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소 수입반대를 외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26일 저녁 서울 도심에서는 대규모 촛불집회에 이은 도로 점거 시위가 사흘째 벌어졌다. 이날 대구, 대전, 광주, 전주, 춘천, 화성 등지에서도 시민 수백 명이 모여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문화제를 열었으며 전주, 광주 등에서는 참가자들이 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오늘날 눈앞에서 심각하게 진행되는 광우병 사태를 풀 수 있는 해법은 딱 하나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재협상을 벌여 누구의 눈에도 안심할 만한 결론을 내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되지 않을 경우 어떻게 될까? 그것은 26일 저녁 전국적으로 벌어진 시민들의 항거가 더 확산되는 쪽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 시민들이 26일 밤 가두 시위를 하며 강제 연행에 반발하고 있다. ⓒ이치열 truth710@mediatoday.co.kr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문화제와 가두 시위 양상을 보면 큰 사회변동, 혁명 전야와 같은 느낌을 준다. 우리처럼 해방 이후 엄청난 격동기를 거친 사회에서 혁명을 이야기 하면 누가 혁명의 주체이며 대상이냐로 이야기를 좁힌다. 매우 현실적인 태도다. 검찰과 경찰이 쇠고기 시위자가 몇 백 명이 되더라도 처벌하겠다고 큰 소리를 치는 것은 바로 과거의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발상의 결과다. 주모자를 일망타진하면 사태는 진정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경찰의 강경진압과 시위참가자 연행이 계속되고 있는데도 쇠고기 반대 움직임은 그 기세가 꺾이지 않는다.

정부는 광우병 사태를 정확히 읽어야 한다. 지금도 너무 늦기는 했지만 더 늦어서는 곤란하다. 21세기의 사회적 격변, 혁명은 과거의 그것과 매우 다르다. 성숙한 시민의식, 정보화 사회, 세계화 등의 특성으로 혁명은 아무도 예측하지 않은 상태에서 돌발적으로 나타났다. 20세기 혁명처럼 대규모 유혈사태 등은 거의 없는 새로운 형태의 혁명이 일어났다. 사회과학은 과거를 규명하는데는 도움이 되지만 미래에 대한 예측 능력은 아직도 형편없는 수준이다. 눈앞에 보이는 현상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에 대해 학문적으로 연구를 해도 정확한 해답이 나오지 않는다. 책상 머리에 앉아 과거의 지식만으로 현실을 분석하고 대처하는 것은 현명한 태도가 아니다.

우리의 쇠고기 사태는 정부가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혁명적 상황으로 가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런 우려를 하게 되는 이유 몇 가지를 들어보자. 광우병 파동이후 문화행사나 집회에는 10대 청소년부터 다양한 연령층이 남녀 가리지 않고 참가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거리로 나오고 있으며 그 참가 규모나 지역이 점차 확대된다. 시위대는 `고시 철회', `협상 무효', `이명박 탄핵', `독재 타도', `폭력경찰 물러가라' 등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쇠고기 재협상을 통한 합리적인 수입조건이라는 결론이 나오기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것이 누구의 눈에도 명확하다. 미친 소에 대한 전 국민적 분노는 정부의 교육, 경제 정책에 대한 불만과 함께 분출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괴담’으로 현상을 파악하는 상황인식과 대처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혁명적 상황으로 폭발할 가능성이 있다.

