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10일 63빌딩에선 ‘신동아 파나비젼’ 창립식이 열렸다.

신동아 파나비젼은 대한생명, 신동아화재 등을 보유한 신동아그룹이 중견 독립프로덕션 파나비젼을 인수해 창립한 회사. 프로덕션 가운데는 출발부터 대기업의 계열사(미디아트-LG, 디지털 미디어-새한, 한맥유니온-한보, 파라비전-청구)나 기업 자본의 참여로 설립된 곳(삼우 컴앤컴-삼우건설·현대그룹과 특수관계에 있음, 아세아 네트워크-성원건설)이 있지만 순수 독립사가 대기업에 인수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창립식 자리엔 국회 문체공위 소속 국회의원들과 방송계 관계자들이 참석해 축하의 박수를 보냈지만 이를 지켜본 많은 독립사 관계자들의 표정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다.

파나비젼은 그동안 우리나라 독립사 가운데 ‘빅 5’로 꼽힐 만큼 비중 있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파나비젼은 91년 MBC에서 ‘인간시대’를 연출했던 이석형PD가 독립해 설립한 회사로 그동안 MBC의 ‘우리 시대의 명인’ ‘잊혀지지 않는 전쟁 잊혀진 용사’, SBS의 ‘의료도 경영이다’ 등 인상 깊은 다큐멘터리를 제작, 공급해 왔다. 92년엔 ‘한국의 전통 정원’, 93년 ‘성씨의 고향’, 95년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등으로 연거푸 대한민국 영상음반 대상을 수상할 만큼 실력을 갖춘 곳으로 평가받아 왔다.

독립사 대부분이 매년 크고 작은 적자를 내는 환경에서 파나비젼은 적자없이 운영됐던 거의 유일한 회사였다고 한다. 이런 파나비젼조차 대기업에 인수될 수 밖에 없는 현실은 다른 독립사의 미래가 얼마나 먹구름에 가득찬 것인지를 예측하기에 충분하다.

대기업의 독립사 인수, 합병은 여기서 그치지 않을 조짐이다. 파나비젼과 함께 ‘빅 5’로 꼽히는 다큐멘터리 전문 프로덕션 ‘인디컴’도 최근 한 대기업에서 조심스럽게 인수, 합병 의사를 타진해오고 있다고 한다.

인디컴 남원희 기획팀장은 대기업으로의 인수, 합병에 대해 “아직까진 심각한 고려를 안하고 있지만 앞으로 상황이 열악해지면 중대한 고려 사항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남팀장은 “거의 대부분의 독립사가 대기업의 자본 참여를 희망하고 있다”며 “독립사 가운데는 대기업에 인수되기 위해 노력하는 기현상도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독립사 관계자는 “아직 이름을 밝힐 단계는 아니지만 몇몇 중견사들이 프로덕션을 갖지 못한 대기업으로부터 인수, 합병 제의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왜 역량있는 독립프로덕션들이 ‘독립’을 포기하고 대기업에 스스로 몸을 의탁하려는 것일까. 가장 큰 문제는 “돈이 없다”는 사실이다. 열악한 자본력으로 출발한 데다 방송시장의 불평등 구조가 경영구조의 악순환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98년 방송시장 개방을 앞두고 국내 방송프로그램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독립사들의 지원 육성을 약속했지만 현재까진 구두선에 그치고 있을 뿐이다. 독립사들의 열악한 경영조건은 열악한 제작조건으로 이어지고 있다. 전문 제작인력의 채용 및 양성을 가로막고 방송장비의 부실화를 초래하고 있다. 결국 대기업으로의 편입은 이런 악순환에서 탈출하는 한가지 방법인 셈이다.

신동아 파나비젼 기획팀 배봉원 과장은 “방송사는 형편없는 외주 단가를 책정하면서 게다가 외주 조건으로 협찬사까지 구해오라고 한다. 도대체 독립사가 영업을 하는 곳인지, 제작을 하는 곳인지 혼돈스럽게 만든다.

현재의 방송시장 구조로는 대기업의 독립사 인수 흐름을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런 독립사의 열악한 조건과 영상산업을 미래사업의 주요 영역으로 보고 당장 이익을 낼 수 없다고 해도 투자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대기업의 이해가 맞아 떨어진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나 방송전문가들은 왜곡된 방송시장이 독립사의 대기업 편입을 부추기고 있다는 사실을 공감하면서도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독립사는 그동안 우리 방송계에서 독특한 역할을 차지해 왔다. 공룡화돼 있는 공중파 방송이 시도하지 않았던 영역을 특유의 기동성과 실험성을 발휘해 과감히 접근함으로써 방송의 사각지대를 메워 왔다.

수익성을 우선시하는 대기업으로의 편입은 이런 기능을 자칫 마비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방송개발원 최영묵연구원은 “순수 독립사는 사회적 다원성과 시청자 복지 차원에서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며 “대기업의 독립사 인수는 상업방송이 하나 더 늘어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인디컴 남팀장은 독립사가 처해 있는 위치를 이렇게 설명했다. “경영 및 제작 조건만 생각했을 땐 대기업의 참여를 허용해야겠지만 문제는 제작권이다. 독립사의 정체성을 담보하는 제작권마저 내줄 순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연 어느 대기업이 제작권을 양보하면서 자본을 대겠는가. 이런 딜레마 속에 독립사가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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