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 한국 언론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광우병을 우려하는 촛불문화제에서 일부 언론은 ‘쓰레기’ ‘찌라시’라는 함성을 경험해야 했다. 촛불문화제 참가자들은 미국 쇠고기 협상 과정에서 언론의 왜곡보도, 편향보도의 현주소를 경험했다.

그들이 언론 비판 대열에 동참한 이유는 언론이 권력의 비판과 견제 감시라는 기본 기능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12일자 주요 아침신문 보도는 좋은 본보기이다. 11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 쇠고기 협상에서 정부가 ‘치명적 실수’를 했다는 점을 폭로했다.

그러나 한국 신문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은 정부의 ‘치명적 실수’를 꼭꼭 숨기기에 바빴다. 이들 언론을 구독하는 독자들은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확인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언론은 정부의 치명적 실수라며 대서특필했다.

정부의 어떤 점이 문제라는 얘기일까. 조중동이 꼭꼭 숨긴 ‘치명적 실수’의 실체는 무엇일까. 12일자 주요 아침신문을 읽는 관전 포인트이다.

다음은 12일자 주요 아침신문 1면 머리기사다.

-경향신문 <사료조치, 미에 백지위임 '제2의 쇠고기 파동' 조짐>
-국민일보 <"AI 토착화 직전 단계">
-동아일보 <"전 감사원장 이번 주 사의">
-서울신문 <송파서 또 AI…방역 '구멍'>
-세계일보 <인기강사 쟁탈전 '웃돈' 힘없는 학부모만 '생돈'>
-조선일보 <조선 '풍요 속 빈곤'>
-중앙일보 <물 산업 "더 이상 물로 보지마" '21세기 블루골드' 떠오른다>
-한겨레 <쇠고기 개방확대 '치명적 실수' 드러나>
-한국일보 <서울 전역 가금류 살처분>

최근 MBC 100분 토론을 시청한 이들은 미국 쇠고기 개방 협상과 관련한 농림수산식품부 이상길 축산정책단장과 민변 송기호 변호사의 영문 해석 논란을 지켜봤을 것이다. 당시 두 사람은 미국 관보에 쓰인 영문 해석을 놓고 팽팽히 맞섰다.

100분 토론에서는 뚜렷한 결론이 나지 않았지만 미국 관보를 둘러싼 영문 해석 논란은 정부의 ‘치명적 실수’를 밝혀내는 중요한 실마리가 됐다.

경향신문은 12일자 1면 <사료조치, 미에 백지위임 '제2의 쇠고기 파동' 조짐>이라는 기사에서 “정부가 한미 쇠고기 협상에서 광우병 감염우려가 높은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의 전면 수입을 허용하면서 강화된 동물성 사료 금지조치에 대한 구체적인 협의 없이 미국에 사실상 '백지 위임'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경향신문 "미국 동물성 사료 금지조치 2005년 입법예고안보다 대폭 후퇴"

   
  ▲ 경향신문 5월12일자 1면.  
 
경향신문은 “농수산부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미국 FDA가 지난달 25일 미국 연방 관보를 통해 공포한 동물성 사료 금지조치의 내용이 2005년 입법예고안보다 대폭 후퇴했다는 것을 인정했다”고 설명했다.

한겨레도 1면 <쇠고기 개방확대 '치명적 실수' 드러나>라는 기사에서 “농림수산식품부 이상길 축산정책단장은 11일 지금까지 정부가 밝힌 미국의 '강화된 사료 금지 조처'의 내용이 미국 연방 관보에 실린 사실과 다르다는 지적에 대해 '미국 식품의약청이 공개한 영문 보도자료를 우리 쪽이 잘못 해석한 데서 빚어진 실수였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서울신문 역시 1면 <정부 쇠고기 협상 치명적 실수>라는 기사에서 “미국 측이 동물성 사료 금지 조치를 당초 예고한 것보다 더 완화한 수준으로 내놓았지만 우리 정부는 이를 강화한 내용으로 잘못해석,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허용하는 어이 없는 실수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한국일보 "미에 속았나 대충대충 넘어갔나"

   
  ▲ 한국일보 5월12일자 4면.  
 
동물성 사료는 광우병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동물성 사료 금지조치를 강화해야 광우병 위험성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정부는 미국과의 협상에서 동물성 사료 문제에 대해 깐깐한 대응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주요 언론이 12일자 1면을 통해 보도한 기사에는 ‘치명적 실수’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다. 미국 정부는 동물성 사료 금지조치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완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거꾸로 해석해 합의문에 서명을 했다는 것이다.

한국일보는 4면 <정부, 미에 속았나 대충대충 넘어갔나>라는 기사에서 “'하나 우리 정부가 국민들을 속였다. 둘, 미국 정부에 속았다. 셋, 그것도 아니면 세부 내용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미국의 강화된 동물성 사료 금지조치' 내용이 당초 정부의 설명과 다른 것으로 확인된 과정의 가능성은 이렇게 3가지”라고 설명했다.

한겨레 "정상회담 전에 무조건 타결하라는 지시 있었나"

   
  ▲ 한겨레 5월12일자 사설.  
 
