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를 질주하는 미국의 신자유주의를, 촛불시위가 도로 한가운데에서 가로막고 선 의미가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라씨에라(LaSierra) 대학의 신학과 교수 김원일(사진·59)씨. 스스로를 사회주의자, 예수쟁이라고 소개한 그는 안식학기를 맞아 5월초 한국을 찾아왔다가 모두 세 차례 촛불 문화제에 참석했다고 했다.

사회주의가 이미 실패했다는 지적이 있다고 하자, “스탈린처럼 사회주의를 ‘납치’해 간 사람들이 실패한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고, ‘예수쟁이’라면서도 “부시의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아니다”라고 강조하던 그를, 지난 2일 서울 역삼 지하철역 근처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 지난 5월2일부터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직접 참여하고 지켜본 소감이 어떤가?

“쉽게 말해 감동 받았다. 미국에서도 반전시위에 2~3만 명이 모이긴 하지만 이렇게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인 듯하다. 사람들의 함성소리와 촛불이 어우러져 엄청난 영적 에너지를 느꼈다. 31일 문화제에서 내 앞에 선 대학생은 울산에서 왔다고 했다. 국민들의 참여가 굉장히 넓어진 것 같다. 국민들의 안테나도 많이 예리해졌다. ‘야후’처럼 기업이 운영하는 사이트에서도 현장을 전하는 기사 제목에 ‘경찰의 과잉 진압’이란 표현이 등장한다. 경찰의 그런 행위를 일반 국민들이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담긴 것이다. 정부도 함부로 까불다가는 큰 코 다치는 시기가 왔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이런 저항의식을 첨예하게 그대로 유지했으면 좋겠다.”

- 이번 광우병 위험 쇠고기 파동의 문제를 무엇이라 보는가?

“미국에 모든 검역과정을 맡긴 것이나 다를 바 없는데 이건 검역주권을 그냥 넘긴 것이다. 미국을 향한 정치․경제적 종속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은 한국과 FTA를 체결하고, 쇠고기를 수출하고, 그것을 모델로 아시아 시장을 장악한 뒤, 세계로 진출하려 할 것이다.”

-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찬성하는 쪽에서는 미국 사람들도 늘 먹는 고기라고 강조하는데? 

“미국에서는 광우병의 위험성이 사람들 사이에 그렇게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미국에서 쇠고기 안 먹는다. 피할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가급적 먹지 않는다. 병에 걸릴 확률이 낮다는 것이지 질병이 없어진 것은 아니지 않는가? 지금 내 몸에서 잠복기를 거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먼 훗날 광우병에 걸린 사람이 단 1명 나오더라도, 그를 살리기 위해 지금 10만 명이 모이는 것은 정당한 것이다.”

- 집회 현장에서 보수언론을 비난하는 구호들이 눈에 띤다. 시위의 격렬함을 묘사하거나, 배후론을 제기하거나, 시민들이 겪는 불편을 강조하는 식으로 왜곡보도 했기 때문이다. 미국언론은 시위나 파업을 어떻게 보도하는가?

“아버지 부시 때 LA타임스를 봤는데, 걸프전쟁에 반대하는 시위모습을 너무 형편없게 보도해 결국 신문을 끊은 적이 있다. 반전시위를 아예 보도 안 하거나, 미온적으로 싣거나, 편파적으로 전한다. 예컨대 LA광장에 2만 명이 모였다면 카메라 각도를 조작해 군중의 앞에 선 몇 사람만 사진에 담는다. 또 10명이 모인 전쟁 찬성 시위를 나란히 싣기도 했다. 미디어가 시나리오를 쓰는 것이다. 한국보다 덜하지만 마르크스.레닌 세력이 배후에 있다는 식으로 쓰기도 한다.”

- 정치적 집회가 나쁜 것인지 그런 논의도 가능할 것 같다.

“전혀 문제될 게 없다고 본다. 이번 촛불문화제도 정치성이 좀더 들어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쇠고기 이슈는 FTA나 신자유주의 문제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으로 관심이 이어져야 한다. 처음엔 어린 학생들이 문화제를 시작했는데, 그런 면에서 노동자들이 좀더 선두에 나서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본다.”

- 한국에서는 조중동이라 불리는 보수신문의 여론 독과점 문제가 심각하다. 미국언론은 어떠한지?

“미국 내에도 폭스(FOX)같은 악랄한 보수언론이 있다. 리버럴하다고 알려진 CBS나 뉴욕타임스도 기업어용매체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 예컨대 10년 전 의료보험제도 공영화 문제가 불거졌을 때 뉴욕타임스의 보도가 대단히 미온적이었다. 최고 이사진 5명 가운데 3명이 의료보험회사의 주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엔 주류미디어를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고 있고 대안미디어가 뜨고 있는 중이다. 특히 인터넷 미디어가 많은데 기업의 광고를 받지 않고 주류미디어에서 보지 않는 부분을 보도한다. 주류미디어와 싸울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대안미디어이다. 이들이 발전해야 한다. 사회변혁을 위해 대중 속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게 교육과 대안미디어라고 믿는다.”

- 신학 교수이면서 반전 반자본주의 노동자운동을 표방하는 ‘다함께’ 회원이기도 한데.

“정회원은 아니고, 동조자 정도다. 개인적으로 반자본주의, 사회주의를 추구한다. 스칸디나비아 같은 발달된 자본주의, 덜 잔인한 시장주의를 말하는 게 아니다. 진정한 사회주의는 노동자가 필요에 의해서 주권을 가지고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사회주의는 경제체제나 어떤 수단이 아니라 인간을 인간 되게 하는 요소다. 인간이 노동의 주권을 가지지 않으면 비인간화된다. 국가라는 인위적 선이 만들어 낸 경쟁을 없애고 그 안에서 인간의 다양성을 추구해야 한다.”

-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가능하다고 믿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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