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에 개봉된 영화 <넘버 3>는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기억되고 있는 추억의 명화다. 특히 배우 송강호의 독특한 어투가 강한 인상을 남겨서 지금도 재미삼아 ‘나 xxx야’라는 말을 쓰는 이들이 있고, 이것이 여전히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요즘 인터넷을 둘러싸고 말들이 오가는 중에 그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두목에게 각별히 아부하는 태주(한석규의 역할)가 인터넷으로 조직원을 모으자는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다. 옆에 있던 재떨이(박상면의 역할)는 인터넷과 인터폴을 혼동하기도 한다.

당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당대의 화제들을 잘 그러모아서 관객들에게 제시함으로써 공감대를 이끌
어내야 하기 때문에, 그것이 낯선 것이었다면 관객들은 분명 재떨이의 바보 짓에서 웃지 않았을 것이다. 이게 벌써 10년 전이다. 지금 인터넷은 휴대폰 못지 않은 생활필수품이다.

2008년 7월11일 대통령은 18대 국회 시정연설에서 “정보전염병(infodemics)”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그것은 천박한 인식을 가진 하수인들의 머리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 단어가 들어간 부분을 인용해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 사회는 무형의 사회적 자본인 신뢰의 축적이 크게 부족합니다. 법과 질서가 바로 서지 않으면 신뢰의 싹은 자랄 수 없습니다. 정부는 법질서를 지키는 사람에게 더 많은 자유와 권리가 돌아간다는 원칙을 확고하게 세워가겠습니다. 선진사회는 합리성과 시민적 덕성이 지배하는 사회입니다. 감정에 쉽게 휩쓸리고 무례와 무질서가 난무하는 사회는 결코 선진사회가 될 수 없습니다. 부정확한 정보를 확산시켜 사회불안을 부추기는 ‘정보전염병’(infodemics)도 경계해야 할 대상입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관용과 배려의 정신이 뿌리내려야 합니다.”

이 말들이 얼마나 자기기만에 가득 찬 것인지는 새삼 지적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속된 말로 ‘네이버 댓글’ 수준의 비난이면 충분하다. 말이 나온 김에 이야기하는데, 정부가 하는 일이 깊은 속내를 가지고 단단히 만들어진 것이면 이런 칼럼을 쓰는 나도 많이 생각해보고 분석한 글을 써서 독자들에게 감탄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겠지만 날이면 날마다 사고 치고 문제 일으키는 것들의 내용이 너무 뻔한 것들이어서 분석할 여지도 없고 ‘네이버 댓글’ 이상의 것을 내놓기도 어렵다. 그러니 칼럼 쓰는 일이 무척 곤혹스럽다. 그래서 이제는 아예 정부가 하는 일을 비판하는 글은 그만 써야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각설하고, ‘정보전염병’이라는 말은 사태를 생물학적인 용어로써 규정하는 것인데, 이거 누가 영어 실력 자랑한답시고 끼워 넣은 말인지는 몰라도 멀쩡한 나라의 대통령이 국민의 대표기구인 입법부에서 떠들 단어는 아니다. 이런 식의 표현을 즐겨 사용한 이는 나치 독일의 히틀러인데, 그는 유대인을 가리키면서 “기생충”, “질병”, “결핵”이라는 단어를 썼고, 오염을 치유하고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신체를 깨끗이 소독해야 한다”고 했다.

   
   
 
이런 생물학적 용어 사용은 인종주의적 혐오감을 바탕에 깔고 있는 것이고, 정치적으로는 금기시 되는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깔끔하게 쓸어버리고 싶더라도 속으로만 생각할 일이지 밖으로 떠들 일은 아니라는 말이다. 더 궁금한 것이 있으면 닐 그레고어의 ‘하우 투 리드 히틀러’를 참조하기 바란다.

어쨌든 법정전염병인 광우병 때문에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이번에는 인종주의자들이나 쓸만한 ‘정보전염병’을 거론하고 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끝으로 <넘버 3> 포스터에 붙어 있는 광고 문구 두 개를 소개하니 정부 청사 방마다 붙여 두면 수준에 딱 맞겠다.

 “3류인 우리가 자랑스럽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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