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읽기에 관심있는 몇몇 사람과 함께 2008년 1월부터 독서클럽을 시작했다. 3월에는 경남도민일보의 김주완 기자가 쓴 책, ‘토호세력의 뿌리: 마산 현대사를 통해 본 지역사회의 지배구조’를 읽고 토론을 하였다.

이 책을 읽은 이유는 4월에 실시될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 후보들을 잘 고를 수 있는 안목을 기르기 위해서였다. 그 책은 마산의 토호 세력만을 분석하고 있지만 그 책에서 거론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읽고 미루어 짐작함으로써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이른바 ‘유지(有志)’들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다.

선거 때가 다가오면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에 관한 멋진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시민운동 단체나 학술 단체에서 개최하는 강연회, 심포지움 등에서는 서양에서 만들어진 이론틀을 가지고 한국의 현실을 분석한 논문들이 발표되거나 무슨 ‘체제’니 하는 말들을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하고, 정당이 먼저냐 운동이 먼저냐 하는 방법론의 측면에서 열띤 토론이 진행되기도 한다.

그것들 모두 의미있는 활동이다. 그러나 유권자들을 움직이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힘은 그러한 이론적인 것으로만 파악될 수 없다.

사람들은 나날의 생활 속에서 수행하는 일과 만나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으며, 자신의 구체적인 처지에 근거하여 손해와 이익을 계산하며 행동한다. 이 점은 현실 정치의 국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과정에서는 전국 단위의 판세가 어떤가 하는 분석도 중요하지만 각 지역의 후보자들에 관한 상세한 정보가 선택에 끼치는 영향이 더 크다 할 수 있다.

‘토호세력의 뿌리’에서 저자가 말하고 있듯이 “한국사회의 지배세력은 이제 어느 정도 실체가 드러나 있다. 재벌과 그 엄호세력인 수구언론과 부패정치인이 그들이다. 하지만 지역사회에선 지배세력이 누구인지조차 아는 사람이 드물다. 그러다보니 도대체 누구를 상대로 뭘 갖고 싸워야 하는 지도 모른다.” 지방에서도 그러하지만 내가 사는 서울에서도 그러하다. 국회의원 후보자로 공천을 받은 이에 관해서는 공식적인 정보만 알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지방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토호들은 도대체 언제 어떻게 구성된 무리인가. 이 책에 따르면 “토착 기득권세력의 뿌리는 깊고도 질기다.” 그들은 멀리는 일제시대부터 내려온 세력이며, 한국 현대사의 우여곡절을 수없이 겪으면서도 항상 힘센 자 편에 가담함으로써 자신들의 세력을 온전히 지켜왔다. 유신세력이 이미 뿌리 뽑힌 듯하지만 “경남의 지역사회는 이런 시대의 흐름에서 완전히 비켜나 있는 분위기다. 아직도 박정희 유신세력이 지역사회를 단단히 틀어 쥔 채 요지부동의 힘을 과시하고” 있다.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한 자리 했던 이도 여전히 실세다. 이들 중 상당수는 김대중 정권의 제2건국위원회에 가담했으며, 더 나아가 노무현 정권 출범 시기에 발족된 지방분권운동본부에까지 자신의 힘을 이어 붙였다. 이들은 지역의 의사회, 약사회, 지역발전협의회, 운송사업조합, 농업경영인연합회, 새마을운동협의회, 생활체육협의회, 환경청소협회, 자유총연맹, 주부교실, 예술인총연합, 생활개선회, 바르게살기협의회, 여성단체협의회 등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요즘 신문마다 국회의원 선거에 관한 보도가 차고 넘친다. ‘여야 총출동, 서울 대혈전’, ‘예측불허 초박빙’, 무협지 제목같은 기사들이 굴러다닌다. 읽어보면 재미는 있다. 그러나 그것 뿐이다. 서울 동작을의 ‘대선급 총선’과 내가 사는 서대문은 별로 관계가 없어 보인다. 내 선택에 도움이 안 된다. 기자들은 장관 청문회 때의 취재력을 발휘하여 최소한 누가 토호세력의 후예인지라도 알려주면 고맙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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