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 헌법 1조와 2조. 최근 촛불집회 현장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노래 가사다. 집회에 참석하는 시민들은 이 나라 국정 운영의 핵심 철학을 새삼스럽게 다시 확인하고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만약 선출된 권력이 국민들의 뜻을 배반하고 대의민주주의의 원칙이 추락할 때는 어떻게 해야할까. 지금처럼 광장에 모여 구호를 외치는 것 말고 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7일 새벽 서울 광화문 사거리 앞 촛불집회 현장에서는 처음으로 각목과 쇠파이프가 등장했다. 일부 성난 시민들은 경찰버스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이를 두고 다음 아고라 등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시위대가 청와대로 가야 하는 이유와 갈 필요가 없는 이유를 놓고 거센 격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물론 끝까지 비폭력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러나 정부가 끝내 국민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과연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또 무엇이 있을까.

   
  ▲ 우석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성공회대 외래교수)의 블로그.  
 
이와 관련, '88만원 세대'의 저자인 우석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성공회대 외래교수)이 8일 자신의 블로그(retired.tistory.com)에 올린 글이 화제가 되고 있다. 우 위원은 이명박 대통령을 끌어내릴 수 없다면 한나라당 출신 지방자치단체장부터 끌어내리자는 파격적인 주장을 내놓았다. 기발하고 참신한 인문학적인 상상력을 선보이는 우 위원의 블로그는 네티즌들 사이에서 영향력이 높다.

우 위원은 "현재의 제도에서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성역에 있다"면서 "그렇지만 대통령과 국회의원에 대해서는 국민소환제가 없고 지자체에는 주민소환제가 도입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우 위원의 제안은 "복당녀(박근혜 의원)도, 홍준표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결국 한나라당 그 자체를 내리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경우, 10%의 주민발의로 소환이 가능하고, 서명 받으면 3분의 1 이상이 참여하는 주민투표에 과반수 이상이면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우 위원의 주장은 다소 과격하게 들리지만 충분히 실현 가능한 이야기인데다 주민소환제가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할 많지 않은 직접민주주의 제도 가운데 하나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직접민주주의 제도로는 국민투표와 국민소환, 국민발안 등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국민투표만 도입돼 있고 국민소환 대신 주민소환만 지난해 도입된 바 있다. 대통령은 소환할 수 없지만 지자체장은 소환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권력은 국민에게 있다면서 대통령은 왜 리콜이 안 되나"

헌법 65조에 따르면 국회는 대통령과 국무총리, 국무위원, 그리고 행정 각부의 장이나 헌법재판소 재판관, 법관 등이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경우 탄핵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 국회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의 발의에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이 있어야 하고 특히 대통령의 경우는 재적의원 과반수의 발의와 국회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탄핵소추를 받은 바 있다. 탄핵소추안이 국회 의결을 통과하면 헌법재판소에서 이를 심사하는데 재판관 9인 가운데 6명 이상이 찬성해야 탄핵의 효과가 발생한다.

그러나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이 18대 국회 의석의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걸 감안하면 대통령 탄핵소추는 거의 현실성이 없다고 볼 수 있다. 우 위원이 "국민소환이 안 되면 주민소환이라도 하자"고 제안한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주민소환제는 지난해 7월 도입된 제도로 주민들이 지자체의 행정처분이나 결정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고 판단할 경우 투표를 통해 단체장 선거를 다시 실시하고 선거에 지면 공직을 떠나게 할 수 있는 제도다.광역단체장의 경우 주민(투표권자)의 10%, 기초단체장은 15%의 서명을 받아 주민투표를 청구하고 3분의 1 이상 투표율과 유효투표의 과반수 이상의 찬성이면 해임이 결정된다. 지난해 12월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김황식 하남시장에 대한 주민소환 투표가 진행됐지만 투표자 수가 유권자 3분의 1에 미달돼 부결된 바 있다.

우 위원은 "오세훈 서울시장을 축으로 서울시 한나라당 구청장과 광역의원을 하나의 명부로 같이 서명을 받고 동시에 촛불시위에 대해서 망발을 했던 김문수 경기도지사를 축으로 경기지역의 한나라당 시장들과 경기도 광역의원들을 한꺼번에 끌어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통령의 국정운영 실패를 왜 엉뚱한 지자체장들이 책임져야 하느냐는 질문과 관련해서는 "지금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지방자치 기조는 정당책임제의 정신 위에 서 있고 이 말은 곧  정당이 하나의 주체로서 정책이 잘못되면 책임지겠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 위원은 "주민소환은 발의만으로도 한나라당의 힘 절반을 무너뜨리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81만 명 서명 받아 투표… 최소 135만 명 찬성이면 오세훈 시장 해임 가능"

지난해 12월 대통령 선거 기준으로 서울지역 유권자 수는 805만1696명, 만약 오세훈 서울시장에 대한 주민소환 투표를 끌어내려면 가운데 10%인 80만5170명 이상의 서명을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만만치 않은 일이지만 최근 촛불집회 분위기로 볼 때 아예 불가능한 일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비폭력 기조를 유지하면서 현행 제도 아래서 직접민주주의의 힘을 보여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안이기도 하다. 81만 명의 서명을 받고 269만 명이 투표에 참여하고 이 가운데 135만 명이 찬성하면 최종 해임까지 갈 수도 있다.

다음 아고라 등에서는 벌써부터 이번 기회에 국민소환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쏟아지고 있다. 국민주권수호시민연대(gobada.co.kr)라는 단체는 4월 말부터 국민소환제 도입을 위한 서명운동을 받고 있는데 실명으로 참여한 사람이 16만 명을 넘어섰다. 행정수반의 무능과 독단, 전횡에 대해 15세 이상 국민 30% 이상 발의 또는 유권자 20% 이상 발의를 한 경우에 한해 재신임 국민투표를 진행하고 유권자의 3분의 1이상이 투표와 과반수의 찬성이 나오면 국민 불신임으로 결정, 행정수반이 사임하도록 하자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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