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4월1일은 경향신문이 한국화약그룹으로부터 독립한 지 꼭 10년이 되는 날이다. 돌이켜 보면, 경향처럼 부침을 많이 겪은 신문도 흔치 않다.

1946년 창간 이후 경향은 59년 ‘여적 필화사건’으로 폐간됐다 4·19로 복간했고, 74년에는 문화방송과 통합됐다가 81년 다시 분리됐다. 지난 90년 8월 경향을 인수한 한화는 7년 동안 적자를 면치 못하다 김대중 정부의 ‘신문-재벌 분리’ 정책에 따라 98년 경향에서 철수했다. 국내 첫 사원주주회사인 경향의 10년, 그 빛과 그림자를 짚어봤다.

   
   
 
갈 길 먼 독립언론의 ‘독립’ 경영

한화로부터 독립한 첫 해 경향의 매출액은 877억여 원으로 전년도 690억여 원에 비해 무려 13% 가까이 늘었다(표 참조). 85억 원이 넘었던 영업 적자는 20억 원의 흑자로, 297억 원이 넘었던 당기순손실은 64억여 원의 순이익으로 돌아섰다.

그러나 경향의 경영상태는 2000년을 기점으로 악화되기 시작해 2004년 75억 원, 127억 원이던 영업손실과 당기순손실은 2005년 각각 143억과 270억 원으로 급증했다. 2006년에는 영업손실은 다소 줄었지만 당기순손실은 독립 이후 최고 수준이었다. 구성원들은 종합일간지 가운데에서는 최하위층 수준의 급여를 받아 왔고, 900%의 상여금은 아직도 밀려 있다.

지난 10년 동안 경영 성적표가 초라한 것이 경향만의 문제는 아니다. 뉴미디어의 출현으로 미디어 환경이 급속히 변화하면서 신문의 광고 시장은 갈수록 줄어들었고, 독자들은 끊임없이 이탈하면서 경향 뿐 아니라 모든 신문사들이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자본잠식 상태로 적자가 누적되고 있는 경향의 경영 실적은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의심케 한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평가다.

특히 다른 언론사에 비해 턱없이 낮은 임금 때문에 우수 인력의 유출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점을 감안할 때 하루 빨리 경영을 정상화해 구성원들에게 비전과 적절한 처우를 보장해 줘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특정 재벌로부터의 독립에는 성공했지만, 재무구조가 허약할수록 자본권력으로부터 실질적으로 독립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을 감안할 때 경영 기반을 공고히 하는 게 경향이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지난해 사원들이 상여금을 반납한 데다 광고 매출이 늘면서 영업수지가 크게 개선됐다는 점이다. 회사 쪽의 한 관계자는 “상림원을 제외한 2007년도 매출이 820억 원 가량으로 2006년에 비해 크게 늘었고, 영업 적자도 10억 원 정도만 발생하는 등 삼성그룹이 예정했던 광고만 집행했더라면 흑자로 전환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3월 결산법인인 경향은 99년 이후 처음으로 지난해 당기순이익을 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성과가 ‘내핍’으로 인한 결과라는 점에서 다양한 수익 사업의 개발, 경영이나 인사에는 개입하지 않는 외부 자본의 영입 등으로 ‘독립 경영’의 기틀을 다지는 게 시급한 실정이다.

▷잦은 선거로 분열·조직 안정성 담보 못해

경향의 경영난이 가중되는 것은 잦은 사장 선거로 조직 안정성이 담보되지 않고, 중·장기 계획을 세울 수 없는 현실 때문이기도 하다.

경향의 사장 임기는 2년. 사원주주들이 직접 사장을 뽑기 때문에 2년마다 선거를 치르게 되는데, 그때마다 내부가 대결 구도로 치달으면서 분열해 왔다. 실제로 오는 6월 고영재 사장의 임기 만료를 앞두고 경향 내부에서는 벌써부터 차기 사장 후보명단이 돌고 있고, 지난해 말부터 ‘누가 선거운동을 한다더라’는 소문이 풍미하고 있다. 경향이 편집국장 직선제를 임명동의제로 바꾼 것도 이 같은 선거 부작용 때문이다.

