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궁금하다. 언론인들 중엔 간, 쓸개 없이도 살 수 있는 특이체질을 지닌 분들이 있는 걸까. 미국 광우병 쇠고기 논란을 둘러싼 일부 보수언론들의 보도 행태가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불과 몇 달 전까지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을 경고하며 호들갑을 떨던 보수언론들이 갑자기 180도 태도를 바꿨다. 광우병을 걱정하는 국민들에게 "맛있고 값싼 미국 쇠고기를 들여오겠다는 데 웬 난리들이냐"며 나무라고 있다. 그들의 눈엔 우리 국민들이 까마귀 고기를 집어먹은 바보, 천치쯤으로 보이는 걸까. 우리는 그대 보수 언론들이 불과 몇 달 전까지 무슨 글을 썼는지 알고 있다. 그 일부를 되짚어보자.

조선일보(2007년 8월 4일 사설 '미 쇠고기 안전 확신 책임은 미국의 몫')
"농림부가 지난달 29일 수입된 미국산 쇠고기 1176상자를 검역하던 과정에서 수입이 금지된 척추 뼈가 들어 있는 상자를 확인, 미국 쇠고기 검역을 중단했다. 척추 뼈는 그동안 발견된 작은 뼛조각들과 달리 소의 뇌․눈․척수․내장처럼 광우병을 일으키는 단백질이 들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국제수역사무국(OIE)도 척추 뼈는 ‘특정위험물질(SRM)’로 규정하고 있다. (중략) 미국은 왜 이번 일 같은 사태가 벌어졌는지 원인을 확실히 밝히고 우리 국민을 안심시킬 대책을 내놔야 한다."

   
  ▲ 조선일보 8월4일자 사설.  
 
중앙일보(2007년 8월 3일 사설 '미, 쇠고기 검역 제대로 하고 개방 요구해야')
"미국산 수입 쇠고기에서 광우병 위험 물질(SRM)인 등뼈(척추)가 발견됐다. 이에 따라 정부는 1일부터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검역을 중단하고, 미국 측에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요구했다고 한다. 당연한 조치다. (중략) 미국의 수출 검역이 이토록 허술해서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확대하자고 우리 국민을 설득하기 어렵다. 미국은 현행 수입위생조건을 성실하게 이행하려는 자세를 보인 후에 개방 확대를 요구하는 것이 순리다."

동아일보(2007년 3월 23일 특집기사 ‘몹쓸 광우병! 한국인이 만만하니?’)
"한림대 의대 일송생명과학연구소 김용선 교수팀은 건강한 한국인 529명의 프리온 유전자를 분석했다. 94.33%가 메티오닌-메티오닌, 5.48%가 메티오닌-발린, 0.19%가 발린-발린으로 나타났다. 김 교수는 “미국이나 영국은 인구의 약 40%가 메티오닌-메티오닌”이라며 “한국인이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를 먹을 경우 인간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미국이나 영국인에 비해 높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중략) 서울대 수의학과 우희종 교수는 “SRM 외에도 정상 프리온이 있는 곳이면 어느 부위에나 병원성 프리온이 존재할 수 있다”며 “소를 이용해 만든 식품이나 화장품을 통해 병원성 프리온이 극미량 몸속에 들어오더라도 계속 축적되면 발병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문화일보 (2007년 8월 4일 사설 '수입쇠고기 문제 미국의 신속한 개선 기대한다')
"검역과정에서 ‘척추뼈’가 발견되면서 재점화된 미국산 수입 쇠고기 논란은 그 핵심이 식탁의 안전 문제일 수밖에 없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은 지난달 29일 수입분 18.7t, 1176상자를 검역한 결과 한 상자에서 광우병 특정위험물질(SRM)로 분류되는 척추뼈가 발견돼 1일부터 모든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검역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우리 역시 국민의 식탁 안전에 직결될 식품의 국내 유통을 서둘러 차단한 것은 적절한 조치라고 믿는다."

이런 글을 썼던 보수언론들은 지금 어떤 주장들을 펴고 있을까. 조선일보는 지난 5일자 사설을 통해 "한국에 수출되는 것과 똑같은 쇠고기를 먹어 온 3억 명 미국 사람 중에 미국 땅에서 광우병에 걸린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며 미국 측의 주장을 살뜰하게 전달했다. 동아일보는 6일 특집기사 '고삐 없는 인터넷 괴담'을 통해 미 쇠고기에 대한 국민들의 정당한 우려를 '괴담'으로 격하시켰다. 문화일보 2일자 사설은 "‘광우병 괴담’을 유포하고 그 증폭을 유도하는 일부의 의도적 책동은 ‘반미(反美)의 추억’ 그대로로 비친다"고 일갈했다. 자못 미국에 대한 불경죄를 물으려는 기세다. 중앙일보 2일자 사설은 "선진국 모두가 먹는 쇠고기를 왜 한국에서만 이렇게 난리를 치는 것일까"라고 꾸짖고 있다. 여기엔 선진국 시장에 유통되는 쇠고기는 모두 20개월 미만의 안전한 소라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 정도 뒤집기면 '자해(自害)' 수준이라고 봐야 옳다. 불과 몇 달 전 광우병의 위험을 전하던 서릿발 같은 기사들이 갑자기 지면에서 자취를 감췄다. 이명박 정권의 등장이후 벌어진 일이다. 스스로의 공신력에 대못질을 하고 있는 셈이다. 몇 달 만에 자신의 주장을 뒤집는 글을 쓰면서 얼마나 낯이 간지러웠을까.

광우병을 정치공세에 이용하지 말라고? 인터넷 괴담이 위험 수준이라고? 그야말로 소가 웃을 말이다. 정권의 색깔에 따라 왔다갔다 말을 바꾼 게 누군가. 인터넷 괴담의 진원지는 바로 자신들이 만들어낸 기사들이 아닌가. 어줍지 않은 정치공세를 벌이고 있는 장본인은 바로 보수언론들이다. 이 정도는 촛불집회에 참석하고 있는 어린 여중생들까지 다 안다.

   
  ▲ 박상주 논설위원  
 
광우병 위험이 과장됐을 수도 있다. 그걸 검증하는 일이 언론의 몫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정파적 이해관계를 떠나서 객관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우리 보수언론 대다수는 이미 '친일 부역'과 '군사정권 찬양'이라는 무거운 전과를 안고 있다. 거기에 또 다른 역사의 죄를 더해서야 되겠는가.

쇠귀에 경을 한번 읊어보자.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말씀을 전한다. 교황께서 5월 4일 제 42차 세계홍보주일을 맞아 발표한 담화문 '진리를 나누고자 진리를 추구하는 미디어' 중 일부다.

"미디어는 총체적으로 사상의 전파 수단일 뿐 아니라 더욱 정의롭고 단결된 세상을 위한 봉사에 쓰이는 도구가 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미디어는 사람들이 현재 지배적인 권익을 대변하는 문제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체계로 변질될 위험이 있습니다. (중략) 예수님께서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복음 8장 32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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