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내각에서 일할 장관의 재산이나 청와대 수석들의 비리에 관한 더러운 이야기들이 언론을 가득 채웠던 몇 주가 지나갔다. 이들에 대한 비판의 잣대는 ‘도덕성’이라는 단어로 압축된다. 주간지 <한겨레 21> 제699호의 관련 기사도 첫 문장이 “한승수 국무총리 후보자의 도덕성에 대한 의문이 가시지 않고 있다”로 시작되어 “한 후보자의 해명이 어느 정도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로 끝난다.

‘도덕성’은 17대 대통령선거에서도 주요한 덕목이었으나 다수 국민은 그것을 문제삼지 않았다. 다시 말해서 그걸 주요 의제로 내세우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많이 버는 게 죄가 되는가’라는 반론 앞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사태의 핵심은 다른 곳에 있다.

한승수는 자신의 입으로 “인생의 가치를 명예에 두고 평생 살았다”고 한다. 그의 경력 어디에도 이윤 추구를 직접적인 목적으로 하는 자본가의 흔적이 없다. 지식엘리트의 전형이다. 그런데 그는 부동산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17억 원 이상의 시세차익을 챙겼다.

국사 교과서에 나오는, 가렴주구를 일삼는 탐관오리에 가까운 인간이다. 세계사 교과서에서는 근대 자본주의의 등장 시기를 설명하면서 이런 자들을 전통적인 지주계급이라 한다. 이들은 ‘근면한 자본가’ 계급을 절망케하는, 자본주의 발전의 치명적인 독소이다.

   
   
 
로버트 하일브로너가 쓴 ‘세속의 철학자들’(이마고)에서 리카도에 관한 부분을 잠깐 들여다보자. 리카도 당시 영국에는 세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하나는 노동자이다. 그들은 “일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다.” “자본가는 사업이라는 쇼를 하고, 그 대가로 이윤을 얻는다.” 그런데 “지주는 토지의 힘으로부터 이득을 얻는다. 그리고 그의 수입-지대-은 경쟁이나 인구의 위력에 하등 영향을 받지 않는다. 실로 그는 모든 사람을 희생시켜 이득을 얻는다. 지주의 몫이 커지면 옆으로 밀려나는 계급은 자본가이다.”

땅값이 오르니 곡물값도 오르고 건물 임대료가 오르니 노동자의 삶을 어려워진다. 당연히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지불해야 할 임금도 올려야 할 압박이 생긴다.

 “임금 지급은 늘어나고 그(자본가)의 이윤은 감소한다. 지주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지대만 거둬들인다. 그는 편안히 앉아 지대가 증가하는 것을 관망한다.”

자본주의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이처럼 놀고먹으면서 이익을 챙기는 특권적 지대 추구 세력을 척결해야 한다. 시세차익을 탐하는 이들을 고위 관료로 등용하는 것은 까놓고 자본주의를 망가뜨리겠다고 맹세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한승수를 비롯한 장관들은 정책결정에 관여하는 엘리트 관료들이기 때문에 조직된 소수이며 고급 정보를 많이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지대를 추구하는 한 정책은 필연적으로 왜곡된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 중에는 사장들이 꽤 있다. 사장은 사장인데 돈은 그리 많지 않은 사장이다. 많기는커녕 빚만 잔뜩 짊어진 사장도 있다. 저자에게 인세 100만원을 제때 못 줘서 쩔쩔매는 수준이다. 그들만 그런 게 아니다.

한국은 사장, 즉 자영업자 비율이 높은 나라이다. 2004년 통계에 따르면 34%나 된다. 그들 중 상당수가 생계형 자영업자들이다. 쉽게 말해서 가족들이 보수 받지 않고 노동력을 제공하는 조그만 구멍가게 주인들이다. 2006년 통계에 따르면 월평균 소득 100만 원 미만인 비율이 임금노동자는 26.6%였던 반면 자영업자는 37.8%였다. 이쯤 되면 ‘88만원 세대’는 자영업자 중에 가장 많다고 할 수도 있다.

부동산 임대 업자 출신 대통령이 내세운 장관들의 평균 재산이 40억 원인 현실에서 근면하지만 가난한 자영업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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