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난 시민들이 판정승을 앞두고 있다. 정부가 3일로 예정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관보 게재를 유보했다. 당정은 18대 국회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중단 촉구 결의안’을 통과시키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이제 이명박 대통령의 결단만 남았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방침을 기습 발표할 때만해도 반대여론이 금세 가라앉을 것으로 내다봤다. 시장점유율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도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홍보하고 있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 일부 진보성향 인터넷매체 등에서‘조공외교’라며 비판하고 나섰지만 여론을 주도하기는 열세였다.

   
  ▲ 조중동 구독 거부 서명 명함.이치열 기자 truth710@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한 달 만에 보수언론은 적어도 쇠고기 문제와 관련해서는 의제설정력을 상실했으며 이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도도 10~20%대로 급락했다. 특히 촛불문화제가 시작된 이후에는 한 번도 보수언론이 여론을 주도하지 못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은 웹2.0의 참여형 인터넷문화가 여론의 흐름을 정반대로 바꿔놓았다고 진단하고 있다. 웹2.0이란 서비스업체가 플랫폼을 이용자에게 개방하면 이용자 스스로 참여와 소통을 활성화하고 새로운 콘텐츠까지 생산해내는 ‘참여지향형 인터넷 이용형태’를 말한다.

미 쇠고기 전면개방 이후 포털사이트 다음의 토론방인 아고라는 하루에 수천 건 이상의 토론이 벌어진 대표적인 곳이다. 아고라에서 사람들은 신문기사와 광우병 관련 정보들을 교환하고 진위여부를 놓고 치열한 토론을 벌였다. 촛불집회에 참여한 다수의 사람들은 아고라에서 정보를 얻었다고 말한다. 디시인사이드 갤러리나 민주노동당 게시판도 이용자가 평소보다 3~4배 가량 늘어났다.

1일 촛불집회에 나온 회사원 이선희(29)씨는 “아고라 등에서 다양한 정보와 의견을 접하면서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의심하게 됐고 나름대로의 관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정부나 일부 언론의 일방적인 채널이 효과가 적은 이유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 이치열 기자 truth710@  
 

IT기기에 익숙한 10~20대를 중심으로 방송 생중계도 등장해 촛불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것도 두드러진 특징이다.

휴대용PC와 캠코더, 무선휴대인터넷(와이브로) 등 기본 장비만 갖추면 누구나 현장에서 생중계를 할 수가 있다. 처음에는 시위현장에서 마이크가 달린 헤드셋을 쓰고 웹캠을 이용해 생중계를 하는 BJ(Broadcasting Jockey)들이 낯설었지만 지금은 촛불집회 현장을 가감없이 전달하는 대안매체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 정곡을 찌르는 선전물을 만들어 나온 시민들을 즉석에서 디지털카메라에 담는 참가자들. 이치열 기자 truth710@  
 

개인이 채널을 만들어 실시간 방송이 가능한 아프리카(www.afreeca.com) 에 따르면 촛불집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난달 25일부터 지난 1일까지 인터넷 개인방송의 누적 시청자수가 400만 명을 넘어섰다.
진보신당 칼라TV도 있다. 진보신당 칼라TV 조대희 PD는 “디지털 장비가 저렴해지고, 서버 접근성이 쉬워진 점, 또 무선휴대인터넷이 상용화된 것이 쇠고기 촛불정국에서 ‘1인 미디어 시대’가 가능한 주요 배경이 됐다”고 설명했다.

BJ가 방송이라면 자발적 카메라기자들도 등장했다. 카메라동호회 중 큰 규모를 자랑하는 SLR클럽도 회원 100여 명을 자체 조직해 촛불집회 현장을 기록하고 있다. 집회과정 중에 경찰의 과잉진압 현장사진을 실시간으로 올려 실상을 알리는데 일조하고 있다. SLR클럽 쪽은 시민기자단을 만든 이유로 ‘경찰의 과잉진압을 억제하고 언론이 놓칠 수 있는 곳을 감시하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 기성언론에 대한 불신감이 바탕에 깔려 있는 셈이다.

실제로 현장에 나가보면 기성 언론이 제대로 촛불집회를 보도하지 않고 있다는 시민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특히 동아·조선·중앙일보 등 보수언론들은 미 쇠고기 안전문제를 주장하는 여론을 ‘광우병 괴담’으로 폄훼하고 ‘배후세력’과 ‘폭력시위’를 강조해 시민들로부터 왜곡보도의 전형으로 역풍을 맞았다.

온라인에서는 동호회를 중심으로 ‘조중동’ 광고중단 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다. 매일 아침 다음 아고라와 주부들이 활동하는 82쿡, 마이클럽 등의 사이트에는 이들 3개 신문사에 광고를 실은 기업들의 리스트가 올라온다. 리스트가 게재되면 해당 기업에 항의전화가 빗발치는 것은 물론이다. 파장이 커지자 지난달 30일 명인제약이 광고를 당분간 게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목우촌도 항의전화를 받고 사과문을 게재했다.
반면 경향신문과 한겨레에는 후원광고가 줄을 잇고 있어 대조적이다. 패션동호회인 소울드레서가 지난달에 이어 2일에도 한겨레와 경향신문에 후원광고를 실었고, 미국프로야구 전문 동호회인 MLB파크, 마이클럽, 82쿡 회원들도 경향·한겨레 광고게재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구독자도 크게 늘었다. 경향신문은 촛불집회가 본격화되면서 5000부 이상 신규독자가 증가했으며, 한겨레도 최근 1주일간 2000부 가까이 늘었다. 2일 하루에만 500명의 신규독자가 신청했다.

송경재 경희대 교수는 이러한 시민참여 운동을 거리의 기자(street journalism)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이번 촛불집회는 시민들 개개인이 대안미디어의 가능성을 확인한 자리였고, 이는 기성 미디어의 단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경향신문 설원태 선임기자는 2일자 칼럼에서 보수언론의 ‘의제 설정력’이 상실됐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 경향신문 6월2일자 24면.  
 
“온갖 정보가 신문·방송·인터넷·휴대전화 등을 통해 떠다니고 있고 이 과정에서 허위 정보는 곧 불신 당하고 진실한 정보는 힘을 얻고 있다. 정보화 시대에는 시장 점유율이 높은 보수신문들도 여론 형성에 큰 힘을 쓸 수 없는 게 아닌가하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해석은 다를 수 있지만 이번 시민들의 촛불시위가 보여준 것은 명확하다. 언론은 통제나 관리의 대상이 아니며 이제는 권력자가 원한다고 해도 그렇게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기에는 시민들이 갖고 있는 정보채널과 미디어가 너무 많고, 다양하고, 빠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