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만 명(주최측 추산)의 시민들은 '촛불이 승리한다! 국민이 승리한다!'는 59차 촛불문화제를 마치고 5일 밤 9시부터 행진을 시작했다. 서울 숭례문-명동-을지로를 거쳐 밤 10시20분께 종각 네거리에 도착한 시민들은 조계사를 지나 안국동 삼거리로 향하는 행렬과 다시 광화문 또는 시청으로 흩어져 자율적인 시위 또는 문화행사를 벌이고 있다.

50만 시민 행렬 숭례문-명동-을지로-종로 행진

   
  ▲ 5일 촛불집회장을 찾은 50만 시민 인파. ⓒ언론노조 이기범 기자  
 
10시50분께 안국동 삼거리에선 한 정보과 형사가 아고라 행진 상황을 전화로 보고하다가 시민에 덜미를 잡혀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1000여 명의 시민(유동인구 포함)들이 안국동 삼거리에서 청와대 방향으로 차단된 차벽까지 갔다가 되돌아오고 있는 사이 조계사 맞은편 삼거리 방향에서 '프락치다'라는 소리에 한 시민이 도망치다가 넘어졌다. 황급히 취재진과 시민들이 쓰러진 사람의 주변을 에워쌌다. 시민들은 "신분증을 보자"며 요구했고, 의료봉사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변호사가 상황 파악을 위해 달려왔다. 재빨리 예비군 시민들이 주위를 둘러싸 시민들의 폭행이나 불필요한 몸싸움은 없었다.

   
  ▲ 5일 촛불승리 선언의 날 집회에 모인 시민들. ⓒ언론노조 이기범 기자  
 
민변 김광중 변호사의 중재로 그 시민은 '정보과 형사'임이 간접적으로 확인됐다. 주변의 목격자와 시민들에 따르면 그 형사는 안국동 삼거리의 길목에 다음 아고라 회원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자 휴대폰으로 '아고라 회원 몇 명이 가고 있다'며 형사 말투로 보고를 하던 걸 시민이 포착하면서 사건이 발생하게 된 것. 그를 지켜보던 한 시민은 "전화하는 것을 보고 '얘기좀 하자'고 했더니 그 형사가 재빨리 도망쳤다"며 "넘어진 것은 자신이 도망치다가 쓰러진 것이지 시민들이 밀거나 때린 것은 없었다"고 밝혔다.

김광중 변호사는 그 형사의 신분이 경찰임을 확인해주면서 "정보계에서 전화온 것은 분명하고, 경찰이 인계를 받으면서 형사라는 걸 인정했다"며 "그 이상의 확인은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 형사는 시민들이 호위해 종로경찰서 부근까지 데려가 경찰에 의해 119 엠뷸런스로 인계됐다.

안국동 삼거리선 정보과형사 아고라 행진 보고하다 시민에 덜미 '곤혹'

   
  ▲ ⓒ언론노조 이기범 기자  
 
상황을 보고 취재하러 가까이 접근한 중앙일보 김모 기자는 '왜 시민들이 이 사람에게 신분증을 보자고 하느냐' '많이 다쳤느냐'고 묻다가 시민들에게 제지를 받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어디 기자냐'고 물었고, 김 기자는 "중앙일보 기자"라고 답했다. 일순간 시민들은 "중앙일보 기자는 취재하지 마라" "찌라시가 왜 기자라고 하느냐" "우리가 시위한 것을 중앙일보가 제대로 보도한 적 있느냐" 격한 항의를 하면서도, "일단 상황을 봤다고 하니 얘기를 들어보자"고 했다. 김 기자는 "이 사람이 넘어졌는데 시민들이 때리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민들은 "때렸다니, 우리가 때리는 걸 봤단 말이냐. 때린 사람이 없는데 왜 때렸다고 하느냐. 그러니 우린 취재에 응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경찰의 시민폭행 논란도 발생했다. 김화미(46)씨는 이날 집회에 참석했다가 경찰 간부에게 허벅지에 발길질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형사 프락치 사건' 때문에 종로경찰서 앞까지 모여든 기자들에게 김씨는 "오늘 저녁 8시10분께 내가 한 경찰을 쫓고 있었는데, 그 경찰을 호위하던 한 경찰 간부(40∼50대)가 동아일보 앞 청계광장 부근에서 다짜고짜 욕을 하면서 발로 오른쪽 허벅지 위를 찼다"고 말했다.

