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욕적인 미국산 쇠고기 협상에 대한 논란이 제대로 보도되고 있지 않다. 지난주에 타결된 한미 쇠고기 협상의 핵심 쟁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연령과 부위. 한미 쇠고기 협상이 타결됐을 때만 해도 조건은 부위는 양보하되 연령은 양보할 수 없다는 것, 즉 일단 30개월 미만 뼈 있는 쇠고기만 수입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미국이 동물성 사료를 금지하는 조치를 공포하면 30개월 이상 쇠고기도 수입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그런데 협상이 타결되고 일주일도 안 돼서 24일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동물성 사료 금지 조치를 발표했다. 결국 우리나라는 다음 달부터 모든 연령과 모든 부위의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게 된다. 주목할 부분은 미국이 내년 4월부터 동물성 사료를 금지하겠다고 밝힌 것일 뿐 아직 완전히 금지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또한 미국 축산업계의 막강한 로비력을 감안하면 실제로 내년 4월부터 시행될 것인지도 아직 확실하지 않다.

그런데 애초에 우리나라는 미국이 동물성 사료 금지를 공포하기만 하면 연령 제한까지 풀겠다고 약속을 했다. 미국은 협상이 타결되고 난 뒤 일주일 만에 공포를 해버렸다. 뒤통수를 맞은 셈인데 정작 상당수 언론은 이런 굴욕적이고 불평등한 협상에 아무런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고 정작 미국이 동물성 사료 금지를 공포하고 속수무책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전면 개방해야 하는 상황이 됐는데도 침묵하고 있다.

광우병의 잠복기가 10년이라는데 미국은 10년 이상 소에게 동물성 사료를 먹여 왔다. 당장 동물성 사료를 금지한다고 해도 최소 10년은 지나야 광우병의 위험에서 그나마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다는 이야기다. 미국은 동물성 사료 금지를 공포만 했을 뿐이고 시행은 내년 4월에나 될 예정이고 그나마도 시행될 것인지 여부도 불확실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일단 다음 달부터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기로 했다.

   
  ▲ 한겨레 4월25일 사설.  
 
한겨레는 25일 사설에서 "협상 때만 해도 30개월 미만 쇠고기가 이렇게 빨리 들어올지 몰랐기 때문에 속았다는 느낌마저 든다"면서 "쇠고기 협상이 졸속하게 이뤄진 경위를 밝히고 안전성을 확보하고 축산농가에 주는 충격을 완화하도록 재협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향신문도 사설에서 일본과 우리나라의 대응 방안을 비교했다. 미국은 비슷한 시점에 우리나라와 일본에 압력을 넣기 시작했는데 우리나라가 결국 전면 개방을 허용한 반면, 일본은 최근 척추 뼈가 발견됐다는 이유로 해당 지역 쇠고기 수입을 중단시켰다. 일본은 2003년 이후 30개월이 아니라 20개월 이하 뼈 없는 쇠고기만 수입해 왔는데 이번 파동을 계기로 교역 조건을 더욱 강화할 전망이다.

한겨레와 경향신문 기사에도 빠져 있지만 미국이 금지한다는 동물성 사료도 30개월 이상 뇌와 척수에 한정돼 있다. 일본은 모든 연령의 소에서 나오는 머리와 척수, 척추, 소장 끝 부분 등을 제거해 소각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EU는 12개월 이상 소의 두개골과 척수, 척추, 내장, 편도, 장간막 등을 무조건 폐기하도록 하고 있다. 미국이 1년 뒤에 동물성 사료를 금지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광우병의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이야기다.

   
  ▲ 매일경제 4월25일 20면.  
 
미국의 동물성 사료 금지 조치, 그리고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과 관련, 조선일보는 1단 기사를 내보냈고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아예 관련 기사가 없다. 이밖에 매일경제와 서울경제가 "미국 쇠고기 수입은 하지만 꺼림칙하네", "미국 쇠고기 개방 1년간 무방비"라는 제목으로 비교적 비중있게 기사를 실었고 다른 신문에서는 관련 기사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

   
  ▲ 동아일보 4월24일 사설.  
 
동아일보는 24일 사설에서 "누굴 위해 미국 소를 광우병 소라 선동하느냐"는 준엄한 훈계를 늘어놓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미국인 뿐만 아니라 재미교포들도 같은 기준에 따라 도축된 쇠고기를 먹고 있다"면서 "반미 편승이나 무조건적 국내 농업 보호는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동아일보는 특히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세력이 국제수역사무국 평가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은채 광우병 공포를 증폭시키고 있다"면서 "이들의 목적이 식품 안전성 확보나 농업 보호를 빙자한 반미 운동에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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