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한 정부는 모든 것을 민영화한다." 노암 촘스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 언어학과 교수의 말이다. 촘스키는 그의 저서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에서 "공기업의 민영화는 공공부문을 민간기업과 다국적 자본에 팔아넘기려는 속임수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촘스키의 분석은 2008년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대대적인 공기업 민영화 또는 선진화 계획의 본질을 정확히 설명해준다.

19일 이명박 대통령의 특별기자회견에서 특히 주목할 대목은 "가스와 수도, 전기 등의 민영화 계획이 애초부터 전혀 없었고 앞으로도 없다"고 밝힌 부분이다. "의료보험 민영화도 계획에 없다"면서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은 "이것은 의도적인, 뭐랄까 악의적인 것으로 보인다"고도 언급했다. 또 "공기업 민영화는 적합한 표현이 아니며 선진화라는 표현이 좋겠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민영화가 곧 선진화인데 민영화는 안 하지만 선진화는 한다는, 도대체 앞뒤가 안 맞는 설명이다. 굳이 따지자면 일부 공기업은 선진화를 하고 가스와 수도, 전기, 의료보험 등은 선진화 조차도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로 해석할 수 있다. 정말 가스와 수도, 전기, 의료보험 전혀 손을 대지 않고 넘어갈까. 그렇다면 그동안 떠돌던 민영화 괴담은 의도적이거나 악의적인, 그야말로 괴담일 뿐일까.

이 대통령은 "공기업 가운데 민간기업 못지 않게 잘하는 공기업도 있다"면서 "정부 보조를 받아 독점적으로 경영하면서 지나치게 방만하다든가, 처우가 균형에 맞지 않게 높아 국민의 지탄을 받는 공기업이 많다"고 지적해 여전히 공기업 개혁의 의지를 꺾지 않았음을 시사했다. "국민의 의사를 물어 경영을 개선할 수 있는 기업은 개선하고 통합할 수 있는 건 통합하고 민영화할 수 있는 건 민영화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이날 이 대통령의 발언을 정리하면 정부가 지난달 발표했던 305개 공공부문 개혁방안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대통령은 "가스와 수도, 전기 등의 민영화 계획이 애초부터 전혀 없었고 앞으로도 없다"고 밝혔지만 기획재정부는 한국전력공사와 한국가스공사 등 공기업 지분을 넘겨받아 지주회사를 설립하고 지분 매각이나 배당 등으로 확보한 자금을 국내외 주식과 채권, 부동산 등에 투자하는, 이른바 한국형 테마섹 계획을 추진 중이다. 공기업의 지분을 정부가 소유하되 경영권만 민간에 넘기는 방식이다.

또한 한국전력의 자회사인 한전KPS나 한국전력기술 등은 여전히 민영화 대상에 포함돼 있다. 한전KPS는 발전과 송전, 변전 등 전력설비 점검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이고 한국전력기술은 수력과 화력, 원자력 발전소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기업이다. 기획재정부는 한전KPS는 내년부터 한국전력기술은 2010년부터 경영권 매각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국남동발전 등 발전 자회사들도 민영화 대상에 포함돼 있다.

물론 정부가 촛불집회 이후 여론을 의식해 민영화 계획을 연기하거나 포기할 가능성도 있지만 "애초부터 계획에 없었다"는 말은 너무나도 뻔한 거짓말이다.

상수도 역시 마찬가지다. 환경부는 최근 미국산 쇠고기 수입 등으로 악화된 여론을 의식해 당초 6월4일로 예고됐던 물산업지원법 입법예고를 잠정 연기했다. 정부가 밝힌 이 법의 입법취지는 "경영 효율화와 서비스 향상을 통해 수돗물 불신을 해소하고 물 산업의 국제경쟁력을 높여 수출 산업화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민영화가 아니라 민간 위탁이고 수돗물값 인상은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 법의 핵심 내용은 164개 지방 상수도를 수자원공사 또는 국내외 민간기업에 위탁하거나 자체 기업화하고 상수도 운영과 공급에 있어 완전 시장 자유 경쟁 체제 도입하겠다는 것, 그리고 이들 기업들이 국내에서 몸집을 키워 해외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제도적, 금전적 지원을 하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지방자치단체가 자발적으로 추진하던 지방상수도 구조개편을 정부 차원에서 밀어붙이겠다는 이야기다.

의료보험은 또 어떤가. 정부는 이미 생명보험회사들에 실손형 의료보험 판매를 허용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시절부터 의료산업 경쟁력 강화를 공공연히 거론했고 새 정부 출범 이후 기획재정부는 민영 의료보험 활성화를 위해 개인 질병정보 공유와 영리 의료법인 허용 등을 추진하기도 했다. 당장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 등으로 가는 건 아니지만 건강보험의 기반을 뒤흔들 정책을 끊임없이 내놓고 있다는 이야기다.

민영화는 안 하지만 자회사는 팔고 한국형 테마섹도 하고 민간 위탁도 하고 민영 의료보험도 활성화한다는 이야기다. 도대체 이게 민영화가 아니라면 뭐란 말인가. 너무나도 뻔한 거짓말인데 20일 주요 언론에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거의 없다.

   
   
 
촘스키의 지적처럼 정부의 진짜 관심은 민영화 과정에서 얻게 될 천문학적인 규모의 매각대금에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정부 출자지분은 납입자본금 기준으로 76조5000억 원에 이른다. 여기에 자산관리공사와 예금보험공사, 산업은행 등이 보유하고 있는 구조조정 기업들의 주식을 더하면 100조 원을 거뜬히 넘어선다. 이 돈은 대규모 감세로 헐렁하게 된 정부 재정을 메우는데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이밖에도 우정사업본부 민영화가 물밑에서 추진되고 있고 천문학적인 적자를 끌어안고 있는 철도 민영화도 풀리지 않는 과제로 진행 중이다. 한국도로공사와 인천국제공항공사, 부산항만공사, 인천항만공사, 울산항만공사 등은 정부가 소유하되 경영만 민영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대한주택보증이나 한국토지신탁, 그랜드코리아레저(외국인 전용 카지노 운영회사), 88골프장 등은 자산매각 등을 검토 중이다.

또한 우리금융지주를 비롯해 대우조선해양이나 서울보증보험, 대한생명, 쌍용건설 등 정부 공적자금이 투입된 기업들의 민영화 방안도 여전히 관심거리다. 정부는 몸값을 올려받기 위해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함하는 블록세일 방식을 선호하지만 이 과정에서 알짜배기 공기업을 사적소유로 전환하는 위험부담이 있다. 공적독점이 사적독점으로 이어지는 가장 극단적인 사례가 바로 외환은행이다.

그동안 줄기차게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 의지를 칭찬해 왔던 보수·경제지들은 갑자기 정부가 "민영화를 계획한 적도 없고 앞으로 계획도 없다"고 딱 잡아 떼면서 머쓱하게 됐다. 한국경제는 이 대통령의 특별기자회견이 있던 날인 19일 청와대 참모의 말을 인용, "한나라당 일부에서 공공기관 개혁 시기를 늦춰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새 정부의 핵심 공약 사항일 뿐만 아니라 이 대통령의 뜻이 확고한 상황"이라며 "만반의 준비는 끝났다"고 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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