혁명은 한 국가의 정치 체제를 송두리째 바꾸거나 일부를 바꾸는 격렬한 정치, 경제, 사회적 과정이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크고 작은 혁명이 끊임없이 일어났기 때문에 학자들은 왜 혁명이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해 연구해왔다. 20세기 이전의 혁명은 전쟁, 내란 등을 거치면서 엄청난 사람이 희생당하는 피의 혁명이었으나 20세기 후반이후의 혁명은 그렇지 않다. 혁명을 주도하는 세력이 비정부기구(NGO)거나 학생들이며 혁명에 저항하는 권력자나 권력층도 무자비한 유혈진압은 하지 못한다. 유혈진압 이후의 대가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20세기 후반이후 발생한 혁명은 독특해서 색깔 혁명(colour revolutions) 또는 꽃 혁명(flower revolutions)으로 불린다. 중부 및 동부 유럽, 중앙아시아 등지에서 발생한 일련의 혁명적 상황에서 특별한 색깔이나 꽃이 시민 봉기의 상징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색깔, 꽃 혁명에 참가한 시민들은 독재 또는 부패 정권에 대해 항거할 때 비폭력적이었고 민주주의와 국가 독립을 적극 지지했다. 이런 사회운동의 참가자는 주로 NGO, 또는 학생들이었다. 이들 혁명은 부정 선거 등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폭발했으며 우크라이나, 그루지아 공화국 등에서 독재자 축출로 이어졌다. 지난 수년 간 발생한 혁명 사례는 다음과 같다.

튤립(핑크)혁명 - 2005년 3월13일 키르키즈스탄에서 시민들의 무혈혁명이 성공, 아스카 아카야브 대통령을 축출했다. 키르키즈스탄 시민들은 그해 2월 치른 의회선거 이후 아카야브 대통령을 부정, 부패와 독재자로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를 전국적으로 벌였다. 당시 아카야브 대통령은 전국적으로 시위가 확산되자 담화를 발표하고 핑크, 레몬과 같은 색깔 혁명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경고했고 그 후 ‘튤립혁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오렌지 혁명 -2004년 12월 우크라이나에서 국민들이 오렌지색 깃발, 스카프, 옷을 입고 선거부정을 규탄하는 전국적 시위를 벌였으며 결선 재투표로 서방파 유시첸코가 당선되었다.

장미혁명 -2003년 11월 그루지아에서 국제적으로 지탄받는 부정선거 후 전국 대도시 시민들이 장미를 들고 시위했으며 대통령 셰바르드나제가 하야했다. 셰바르드나제는 1992년부터 집권했는데 심각한 부패와 경제정책 실패 등으로 국민적 원성이 높았다.

불도저 혁명 - 2000년 10월5일 세르비아에서 터진 민중봉기가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철권정권을 종식시켰다.시위대가 국영TV방송사인 RTS 건물을 점령할 때 불도저를 앞세워 방송사 건물 벽을 무너뜨린 뒤 안으로 진입한 것을 상징해서 불도저 혁명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당시 한 소녀가 목숨을 잃고 103명이 부상했으며 차량 몇 대가 전소됐다.

   
  ▲ 고승우 논설실장.  
 
위에 소개한 20세기 후반의 혁명에서 공통점은 시민의식은 진화하는데 집권자는 여전히 구시대적 발상을 버리지 못하고 오만하면서 폭력적이었다. 국민과의 소통을 거부하고 통치자 본인과 가족, 소수 집권세력의 이익에만 집착했다. 외국에서 발생한 사회적 변동이 우리에게 그대로 일어난다는 법은 없다. 그래서도 안 될 것이다. 불행한 사태가 오기 전에 혁명적 상황은 미리 막아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한 지 3개월 밖에 되지 않는다. 촛불문화제가 시작되었을 때 그 심각성이 예고되었지만 대통령은 시민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다수의 지지를 받았는데 누가 감히 하면서 국민의 함성을 외면하다가 심야에도 촛불이 타오르는 사태를 자초했다.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목소리보다 '이명박 탄핵'이나 '이명박 퇴진' 등을 외치는 소리가 더 커진 것이다. 새정부가 국민의 경고를 외면하면서 사태가 악화되었다. 지금이라도 이 대통령은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혁명적 상황이 닥칠 수 있다. 지금 상황이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다. 새 정부는 국민의 저항을 경찰력으로 막을 수 있다는 착각을 버려라. 그래야 정치가 안정되고 ‘쇠고기 혁명’이라는 단어가 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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