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를 압도하고 있는 보수프레임을 개혁세력들이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언론광장이 27일 저녁 6시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회관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연 창립 4주년 기념 심포지엄 '이명박정부와 언론'은 이명박 정부 출범으로 바뀌게 될 언론계 판도에 대한 우려, 특히 보수지들의 신문 방송 겸영에 따른 미디어의 공공성 위기에 대한 경계가 주를 이뤘다. 참석자들은 지난 26일 통과된 “방송통신위원회 설립 및 운영을 위한 법안”에 대해 수익성과 영향력을 동시에 추구하려는 보수신문들을 향한 이명박 정부의 보은정책의 일환이라고 성토하면서 위기에 빠진 미디어 공공성의 문제를 대중들에게 이해시키는 작업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디어비평가 백병규씨는 발제문을 통해 대선 이후 보수신문들의 분화 현상을 지적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 이후 보수언론의 태도에 상당한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며 “동아일보는 일방적으로 이명박 정부에 대한 지지 입장을 노골적으로 보이고 있는 반면, 조선일보는 새 집권 세력에 대해서 상당히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려는 태도가 확인되며, 중앙일보는 그 사이에서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백씨는 이어 "보수진영 내에서 상대적으로 뚜렷한 정치적 구심점 역할을 하지 못했던 동아일보는 이명박 정권과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극대화하고, 이를 통해 사세 확장을 꾀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조선일보는 범보수진영의 비판적 리더로서 영향력을 확보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란 해석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 언론광장은 27일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회관에서 '이명박정부와 언론'이라는 주제로 창립4주년 심포지엄을 열었다. '보수정권의 등장과 개혁언론의 과제'라는 제목으로 주제발표를 하고 있는 미디어비평가 백병규 씨. ⓒ 이치열 기자 truth710@  
 
그는 또 “이명박 정부 하에서 정권과 보수언론의 관계는 보수진영의 분화와 경합이라는 새로운 지형 안에서 일정한 견제와 갈등이 있을 수 있겠지만 크게 보면 공동운명체”라면서 “이명박 정부는 보수언론과의 우호적인 관계 유지를 위해 신문법 개편이나 방송신문 겸영 허용 정책 등을 지렛대로 활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언론의 독립성과 공영성, 공공성을 유지하기 위한 범사회적 연대의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두 번째 발제를 맡은 양문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은 공영방송을 도서관에 비유하고, 유료방송은 술집에 비유해 “술과 유흥업소가 판치는 한국에서 정책당국자들이 그나마 몇 개 없는 도서관마저 술집 주인에게 팔려고 한다”며 “이를 저지하는 것이 시민사회가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양 총장은 “방송노동자들의 지난한 싸움의 결과로 2000년 무소속독립기구인 방송위원회를 출범시켰는데, 그것이 지난 26일 방송통신위원회 법안 통과로 얼토당토 않게 권력의 품으로 돌아가게 됐다”며 △방송위원회 위원들의 자진 헌상과 사무처의 투항 △이번 사안에 대해 비판적 프로그램 하나 제작하지 않은 방송사의 투항 △시민사회단체의 정세분석과 대응방향 혼선 등을 문제의 원인으로 지적했다.

양 총장은 또 “보수언론의 복심은 지상파 방송 진출을 통해 실질적 미디어그룹으로 거듭나는 것”이라면서 “이번 법안이 그들에게 종합미디어그룹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 위한 첫 단추가 됐다”고 비판했다. 양 총장은 “이명박 정부는 MBC 민영화를 정치적 보복 차원에서 거론하고, 조중동의 방송 겸영 허용은 보은 차원에서 거론하는 것”이라며 “1단계로 민영화 바람을 잡아 케이블TV와 IPTV에서 종합편성채널 및 보도전문채널을 풀어주고, 2단계로 조중동이 종합편성채널 등에서 일정한 훈련을 거치게 한 연후에 지상파 민영화를 전면화 시키는 전술을 구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들은 최소한 올해 안에 그런 흐름으로 가기 위해서 제도적 틀을 만들 것”이라면서 “시민사회에서 종합편성채널 저지 투쟁을 벌여야 한다. 여기서 지면 민영화 되고 만다. 밀리지 않도록 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토론자들은 발제자의 문제의식에 공감을 표하며 한 목소리로 시민사회의 대응방식이 일반 국민들과 유리돼 있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양승동 한국PD연합회 회장은 “이명박 정부 아래에서는 비판적 신문과 개혁 언론에 대한 방송 장악 시도가 심화될 것”이라며 “이에 대한 저지 투쟁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양 회장은 “4월 총선에서 집권 한나라당이 과반수를 획득하면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신문법과 국가기간방송법을 밀어붙여 KBS를 고립시키고 MBC를 민영화 하는 식으로 공영방송을 분할통치하려 들 것”이라면서 “대중들에게 문제의식을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그들의 피부에 와 닿을 수 있도록 현실적 대안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희용 한국기자협회 부회장 역시 “시민사회의 대응방식이 그동안 일반 국민에게 덜 와 닿았던 것이 사실”이라며 “광범위한 공감과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의제 설정과 함께 비판을 정교화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도 “결국 문제는 대중을 누가 어떻게 견인하는가 하는 점이 될 것”이라며 “미디어 독점이 강화되는 데 대한 위기의식을 전하기 위해 시민사회가 좀 더 구체적으로 접근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또 “시민사회 진영의 한계는 언론 개념을 정립하는 문제에서부터 나온다”며 “시민들이 언론을 기본권, 주권 개념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상재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은 “공영방송을 지키고 민영방송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힘을 모을 수 있어야 한다”며 “공영방송의 비대화, 지역언론과의 유리, 비정규직 언론노동자 문제 등을 돌파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또 언론노조 진영에서 해야 할 일로 △이해관계에 따라 흔들리지 않고 통일된 목소리를 낼 것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구체적 논리를 구축할 것 △비정규직 언론노동자에 대해 근본적 고민을 할 것 등 세 가지 방안을 제시하며 “공영방송이 중심이 된 총파업을 통해서라도 이명박정부의 독단적 미디어정책을 저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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