 국가가 민간경제에 관여하려면 법률이 정한 절차에 의해서만 가능하도록 했다”는 게 이 처장의 논리다.

   
   
 
더 어처구니 없는 건 보수·경제지들이 이 황당무계한 주장을 비중있게 인용할 뿐만 아니라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매일경제는 제헌절인 17일 사설에서 “현행 헌법은 국가가 개인의 경제적 자유를 제한하고 시장을 규제·조정할 수 있도록 사실상 백지위임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는만큼 자유롭고 창의적인 시장경제 발전을 담보하기 위한 집중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도 22일 “시장경제 제약 헌법 조항에 쏠린 눈”이라는 칼럼에서 “시대적 변화에 맞춰 자유시장경제 질서를 침해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일부 조항에 대해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서울경제도 18일 사설에서 “현행 헌법은 물론 각종 법령 등에 정부 개입과 민간 자율을 통제하는 반 시장적 조항이 너무 많은 것이 사실”이라면서 “시장경제에 반하는 조항의 개선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보수·경제지들이 호들갑을 떠는 것과 달리 전문가들의 평가는 냉담하다. 한마디로 상식적이지 않다는 반응이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불필요한 시장 개입과 시장을 제대로 작동시키기 위한 기본 조건을 만드는 것은 다르다”며 “시장경제를 제약해서는 안 된다는 건 최소한의 경기 규칙마저도 없애자는 주장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송호창 민변 변호사는 “무제한의 자유시장경제를 허용하자는 건 17세기로 돌아가자는 건데 이 자유무역의 시대에 최소한의 시장개입마저 없앤다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조국 서울대 법학부 교수는 “명문화 돼 있는 나라도 있고 안 돼 있는 나라도 있지만 사회적 시장경제라는 개념은 세계 모든 자본주의 나라들이 채택하고 있는 개념”이라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법학 교과서만 봐도 이런 주장을 할 수 없을 것”이라며 “신자유주의를 도입했던 영국도 우리나라보다는 훨씬 앞선 복지정책을 실시하고 있는데 우리나라가 복지 과잉이니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니 하면서 비판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덧붙였다.

주요 언론 가운데서는 유일하게 한국일보가 반론을 폈다. 강병태 논설위원은 22일 칼럼에서 “아무리 경제논리를 중시하는 경제학자지만 미국을 비롯한 서구 민주주의 체제의 역사적 경험 및 현실과 동떨어진 논리는 도저히 존중할 수 없다”면서 “좌우의 극단적 주장이 세상을 마냥 어지럽히는 현실이지만 국가 기본질서를 다루는 개헌 논의만은 이론과 현실로 검증된 틀을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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