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언론노조 KBS본부(본부장 박승규)가 정연주 사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KBS본부는 13일 펴낸 노보에서 "정권교체기에 KBS 사장의 자질과 거취를 논하는 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나 구성원으로서 정 사장에게 어떤 잣대를 들여대도 좋은 점수를 주기가 어렵다"며 "낙제점수를 받은 CEO에 KBS 미래를 맡길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 정연주 KBS 사장. ⓒ미디어오늘  
 
KBS본부는 '정연주 사장님께'라는 공개서한에서 "소모적인 논란에 종지부를 찍어야 할 때가 왔습니다. 더 이상 KBS가 무너지는 상황을 방관할 수는 없습니다. 그동안 몸담았던 조직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십시오"라고 종용했다. KBS본부는 이 글에서 지난 1월4일자 조선일보 사설 를 인용하기도 했다.

KBS본부는 "KBS는 또 다시 낙하산 사장을 맞이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장님을 반면교사로 그 서글픈 운명을 벗어나기 위해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지난 기간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라며 글을 맺었다. 다음은 KBS본부가 13일 펴낸 노보 가운데 '정연주 사장님께'라는 공개서한 전문이다.

정연주 사장님께

정연주 사장님! 차기 정권 출범을 앞두고 요즘 사장님 거취가 세간의 관심거립니다.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불문율처럼 KBS 사장이 바뀐 게 현실이고 보면 무리도 아닙니다. 정권 교체가 아닌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노무현 대통령조차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세간의 인심도 ‘정권 교체 = KBS 사장 교체’라는 등식을 비교적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KBS 사장 자리가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한, KBS 사장이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과 운명을 같이 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습니다. 매우 슬픈 현실이지만 재임 기간 내내 코드 논란을 불러일으킨 정 사장님의 거취에 어느 때보다 큰 관심이 쏠리는 것은 이런 인식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언론의 자유를 국민의 기본권으로 신성시하는 대한민국에서 무슨 가당찮은 발상이냐며 핀잔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당찮은 발상에 단초를 제공한 쪽은 늘 정권과 그 정권이 임명한 KBS 사장 자신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KBS 사장이 임명권자인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 해야 한다는 사실에 별다른 의심을 품지 않았습니다. 취임하기 바쁘게 KBS 사장을 교체했으니까요. 정 사장님의 오늘은 노 대통령의 그런 인식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세간의 관심은 갖가지 추측과 소문을 양산합니다. ‘정 사장이 곧 사장 자리를 내놓을 것이다. 사장까지 지낸 사람이 마무리를 지저분하게 하겠느냐? 그도 똑똑한 사람인데 대세가 뭔지는 알거다’ 이런 한 편이 있습니다. ‘정 사장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버틸 때까지 버틸 것이다. 정 사장이 더 이상 잃을 게 있겠느냐? 정권도 정치적 부담을 감내하면서까지 꼴사납게 공영방송 사장을 내쫓지는 못할 거다’ 다른 한 편입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출범하면 KBS 사장 거취 문제는 자연스럽게 정리될 것이다’라는 나름대로의 분석까지 제기됩니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노동조합은 사장님의 거취에는 별반 관심이 없습니다. 굳이 그 이유를 장황하게 늘어놓지는 않겠습니다. 지난해 말 KBS 구성원의 86%가 사장님이 경영 실패의 책임을 져야한다고 요구했을 때 사장 자격에 대한 논란은 끝이 났으니까요.

참으로 한가한 조직입니다. 안으로는 경영적자에 허덕이고, 밖으로는 방송 산업 재편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이 때 그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분주한 움직임을 감지하기 어렵습니다. 사장님께서는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사장님과 함께 회사경영을 책임져야할 집행기관들이 갖가지 추측과 소문의 향방에 눈과 귀를 고정시킨 채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은 해보셨는지요. 혹시 집행기관들의 그런 모습이 사장님의 거울에 비친 모습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소모적인 논란에 종지부를 찍어야 할 때가 왔습니다. 더 이상 KBS가 무너지는 상황을 방관할 수는 없습니다. 무능을 고백하십시오. 미련과 아집을 버리십시오. 그 동안 몸담았던 조직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십시오. 우리의 인내는 지난 5년으로 충분했습니다. 정치적 구설을 피하기 위한 조합의 침묵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공영방송 사장의 임기를 지키겠다는 그럴듯한 논리를 만들어내고 일부 친위 세력을 동원해 민주 대 반민주의 낯익은 정치판을 만들어내려는 어설픈 시도 또한 마냥 지켜볼 수만은 없습니다.