업무국의 한 중견 사원은 “사장으로 선임된 직후엔 분열된 내부를 추스르느라고 바쁘고, 일 좀 할 만 하면 다시 회사 전체가 선거 국면에 접어들어 제대로 일 할 시간이 없다”며 “임기가 짧다보니 중·장기 경영 계획을 세우기도 어렵고, 실천하기는 더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내부에서는 사장 임기를 최소한 3년 이상으로 연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몇 년 전부터 나왔다. 그러나 현직 사장이 임기 연장을 제안하는 데에는 오해의 소지가 커 아무도 이를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 왔다.

경향의 고위 간부는 “현직 사장이 임기 연장을 발의하면서 차기 사장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 되는데, 아직까지 아무도 총대를 메지 않았다”며 안타까워했다.

‘모두가 주인인’ 사원주주회사이다 보니 ‘아무도 주인이 아니어서’ 생기는 부작용도 있다.

한 간부는 “‘내가 주주인데 뭘 어떻게 하겠느냐’는 인식 때문에 조직에 긴장감이 떨어지고, 회사에 끼친 손해에 대해 강하게 책임을 묻는 분위기도 아니다”라며 “이런 안일한 생각이 조직과 개인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면 정체성 합격…꾸준한 ‘품질 관리’가 과제

지난 10년 동안 경향은 독립언론의 기치를 내걸고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 왔다. ‘재벌로부터의 독립’은 양날의 칼과 같아서, 거대 자본이 없어 허덕였지만 제작 여건은 좋아졌다. 경향은 스스로의 논조에 대해 “우리 사회의 건전한 진보와 개혁세력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론지”라고 강조하고 있고, “우리 사회의 소외계층과 약자를 먼저 생각하는 신문이 되겠다”는 다짐도 공개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사장이나 편집국장의 면면에 따라 지면에서 보여준 정체성은 편차가 있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편집국에서는 이전 대주주인 한화에 불리한 기사를 축소하거나 삭제하는 일도 있었다.

경향신문이 꾸준히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면서 한겨레와 함께 보수 중심의 여론 시장에서 균형추 역할을 한다는 평가는 최근 들어 두드러지게 나오고 있는 현상이다. 내부에서는 고 사장의 ‘편집권 불개입’ 원칙과 송영승 편집국장의 일관된 지면 운용이 지금의 경향을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민주노총이 경향신문 구독운동을 펼치기로 결의한 것도 경향이 진보진영에서 어떻게 자리매김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다.

   
   
 
이오진 전국언론노조 경향신문지부장은 “지금과 같은 좋은 평가가 이어지려면 지면의 품질을 굴곡없이 유지하는 게 중요한데, 그러려면 성향과 문제의식이 비슷한 사람들이 계속 편집국장을 맡아야 한다”며 “편집국장 임명동의제가 있긴 하지만, 사장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친소관계나 입맛에 따라 국장을 임명할 수 있기 때문에 사장 선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언론재단 미디어연구팀 김영욱 실장은 “‘독립언론’으로서 지난 10년이 마침 전체 신문업계의 경영이 특히 어려운 시기였다는 점에서 경향도 상당한 시련을 겪었지만, 한겨레와 함께 조선 중앙 동아 등 3대 신문의 대척점에 서서 어느 정도 여론의 균형을 잡는데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고 인식되는 것은 하나의 성공 스토리라고 본다”고 평가했다.

김 실장은 “특히 이번 대선에서 경향은 전국일간지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정책 보도를 위해 노력하고 상응하는 지면을 할애해 돋보였다”며 “그러나 이제는 ‘좋은’ 지향성만으로 살아남기 힘든 상황이기 때문에 경영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실장은 이어 “차별적이고 전문적인 뉴스와 분석을 제공할 수 있는 체제와 이를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상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하는 매우 큰 숙제를 안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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