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개발원은 지난 해 9월12~13일 ‘방송프로그램의 세계화’를 주제로 한 전문가 토론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 발표자로 참석한 김태영 인디컴 대표와 한진만 강원대 교수는 “현재의 방송 시장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독립사의 살 길은 없다”고 진단했다. 이들은 특히 공중파 방송 및 케이블TV와의 관계에서 빚어지는 불평등 계약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이들은 먼저 공중파 및 케이블TV가 독립사 외주제작 프로그램의 저작권을 독점하고 있는 현행 계약관행에 대해 지적했다. 이들의 저작권 독점으로 인해 독립사는 자신들이 만든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비디오, CD롬, 재방송, 해외수출 등 프로그램의 다단계 유통 및 이에 따른 추가적 이윤 확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미국 등 해외 선진국의 사례를 들어가며 저작권 및 2차 사용권을 독립사에 귀속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제작비 계산 및 책정방식의 불합리성. 방송사가 외주제작비를 책정하는데 작가료, 출연료, 촬영 및 편집 비용 등 직접제작비만 계산하고 인건비, 감가상각비 등 간접제작비는 제외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프로그램을 만들면 만들수록 적자가 늘어나는 기현상이 벌어진다. 또 그것마저도 제때 지급되지 않아 자금의 악순환을 초래하고 있다는 것.

이와 맞물려 프로그램 제작 때마다 협찬사를 찾아야 하는 것도 독립사의 큰 부담이라고 한다. 방송사측은 제작비를 낮게 책정한 상태에서 부족한 제작비를 메우기 위해 독립사에 협찬사를 구하라는 요구를 많이 한다. 대기업의 계열사라면 모르지만 영세한 독립사에게 선뜻 협찬을 하겠다고 나서는 업체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외주제작 선정과정의 불투명성도 지적됐다. 방송사가 독립사의 프로그램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공개된 협의절차에 따른 합리적 결정이 필요함에도 실제로는 방송사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된다는 것. 이럴 경우 방송사측은 적당한 나눠주기식 배분이나 인맥과 로비에 의한 담합입찰식 거래를 하게 된다는 것.

그 밖에 방송사가 독립사의 아이디어를 도용하는 행위, 일방적 작품 수정요구 및 계약해지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이에 대한 방송사의 반론은 이렇다. KBS 편성본부 이재봉 외주제작부주간은 “현재의 외주제작비가 결코 턱없는 가격이 아니다”라며 “비슷한 내용과 형식의 자체 프로그램을 기준으로 해 자체제작 비용에 27%를 추가계산해 외주제작비를 지급하고 있다”고 밝혔다. 저작권을 독립사에 귀속시키는 문제에 대해선 “전향적으로 검토할 문제지만 우리 현실에선 아직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다른 방송사의 관계자는 “사내 제작인력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방송사의 현실에서 정부가 외주제작 의무비율을 정하지 않았다면 굳이 독립사를 활용하겠느냐”고 반문하고 “방송사가 자선단체가 아닌 바에야 어떤 품질이 나올지 미지수인 독립사의 외주제작에 무리한 투자를 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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