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권 출범이후 매년 2월만 되면 모든 언론은 ‘취임 몇 주년을 평가한다’는 특집기사를 대대적으로 보도해 왔다. 특히 방송은 메인뉴스에서는 물론 프라임 타임대에 과감히 특집방송을 편성해 대통령의 치적을 치켜세우는데 심혈을 기울여왔다.
그러나 취임 4주년인 올해는 웬일인지 그러한 방송을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취임 3주년이었던 작년 2월을 되돌아보면, KBS가 50분짜리 특집물을 만들어 24일 밤에 내보냈고 MBC는 정치·사회·경제 등 각 분야별로 2편을, 그리고 SBS도 대담물과 제작물 2편을 보도특집으로 내보냈다. 현업 실무진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은 과거에 그러했듯이 ‘과’보다는 ‘공’에 치우쳐 있었다.
그러나 올해 방송 3사는 약속이나 한 듯이 대통령 취임 특집방송을 제작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정권말기, 추락할대로 추락한 정권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고려하면 아무리 정권의 나팔수를 자임했던 처지라 하더라도 과거와 같은 정권홍보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현 정권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자니 시청자가 무서울 뿐만 아니라 거꾸로 정권에 누를 끼칠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객관적인 평가를 내리자니 위로부터 내려올 질책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했을 지도 모른다. 보도책임자와 일선 실무자들은 그런 프로그램들을 만들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을 지 모른다.
그러나 요즘 신문들이 앞다투어 현 정권 4년에 대한 여론조사결과를 게재하는 것을 굳이 예로 들지 않더라도 방송이 대통령 취임 4주년을 계기로 시청자들의 여론을 반영하는 것은 당연한 임무일 것이다. 문민 4주년을 정치와 경제, 사회등 분야별로 나눠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시청자들에게 현명한 판단의 근거를 제시했어야 했다.
국민의 눈과 귀, 입을 자처하는 언론이라면 당연한 임무이다. 과거에는 방송을 했고 지금은 방송을 하지 않은 점이 외양적으로는 달랐지만 그 기저에 숨은 보도책임자들의 생각은 변함이 없다. 정권의 눈치를 살피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국정의 난맥상을 덮어 보려는 정권의 기도에 방송
이 장단을 맞췄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방송의 이러한 구태는 대통령의 특별담화가 있던 25일의 메인뉴스를 봐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날 KBS는 리포트 9꼭지를, MBC는 리포트 7개에 앵커멘트 3개, SBS는 리포트 8개를 머리에 배치해 특별담화 내용을 보도했다. ‘당정개편 임박’ ‘경선규정 개정착수’ ‘현철 활동중단’ 등 분석기사가 곁들여지기는 했지만 리포트마다 대통령의 육성을 2~3개씩 집어넣어 담화내용을 충실하게 전달하고자 애쓴 흔적이 역력했다.
뿐만 아니라 이날 ‘사과는 있지만 수습책이 없다’는 담화내용에 대한 지적은 방송사 메인뉴스에까지 그대로 적용된다. 담화 내용에 대한 형식적인 자구 해석만 있을 뿐 분석과 비평은 없었다. 과거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호들갑을 떨며 실시하던 여론조사도 이번에는 실시하지 않았다. SBS가 해설꼭지를 덧붙이기는 했지만 내용은 여론과는 동떨어진, ‘개혁을 매듭짓는 데에 동참을 호소’했다는 내용이었다.
결국 이날 방송 3사 주요 뉴스는 오전 생방송과 저녁 재방송에 이어 멋진 포장을 곁들인 3탕 방송에 지나지 않았다고 규정할 수 밖에 없다. “김영삼 대통령이나 우리 국민들에게는 오늘 매우 우울한 날이었습니다.” 한 방송사 앵커의 오프닝멘트처럼 이날 방송뉴스를 접한 시청자들에게는 매우 우울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