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끝내 미국산 쇠고기를 다시 수입할 전망이다. 한미 쇠고기 협상이 6개월 만에 재개됐고 정부는 단계적 전면 개방을 검토하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11일 오전 과천 청사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조건 개정에 관한 양국 고위급 전문가 협상이 시작됐다고 밝혔다. 미국측 요구는 연령과 부위 제한 없이 모든 쇠고기를 수입하라는 것. 미국은 지난해 5월 국제수역사무국(OIE)으로부터 광우병 위험 통제국 지위를 인정받았다는 사실을 근거로 들고 있다. 지금까지는 30개월 미만 살코기만 수입하도록 돼 있는데 미국은 전면 개방이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의 전제 조건이라는 입장이다.

농식품부는 이미 올해 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미국산 쇠고기 2단계 개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고한 바 있다. 연령 제한은 유지하되 뼈 있는 쇠고기까지 개방하고 일정 조건이 충족되면 연령 제한도 폐지한다는 방안이다. 정부는 이르면 다음주 중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공식 발표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중단된 것은 지난해 8월 초. 광우병 위험물질로 분류돼 있는 척추뼈가 발견됐기 때문인데 정확히 말하면 수입중단이 아니라 검역 중단이었다. 검역을 다시 시작한 것은 지난해 10월 초. 이때도 검역을 시작하자마자 다시 갈비뼈가 발견됐고 해당 수입 물량을 전부 반송 조치했다. 정부는 수입 중단 1주일 만에 협상을 다시 시작했으나 서로의 입장을 확인했을 뿐 별다른 성과를 보이지 못했고 대선과 총선 등 정치 일정 때문에 미뤄졌다가 총선 직후 다시 협상이 재개된 것이다.

정부와 보수·경제지들은 이미 이에 대한 답을 내려놓고 있다. 미국 사람들도 다 먹고 있는데 뭐가 문제냐는 막무가내 논리와 함께 내줄 건 내주더라도 한미FTA를 조속히 체결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쇠고기 수입을 허용하자는 주장의 핵심 근거다.

   
  ▲ 중앙일보 3월26일 30면.  
 
중앙일보 김종수 논설위원은 지난달 26일 칼럼에서 "위생조건과 안전성 문제로 다툴 일이 아닌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위원의 주장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미국산 쇠고기는 이미 개방했는데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는 바람에 중단됐을 뿐이라는 것. 문제는 시장 개방 여부가 아니라 안전성인데 이미 OIE의 인정을 받았고 안전성을 이유로 수입을 막을 이유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김 위원은 "사실 쇠고기를 둘러싼 논란의 본질은 안전성 문제가 아니라 양국의 국내정치 문제"라며 "솔직히 미국이 쇠고기 수출에 목을 매는 이유는 미국 목축업자들의 압력 때문이고, 한국이 수입 재개를 미루는 것은 한국 축산업자들의 반대 때문 아니냐"고 반문한다.

한국경제 고광철 부국장은 지난달 17일 칼럼에서 "해답은 과감한 결단"이라면서 "FTA를 발효시키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쇠고기 수입 금지라는 걸림돌을 걷어내는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고 부국장은 "축산업자의 반발이나 소비자들의 불안심리를 의식해 좌고우면해봐야 뾰족한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시간이 흘러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나 힐러리 클린턴이 승리할 경우 비준 기회는 막혀버릴지도 모른다"며 조바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에 앞서 문화일보는 이 대통령의 취임 직후인 2월28일 사설에서 "미국이 지난해 5월 OIE로부터 광우병 위험을 관리 통제하는 국가의 지위를 공인 받은 상황에서 뼛조각 등을 이유로 한 수입 반대론은 점점 더 군색해진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라고 밝힌 바 있다.

   
  ▲ 조선일보 2월28일 34면.  
 
조선일보도 같은 날 "만일 이 대통령이 쇠고기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아냄으로써 그의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다면 그는 한미FTA의 가장 중요한 방해물을 없애는 것"이라는 김석한 미국 법률회사 관계자의 칼럼을 싣기도 했다. 그는 "그것은 또 협정에 대한 미 의회 동의에 큰 힘이 될 뿐만 아니라 한미 공조관계를 튼튼히 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국민일보 4월11일 27면.  
 
중앙일보도 같은 날 "이 대통령의 미국 방문 이전에 국회 비준과 미국산 쇠고기 협상을 끝냄으로써 우리 할 일을 다 한 다음 미국에 공을 넘겨 의회 비준을 차질 없이 이행하도록 수순을 밟는 것이 최선의 전략"이라는 이경태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의 칼럼을 실었다. "국민일보는 11일 사설에서 "17대 국회가 털어주어야 할 일이 많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했다.

이들 신문의 사설과 칼럼에는 미국산 쇠고기의 드러나지 않은 위험에 대한 경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OIE의 판단을 근거로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하다고 단정짓고 한미FTA와 한미 관계 개선을 위해 조속히 수입 개방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할 뿐이다.

게다가 어느 신문에서도 지난 2월 미국에서 사상 최대의 쇠고기 리콜 사태가 벌어졌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지 않다. 판매가 금지된 병든 소를 일으켜 세우는 동영상이 공개돼 논란이 확산된 사실 역시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다우너 소라고 불리는 걷지 못하는 이 병든 소들은 살모넬라 균에 감염됐거나 광우병에 걸렸을 가능성도 의심되고 있다.

최근에는 외국 체류 경험이 전혀 없는 미국 버지니아주의 20대 여성이 인간 광우병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OIE가 아무리 안전하다고 한들, 미국은 여전히 광우병의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이야기다.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면 이들 신문사의 논설위원과 편집국 간부들은 사먹을까.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너무나도 쉽게 예측할 수 있는 것은 값싼 미국산 쇠고기가 학교 급식이나 식당 반찬에 섞여 나올 것이라는 사실이다. 군인들도 먹게 될 것이고 저소득 계층이 주요 소비계층이 될 가능성이 크다. 광우병의 잠복기가 최소 10년이고 미국에서도 2013년이 돼야 광우병 안전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위험천만한 도박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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