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이 있다. 민심의 흐름은 일정한 법칙이 있다. 오만하고 독선적인 정치세력에 등을 돌린다. 정부가 그런 모습을 보이면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가 떨어진다. 야당이 견제세력 역할에 미온적이면 역시 등을 돌린다.

하지만 여당이 민의와 동떨어진 행보를 이어갈 때는 야당에 힘을 실어준다. 현실정치에 오래 몸을 담은 이들일수록 민심의 무서움을 절실히 느낀다. 2007년 12월19일 정치인 이명박은 대한민국 국민의 시선을 한몸에 받는 주인공이 됐다.

BBK 논란 등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국민은 그의 ‘성공신화’에 한 표를 던졌다. 당시 집권세력이 국민 기대를 채우지 못했다는 점도 야당 대선후보가 승리할 수 있는 원인이었다. 대통령 이명박의 기세는 거침이 없었다.

'정치는 생물' 보여준 민심의 변화

특정 정치세력의 일방독주를 우려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한나라당 독주의 대한민국 정치는 브레이크 없는 과속열차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2008년 4월9일 18대 총선 결과는 ‘민심’의 무서움을 보여줬다. 

한나라당은 153석을 얻었지만 안정과반을 이뤄내지 못했다. 통합민주당은 개헌저지선(100석)을 얻지 못했지만 81석을 얻어내 최소한의 견제 기반을 마련했다. 총선 민의는 한나라당 일방독주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은 조성해주겠지만 야당과 협력할 것은 하고 여당 내부에서도 특정 세력 독주보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지켜나가야 한다는 당부였다. 특히 대통령 문턱에서 고배를 마신 박근혜 전 대표와도 함께 할 것은 하라는 의미도 담겨 있었다.

조선일보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국민 무서운 줄 알라"

조선일보는 4월10일자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국민 무서운 줄 알라>라는 사설에서 “한나라당이 국민의 이 심정을 헤아리지 못하면 훗날 국민의 버림을 받게 되고 국민 역시 희망 없는 나날을 보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 조선일보 4월10일자 사설.  
 
조선일보는 “무엇보다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자신들의 정책적 우선 순위를 국민에게 강요할 것이 아니라 국민의 우선 순위를 겸허하게 수용할 일”이라고 당부했다. 18대 총선이 끝난 지 한 달이 지나지 않았지만 국민은 많은 것을 경험했다.

총선이 끝나자마자 국민을 두려움에 떨게 한 것은 미국 쇠고기 전면 개방이었다. 광우병 위험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면서 민심은 들끓었다. 그러나 청와대를 중심으로 이명박 정부의 대처는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붓는 모습이었다.

이명박 대통령, 광우병 현실인식 논란

이명박 대통령은 2일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와의 정례 당정협의에서 “이 문제를 정치적 논리로 접근해서 사회 불안을 증폭시켜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야당이 정치적 목적 때문에 광우병 문제를 부각시킨다는 뉘앙스가 담긴 발언이다.

그러나 광우병에 대한 우려와 저항 움직임은 야당보다 바닥 민심이 더 적극적이었다. 특히 온라인을 중심으로 광우병에 대한 각종 정보가 공유됐고 이명박 정부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 실상이 알려지면서 저항 흐름은 ‘탄핵’ 열기로 이어졌다.

미디어다음 아고라의 이명박 대통령 탄핵 청원은 2일 오전 11시50분 현재 52만 명을 넘어섰다. 대통령 탄핵에 동의하는 이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50만 명이 이명박 대통령 탄핵을 외치는 것은 정부 정책에 대한 역풍이 주된 원인이다.

   
   
 
이명박 대통령 탄핵 청원 50만 명 넘어

어린 아이들까지 광우병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은 민심을 행동에 나서게 했다. 광우병 뿐만이 아니다. 건강보험 민영화 정책, 0교시 수업 및 우열반 허용 논란, 한반도 대운하 추진 등 국민 보편적 정서와 어긋나는 정부 정책이 숨돌릴 틈 없이 연이어 발표되면서 민심은 더욱 격앙됐다.

인터넷상의 얘기일 뿐이라고 일축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온라인 ‘미친 소’ 역풍이 오프라인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CBS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대표 이택수)에 의뢰해 정례 여론조사를 벌인 결과 이명박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는 취임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달 29일과 30일, 전국 19세 이상 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전화로 진행한 이번 조사는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 3.7%p였다.

   
  ▲ ⓒ리얼미터  
 
이 대통령 국정 지지도 35.1%, 취임 후 최저

이명박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는 35.1%에 그쳤다. 1주일 전 조사에 비해 12.1% 포인트가 떨어진 수치이고 4월9일 총선 때와 비교할 때 20% 포인트가량 떨어진 결과이다. 단순한 수치의 문제를 넘어 국정수행 지지도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대목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CBS-리얼미터 국정수행 지지도 조사에서 4월9일 54.8%, 4월16일 44.6%, 4월23일 47.2%, 4월 30일 35.1%까지 꾸준한 하강곡선을 보이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레임덕을 말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점이다.

취임 2개월 된 현직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가 35.1%에 불과하다는 점은 심각하게 느끼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한나라당도 올해 들어 가장 낮은 33.1%의 지지율을 보였다. 지난주에 비해 7.1% 포인트 하락한 수치이다.

한나라당 지지율 33.1%, 올해 들어 최저

반면 민주당은 6.5% 포인트 오른 22.1%를 나타냈다. 친박연대는 1.9% 포인트 하락한 10.5%, 자유선진당과 창조한국당은 각각 6.1%, 6.0%, 민주노동당 5.3%, 진보신당 4.4% 등의 순이었다.

CBS-리얼미터의 최근 조사 결과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가 하강곡선을 보인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명박 정부가 비판여론을 경청하며 국정운영을 할 것이란 기대감도 점점 낮아지고 있다.

야당인 민주노동당을 불법폭력단체로 분류한 상황만 봐도 국정인식에 대한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오만과 독선이 점점 농도를 더해가는 느낌이다. 조선일보는 총선 다음 날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국민 무서운 줄 모르면 “국민의 버림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경고는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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