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회 교육문화위원회가 “지방정부가 과다한 사교육으로 인한 학생의 건강을 책임질 필요가 없다”고 했을 뿐만 아니라, 학원계의 요청에 따라 지하실을 수업공간으로 쓸 수 있도록 허용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학원 교습시간 제한을 철폐하고 24시간 이를 허용한다는 것도 그렇지만, 장차 미래의 한국을 이끌어 갈 학생들의 건강을 지방정부가 책임지지 않는다면 도대체 누가 책임을 진단 말인가? 지방의회에서는 지하실을 수업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고 하는데, 이는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화재 등 사고 요인을 미리 방지할 생각을 하기는커녕 안전 불감증만 조장하고 있으니 할 말이 없다.

학원 교습시간을 24시간으로 허용하는 것은 과다한 사교육비 지출을 줄이고 서민경제를 활성화시키고자 하는 정부 정책에도 부응하지 않는다. 서울시의회는 사교육 시장을 늘리는 것이 경기 부양책의 일환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활성화시키려는 것일까.

   
  ▲ 참교육학부모회, 전교조, 참여연대, 고교서열화반대와 교육양극화해소서울시민추진본부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14일 오전 10시30분 서울시의회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학원 24시간 교습을 가능하게 하는 서울시의회의 '서울특별시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조례' 개정 움직임을 강하게 비난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시 교육의회가 별도로 있지만 학원 영업권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교육위원이 아니라 지방의회이다. 사교육 시장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학원의 영업시간을 조정하는 것은 그들의 손에 달려 있고, 교육의회는 지방의회의 결정에 따라 영업시간 이행 여부만 단속할 뿐이다.

지금까지도 거의 모든 학생이 학교 수업을 마치고 나면 학원에서 살다시피 하고 있다. 그나마 현행처럼 밤 10시까지로 규제한 덕분(?)에 학생과 학부모 모두 네다섯 시간만이라도 편히 잠잘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규제마저 없다면 당연히 학원 수업시간이 연장될 것이고, 학생과 학부모들은 잠 한숨 제대로 못 잘 것이다.

학원 종사자들이야 학생들이 학교 수업을 마치고 학원 오기 전까지 휴식을 취할 수 있겠지만, 학생과 학부모는 단 한 시간이라도 쉴 틈이 있을까. 이런 일상생활이 1~2년이 아니라 중학교를 시작으로 대학입학 때까지 5~6년 이상 연속된다고 생각하면 그것으로도 끔찍하다. 이번 결정은 학생이나 학부모, 국민 전체의 삶을 24시간 동안 송두리째 학원에 매달리게 하는 악행이다.

첫째, 성장발달 과정에 있는 중고등학생들에게 수면 부족으로 인해 정신적이고 신체적인 발달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국민 건강 자체를 파괴하는 행위이다.

둘째,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발버둥치는 정부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이다. 중․고등학생들은 방과 후 학원에 가기 위해 학교 수업시간 중에 책상에 엎드려 부족한 잠을 보충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학교수업은 자장가로 들리고 학교 교육은 교육 수요자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역할을 하지 못하는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셋째, 그렇지 않아도 사교육비 때문에 먹고살기 어려운 서민들을 경제적 파탄으로 끌고 가는 주범이다. 학원보습은 경쟁에 경쟁을 부추기는 살벌 그 자체이다. 국민의 행복추구권에는 관심도 없다. 학교 교육 정상화만이 사교육비를 줄이고 공교육 붕괴를 막는 일이다.

대한민국은 학원공화국이다. 요람에서부터 무덤까지 전국민이 학원을 다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유아 때 시작된 학원보습은 취업 후까지 이어져 직장 내 승진을 위해 학원을 다니는 일이 보편화되었다. 국가의 백년대계인 교육을 염려하고 정부의 교육정책을 지지하는 의원들이었다면 오히려 학원 영업시간을 지금보다 한두 시간 줄였어야 되는 것 아닌가. 물론 학원 입장에서는 영업시간을 규제한다고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겠지만, 학원에서 밤새도록 영업행위를 하도록 허용하는 조례 개정안을 내놓는 의회가 세상천지에 서울시의회 교육문화위원회 말고 또 있을까.

단속을 피해가며 지금도 몰래몰래 새벽녘까지 수업을 하는 학원 입장에서는 조례 개정안이 불안 요인을 해소하는 가뭄에 단비가 되겠지만,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불행을 알리는 조종으로 여겨진다. 서울시의회는 학생을 위한 의회인가, 아니면 학원을 위한 의회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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