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시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주요 신문사들이 최근 수도권 지면을 대폭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변화는 ‘전방위적’이다. 신문 지면, 판매, 조직 등 신도시를 향한 주요 신문사들의 행보는 말 그대로 재빠르다.

지난해 7월 지국원 살인사건까지 불러온 판매 경쟁이 이제 주력군이 기자들로 바뀐 채 제2라운드를 맞고 있다. 기자들이 대거 투입되고 이에 따른 조직 개편 등 연쇄적인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변화의 진원지는 조선일보다. 조선은 지난달 19일부터 수도권 생활지면인 ‘메트로 라이프’(Metro Life)를 신설했다. 이를 위해 조선은 수도권팀을 수도권 취재본부 및 수도권 1, 2, 3, 4부로 확대개편해 일산·분당 등 현지에 지사를 설립해 취재에 들어갔다. 각 부에는 4∼5명의 취재인력들이 배치됐다. 수도권 취재본부장에 이영덕 편집부국장이 임명돼 진두 지휘에 나섰다.

동아일보도 기존에 있던 수도권 관련지면 ‘수도권’(Metropolitan)을 매일 2면 이상 발행키로 했다. 동아는 이전부터 일산시 승격 문제 등을 과감히 1면 머릿기사로 올리는 등 신도시 문제에 대해 큰 비중을 두어 왔다.

지난해 수도권 지면인 ‘수도권’(Metro)을 한개면으로 축소했던 중앙일보도 1월중순부터는 2개면으로 복귀하고 인원을 늘렸다. 중앙일보 정승균 수도권팀장은 “신도시 관련 지면인 수도권(Metro)을 처음 만들었던 만큼 저력이 있다고 본다. 인원확충을 통해 신도시 관련지면을 강화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한국일보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 역시 기존의 1개 지면이던 수도권 지면을 2개면으로 늘린다는 구상이다. 박진열 전국부장은 “3월 중순부터 인력을 보강해 매일 2페이지 이상을 수도권·신도시 지면으로
구성할 생각이다”고 밝혔다.

변화는 이러한 외양적인 측면에 머물지 않는다. 관급 기사가 줄어든 대신 소위 생활뉴스로 지면이 채워지고 있다. 조선일보 ‘메트로 라이프’의 경우 지면의 대부분을 생활현장에서 만나는 기사로 채운다. 다른 신문들도 이 지면을 이색모임소개나 미담소개, 쇼핑관련 기사를 소개하는 방향으로 바꾸고 있다.

신도시에 각 신문들이 눈길을 돌린 것은 오래전이다. 지난 91년부터 신도시 건설이 속속 이루어지면서 끊임 없이 관심을 기울여 왔다. 이삿짐 서비스, 일선 보급소를 동원한 부수 확장이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폭력배가 개입돼 폭력 사건이 발생하는 크고 작은 부작용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7월 고양시에서 발생한 보급소 살인사건은 이러한 판매경쟁의 비극적인 종말을 압축적으로 드러냈다. 보급소 살인 사건 이후 신도시내 판매전쟁은 다소 잠잠해지는 추세다. 경품제공, 무가지투입, 절독방해, 이삿짐 운반 등으로 대표되던 신문구독강요는 상당히 줄어들었다는 평가다. 분당 매화아파트에 거주하는 조선화 주부(36)는 “지난해에 비해 구독을 거부해서 집 앞에 쌓이는 신문의 부수가 줄고, 신문구독을 요청하기 위해 방문하는 판매원의 숫자도 준 것 같다”고 설명했다.

판매경쟁 대신 지면경쟁으로 그 양상을 달리하고 있는 셈이다. 판매망 정비도 과거에는 ‘돈’과 ‘경품’을 무차별적으로 투여하는 형태였다면 이제는 본사 판매국 직원들이 직접 현장에 투입돼 일선 현장을 누비는 양상으로 바뀌었다.

중앙의 경우 94년 11월 일산, 중동 등 신도시를 포함한 지역을 관리하는 부천지사와 분당, 평촌 등을 관리하는 분당지사를 설립했으며 최근에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일산지사 설립을 준비 중이다. 조선일보는 수도권 4부가 설치된 일산 사무실 옆에 3월 중순 개소를 위해 막바지 작업을 진행중이고, 동아일보도 3월 개소를 목표로 일산지사 설립을 추진중이다.

분당 지역도 마찬가지다. 지사들은 근거리에서 지국을 관리하는 일과 독자서비스를 강화한다는 취지에서 설립됐다. 신도시지역에서 지국관리는 판매부수확장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능력있는 지국장 확보를 둘러싼 각 신문사간의 물밑 스카우트전도 한창이다.

신도시 시장에 대한 신문사 차원의 관심 증대는 무엇보다 신도시가 이제는 수도권 판세를 좌우할 정도로 커다란 생활권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판단에서 비롯된다. 입주가 완료되면서 소위 ‘신중산층’을 대표하는 거대한 생활권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분당 9만 7천여가구, 일산 9만 5천여가구, 중동 5만여가구, 평촌 4만 6천여가구, 산본 4만 3천여가구 등 거주 인구만도 4백만명을 넘어서고 있다. 적게는 70%, 많게는 90% 이상의 판매부수를 수도권에 의존하고 있는 각 신문사들 입장에선 무시못할 상권으로 부상한 것이다. 신도시 주민들이 대부분 서울지역에 출퇴근하며 그간 생활 공간에 대한 ‘정보 갈증’이 심화됐던 것도 한 요인이다.

이같은 신도시에 대한 관심 이동이 갖고 있는 문제점도 적지 않다. 우선 상대적으로 서울지역과 경기도내 농어촌 지역에 대한 소식이 지면에서 자취를 감추는 기사 홀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수도권 지면을 대폭 강화하고 있는 신문사들의 경우 서울시청 출입기자를 줄이고 시정 감시 등 고전적인 역할은 사실상 ‘개점 휴업’ 상태이다. 정책 기사에 대한 대접이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언론연구원 정연구 선임 연구위원은 “지역 밀착도를 강화한다는 차원에서 보면 지방자치에 도움을 주고 소규모 광고를 대량 유치해 신문사 경영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면서도 “다만 이러한 신도시에 대한 ‘이상 열기’가 어느정도 지속될지 의문이다”고 평가했다. 수도권을 감도는 전운이 어느 방향, 어떤 형태로 표출될 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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