이번 논란은 미국과의 협상 자체를 원점으로 돌릴 수 있는 내용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경향신문은 3면 민변 <"정부 입법예고 사실과 달라">라는 기사에서 “우리 측이 미국의 동물성 자료 금지 강화 조치 약속의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하지 않았고 미국과 서로 의미가 다르게 해석했을지라도 이는 국제법상 착오에 해당돼 조약에 관한 빈 협약에 따라 취소가 가능하다는 게 민변의 지적”이라고 설명했다.

어떻게 결론이 난다해도 정부의 책임은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정부는 왜 핵심 내용에 대한 협상조건도 찬찬히 따져보지 못한 채 서둘러 합의문에 서명을 했을까. 한겨레는 <쇠고기 협상 과정 전면 조사해야>라는 사설에서 “우리 정부는 내용 확인은 해보지도 않고 덜컥 협정 합의문에 서명한 꼴이 됐으니, 한마디로 어이가 없다. 협상 내용에 또 다른 구멍이 없다고 누가 자신할 수 있겠는가”라고 지적했다.

특히 한겨레는 “협상팀이 중요한 사항들을 제대로 검토하지도 않고 서둘러 협상을 타결한 이유가 뭔지, 윗선에서 정상회담 전엔 무조건 타결하라는 지시가 있었던 건 아닌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조중동, 정부 '치명적 실수' 보도 외면  

서울신문은 <광우병 혼란 전문가 의견에 귀 기울이자>라는 사설에서 “정부는 30개월 이상 된 소의 경우 월령표시가 되지 않은 소는 반품 조치하겠다고 했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전문가들도 30개월 이상 소에 대해서는 합의문대로 이행할 경우 안전성을 장담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광우병 발생시 수입 중단' 외에 추가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논란은 정부 신뢰를 추락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관건은 여론이다. 정부의 잘못이 있다면 이를 바로잡아야 하지만 잘못이 있는지 없는지 언론이 설명하지 않는다면 대충 넘어갈 수도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한국 신문시장을 사실상 장악한 3개 신문은 12일자 지면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침묵’했다. 광우병을 둘러싼 각계의 우려는 외면했고 정부의 실수는 꼭꼭 숨겼다.

국민은 촛불 들고 거리고 대통령은 바비큐 파티장으로

   
  ▲ 동아일보 5월12일자 5면.  
 
광우병 관련 기사 자체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유는 무엇일까. 동아일보 5면에 실린 기사가 힌트를 제공해줄지도 모르겠다. 동아일보는 5면 <"눈 많이 올 땐 쓸어봐야 소용없다">는 기사에서 “이 대통령은 특히 (10일 조류인플루엔자(AI) 대책 관계장관 회의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논란 등과 관련해) '눈이 많이 올 때는 빗자루 들고 쓸어봐야 소용없다. 일단 놔두고 처마 밑에서 생각하는 게 맞다'면서 '눈 오는 데 쓸어봐야 힘 빠지고 빗자루도 닳는 것 아니냐'며 차분한 대응책 마련을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광우병 비판여론에 일희일비 하지 말라는 차분한 대응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조중동의 12일자 보도는 이명박 대통령의 의중과 맞아 떨어진다. 대통령의 지시 때문에 이들 언론이 광우병 논란을 소극적으로 보도하고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결과는 그렇게 가고 있다.

   
  ▲ 조선일보 5월12일자 4면.  
 
지난 주말 전국에서 광우병 위험을 걱정하는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정부 대책을 호소했던 당일 이명박 대통령은 전직 언론인들과 ‘바비큐 파티’를 즐기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선일보는 4면 <"대통령님, 고개를 더 숙여야 해요">라는 기사에서 “토요일인 10일 저녁, 청와대 인근에 있는 서울 종로구 삼청동 안가에서 '바비큐 파티'가 벌어졌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때 자신을 도운 전직 언론인 등 40여 명을 초청한 자리였다. 야외 테니스 코트에 자리를 깔아 고기를 굽고, 빈대떡과 샐러드에 소주를 곁들였다”고 설명했다.

중앙일보 "한국인 흥분 시간 지나면 가라앉는다"

국민의 광우병 공포가 심상치 않은 상황에서 여유롭게(?) 대통령 안가에서 바비큐 파티를 즐길 수 있는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중앙일보 김진 논설위원은 22면 <한국전쟁, 사스 그리고 쇠고기>라는 칼럼을 통해 “야당이 공세를 계속하든 안하든, 미국산 쇠고기는 한국인의 식탁에 오를 것이다. 한국인의 흥분은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는다. 효순·미선양 사건이 그랬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이 그러했다”고 주장했다.

   
  ▲ 중앙일보 5월12일자 22면.  
 
한국인의 ‘흥분’은 시간이 약이라는 설명이다. 김진 논설위원은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인간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많아야 1억분의 1이라고 한다. 미국은 50분의 1의 확률을 감수했으며 미군의 피로 한국은 생명을 건졌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정부가 잘못을 했다면 이를 바로잡는 것이 당연하지만 청와대와 일부 언론은 한국인의 '냄비근성'에 답이 있다면서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경향신문은 <'쇠고기 고시' 연기가 그나마 해법이다>라는 사설에서 “고칠 게 있으면 고시를 수정하고, 미국과 재협상도 해야 옳다. 국내 사정에 따라 내용을 고치거나 포고를 연기할 수 있는 데도 미국의 눈치를 보느라 고시를 강행하는 것은 민심을 외면하는 무책임한 국정운영”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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