중앙 기자 "시민이 때리는 것 봤다" 시민들 "왜 때렸다고 하느냐…취재거부" 항의

   
  ▲ 5일 밤 한국은행 앞에서 영화 브이포벤데타 주인공이 쓰던 가면을 쓰고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는 시민들. ⓒ언론노조 이기범 기자  
 
11시40분께 종로에서 광화문 방향의 대로 한 복판에선 10여 명의 시민들이 "YTN 지켜줄게" "최시중은 사퇴하라" "구본홍은 오지마라"라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그 자리에서 구호를 외치던 방승환(47·의상업)씨는 "전부다 한 통속이다. 방송 언론 장악을 통한 대중의 우민화 정책 최전선이 바로 YTN"이라며 "비록 오는 14일 주주총회에서 구본홍 임명을 강행하겠지만 우리가 힘을 보태 노조가 더 힘있게 싸울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종모(38·대안학교 교사)씨는 검찰의 MBC 수사에 대해 "현재 언론이 싸움의 최전선에 있다. 여론 장악을 위한 정부의 시도 자체가 주도면밀히 이뤄지고 있다"며 "언론장악을 차단한다는 게 우리 시위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매일 저녁 YTN 사옥 앞에서 촛불시위를 벌이고 있다고 소개했다.

"YTN 지켜줄게" 대로 한복판서 구호 외치기도

앞서 50만 명(주최측 추산)의 시민들은 숭례문을 거쳐 명동으로 돌아 행진하는 과정에서 "조중동은 폐간하라" "조중동은 쓰레기다" "PD수첩 탄압중지" "쥐새끼는 물러나라"는 구호를 행진 내내 반복해서 외쳐댔다.

밤 9시40분께 한국은행 앞에선 저승사자 복장에 흰 가면(영화 브이포벤데타 주인공이 쓰던 가면)을 쓴 30여 명이 일렬로 촛불을 들고 서 있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그 뒤로 폭죽 수십방이 터졌다.

시위대 호위하는 자동차부대

5일 본대회가 끝난 뒤, 밤 8시30분부터 남대문 쪽으로 시위대의 행진이 시작됐다. 촛불을 손에 든 시민들은 ‘이명박은 물러가라’, ‘재협상을 실시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고, 함께 ‘아침이슬’을 부르기도 했다.

이날 오후에 내린 비로 눅눅한 공기가 시위대를 감싼 가운데, 구호에 맞춘 자동차의 경적소리가 경쾌하게 박자를 맞춰주기도 했다. 소리의 발원은 인터넷 포털 ‘다음(DAUM)’의 카페 ‘촛불자동차연합(http://cafe.daum.net/TuningOfKorea)’ 회원들.

이 동호회에서 이날 40~50대에 이르는 차가 광화문으로 몰려 나와 시위대를 ‘호위’했다. 이들은 ‘촛불자동차연합’이란 이름이 쓰인 작은 깃발을 차 앞에 달고, 경적소리와 ‘깜빡이’로 시위대의 흥을 돋웠다.

삼성생명 건물 인근 도로에서 만난 김균영(34·성남 분당구 서현동)씨는 자신을 엔지니어라고 소개하며, “시위대의 맨 뒤에서 서행하며 여기 나온 사람들을 보호하러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뒷자석에 앉은 여성 두 명도 역시 같은 목적으로 나온 카페 회원이라고 설명하며 “시위에 나오는 사람들을 카풀로 데려오고, 또 귀갓길에 카풀해서 데려가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자동차 4∼5대로 열을 지어 시위대의 후미에서 행진에 동참했다. 시청광장에서 가두행진을 시작한 시위대는 남대문에서 명동을 거쳐 안국동을 향해 갔다.

한편 스피커를 든 한 여성이 안국동사거리에서 “지금은 비폭력 무저항을 얘기할 때가 아닙니다. 비폭력 강력저항을 해야 합니다. 청와대로 갑시다!”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지만, 이날 두 시간여 걸린 행진에서 시민들과 전경들이 대치하는 상황은 빚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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