4백억 원대의 적자 예산을 편성한 가운데 2008 회계연도가 시작됐습니다. 적자 예산 편성은 그 자체로 조직을 충격 속으로 내몰았습니다. 이대로라면 누적 적자만 1,500억 원 대에 육박합니다. 한해 1조 4천억 원 대 예산에 1,500억 원 적자라면 CEO는 바뀌어야 합니다. 그 것을 상식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겁니다.

사장님의 무능은 적자 경영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사운을 걸다시피 했던 수신료 인상도 사실상 실패했습니다. 17대 국회에서는 이미 물리적으로 처리가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사장님은 노사 간의 공식 석상에서 수신료 인상 없이 적자를 헤어날 길이 없다고 인정했습니다. 그 말씀대로라면 KBS는 이제 희망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사장님은 이제 KBS인들이 최소한 희망을 모색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야 합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더 큰 숙제가 KBS 앞에 놓여 있습니다. 사장님이 재임 기간 풀어야 했던 숙제보다 훨씬 어려운 숙젭니다. KBS 예산을 당파성으로 무장한 국회가 심의하겠다고 합니다. 국영 방송들을 공영방송에 녹여 넣겠다고 합니다. 수신료를 산정하고 징수하는 권한을 넘기라는 요구도 있습니다. 사장님께는 역부족인 과제들이죠.

사장님께서 자랑거리로 생각하는 ‘깨끗한 공영방송 경영자’의 실상은 어떻습니까? KBS는 사장님으로 인해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당하고 있습니다. 사장님이 조폭신문이라고 비난하시는 신문의 사설 한 토막을 옮겨보겠습니다.

정연주가 누군가. 남에겐 “미국 국적 취득은 특수 계급의 특권적 행태”라고 호통을 치면서도 미국 살던 자기 두 아들의 병역면제 서류를 직접 주미대사관에 접수시켜 병역을 면제시켰던 사람이다. 두 아들의 미국 시민권 취득 사실도 공개됐다. 2002년 총리로 지명된 장상씨 아들의 미국 국적 취득이 문제되자 “특권적 행태를 보이는 인사가 고위직에 갈 수 없다”고 썼으면서도 자기 아들 미국 국적 취득과 병역면제에 대해서는 “그게 KBS 사장 자리를 내놓아야 할 문제냐”고 뻗댔던 인물이다.

정연주가 누군가. 2005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아들이 미국에 내린) 뿌리를 뽑아 (한국으로) 옮긴다는 게 불가능했다. 아들을 그리워하고 있다”고 했던 정씨의 큰아들은 그가 이런 말을 하기 석 달 전 이미 한국에 들어와 삼성전자 본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아들이 병역의무와 국적을 버렸던 이유를 만들기 위해, 곁에 데리고 살면서도 마치 떨어져 있는 것처럼 “아들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연극을 서슴지 않았던 사람이다.

어느 자리에선가 정치권에 발 들여 놓은 자는 공영방송 사장의 자격이 없다는 발언을 하셨습니다. 따로 떼놓고 보면 옳은 말씀이지만 그 말씀을 몸소 실천하셨는지는 의문이 듭니다. 지난 2002년 대통령 선거 당시 사장님은 당시 노무현 대통령 후보와 맞붙었던 이회창 후보를 맹렬하게 공격했습니다.(사장님께서 세간의 의혹이라며 제기했던 대부분의 문제들은 최소한 법적으로는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여기서 굳이 사장님의 글을 다시 인용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사장님의 글은 노무현 정권이 탄생하는 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사실만은 지적하고 싶습니다. 아마도 기자의 양심을 갖고 쓴 글이라고 주장하시겠지만 사장님이 KBS로 입성하는 순간 양심적 글쓰기는 고도의 정치적 함의를 갖게 됐습니다.

KBS는 또 다시 낙하산 사장을 맞이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장님을 반면교사로 그 서글픈 운명을 벗어나기 위해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지난 기간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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