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 자체에 함몰되기 보다 방송과 통신의 융합을 어떻게 발전적으로 담아낼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 김국진 미디어미래연구소 소장 ⓒ미디어미래연구소  
 
방송통신위원회 설치 논의가 교착상태에 빠져있다. 처음에는 방통위의 정치적 독립성 확보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지더니 양당의 정치논리 속에서 조직의 위상에 대한 앙상한 원칙 아닌 원칙 만 남았고, 이제 그마저도 사라지고 정쟁만 남은 듯 하다. 왜 통합위원회를 만들려고 했는가 대한 고민은 사라져버린 것 같다.
방통융합과 이에 따른 기구 개편에 대해 오랫동안 천착해온 김국진 미디어미래연구소 소장은 조직 자체에 함몰돼 수평선을 달리고 있는 현재 논의를 다르게 볼 것을 제안했다. 방통위 설치 논의가 교착상태에 빠진 11일 김 소장을 만나 위원회의 대통령 소속에 대한 논란, FCC가 모범으로 제시되는 논의 구조, 현행 법의 문제점과 보완점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방송통신위원회를 대통령 소속으로 한 것에 대해 언론단체와 대통합민주신당이 반대하는 등 논란이 있다.

"방송을 헌법에 의해 100% 완전한 독립기구에서 다루면 좋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 사법과 행정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조직은 관료제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는 조직이다. 예외가 생기면 다른 예외가 생기기 때문에 용인할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조직의 소속 문제보다 위원 구성 문제가 더 중요하다.

현재 방송위의 경우 단순히 법률에 의한 독립기구이고 소속이 없다. 하지만 위원 구성을 6:3으로 할 수 있어 여당과 대통령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구조였다. 독립기구라는 명분 때문에 위원회가 정치권의 영향을 받아 이른바 사고를 치더라도 책임 소재를 물을 수 없었다. 대통령과 집권여당이 분명히 책임져야할 필요가 있는데도 말이다. 책임세력이 없는 것은 무책임하고, 이를 분명히 묻자는 것이다. 소속은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있다. 총리 소속일 경우 다른 행정부처와 같은 급에서 총리의 영향력 아래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지만 그나마 대통령 소속이 될 경우 일반 행정부처로부터 독립된 정부기관이 될 수 있다. 실질적으로나 상징적으로나 행정부로부터 독립이 가능할 수 있다.

지금까지 집권자가 방송에 힘을 발휘하면서도 겉으로는 중립적인 것처럼 포장됐던 것이 문제였다. 소속이 없는 것은 선이고, 소속이 있는 것은 악이라는 것은 역사적·논리적 오류가 있다. 이제 그런 포장을 걷어내고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 헌법 개정이 최선이라면 이 방법은 차선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적 입김이 들어가는 것을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법에서 위원들의 직무의 독립을 분명히 명시하고, 위원회는 철저한 공개주의로 운영돼야 한다.

또, 방송을 다루는 것과 방송과 통신 두 영역을 다루는 것은 다르다. 일단 규제와 행정의 영역이 더 많아지게 된다. 게다가 방송은 정치적인 요소가 많지만 통신은 개인의 프라이버시나 소비자 이해관계 문제가 밀접하고 정치적인 면이 거의 없다. 기구를 통합하면서 운영 잣대나 시스템은 여전히 정치를 고려하는 쪽으로 가는 것 같은데, 이제는 잣대를 달리해야 한다. 정치 부분을 민감하게 생각하는데, 이 부분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처럼 민간영역으로 떼어내면 된다. 선거방송위원회 같은 경우도 이슈가 제기될 때마다 운영될 수 있는 상시기구로 갈 수 있고, 가장 민감한 KBS의 경우 (영국 BBC의 경영위원회처럼) 공영방송위원회를 구성해 정치권으로부터 떼어내면 된다."

-위원 구성과 관련해 4:1 구도가 될 수 있다는 점도 방송통신위원회의 정치적 중립성과 관련해 쟁점이 됐다.

"대통령 소속이라는 우려와 이어지는 지점인데, 5명 위원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 대통령 소속 정당이 3명이 넘지 않도록 규정을 넣어 3:2 구도를 유지하게 하면 된다. 대통령과 정부여당도 꼭 4:1을 고집할 이유가 없지 않는가."

-위원 구성 뿐 아니라 특정 부처의 대거 이동 등 사무처 조직 구성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
 
"물리적으로 이미 있는 기능을 통째로 옮기는 식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 위원회 조직을 어떻게 구성할지를 고민하는 속에서 인력 충원에 대한 고민이 이뤄져야 한다. 선후가 뒤바뀌어선 안 된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하나의 모범으로 제시되는 분위기인데. 

"미국의 FCC는 행정부와 분리된 독립기구로서의 의미가 강하다. 여러 곳에 애매하게 걸쳐 있어 특수하게 다루자는 개념으로 독립기구이고, 미국에는 이런 식의 독립기구가 상당히 많다. 연방법제이다 보니 각 주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초월해 만들어지는 경우들이 있다. 결국 제도는 그 나라의 정치문화의 반영이다. FCC가 어떻게 융합상황에 대처하는지를 벤치마킹할 수 있지만 FCC 조직 자체가 무조건적으로 우리가 따라야할 원형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우리가 처음 만드는 조직이다. 방송과 통신 분야의 민감한 이슈를 다루는 것 뿐 아니라 각 분야를 아울러 발전적인 방향으로 가기 위해 조직을 만드는 것이다. 무엇을 실현할 지에 대한 구체적 목표와 비전 속에서 얼마나 창조적으로 갈지가 포인트이다. 물리적으로 다른 나라가 어떻게 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FCC 조직 자체에 몰입하다보니 논의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융합을 국가전략으로 어떻게 발전시킬지의 큰 그림 속에서 접근해야 할 문제이다.

게다가 미국의 방송환경은 한국과 다르고, FCC자체에 대한 논란이 있다. FCC의 경우 미디어국에서 방송을 통합관리 하는데, 미국은 지상파에 대해 연주소 허가 정도만 할 뿐 규제가 거의 없다. 사실상 미디어국은 뉴미디어국이나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한국은 지상파가 전체 방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므로 지상파국과 뉴미디어국으로 나눠서 가는 것이 맞다. 또 유무선이 통합되는 상황에서 FCC 내부에서도 분리 운영되는 유선국과 무선국을 통합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FCC의 규제 수준이 너무 낮아 규제 실효성이 없어 조직이 왜 필요하냐는 논리마저도 나오고 있다. FCC가 정답이 아닌데 정답처럼 몰고가는 것은 문제다."

-현행 법제에서 보완해야할 점이 있다면.

"공개주의로 가야 한다. 한나라당이 제출한 법에는 '공개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는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고 되어 있는데 이런 예외조항을 없애야 한다. 회의록 공개는 물론이고, 주요 의사 결정이나 안건에 대해 위원들이 어떻게 판단하는지 사전에 공개해야 한다.

대통령 소속이므로 직무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별도 조항이 필요하고, 위원장에만 적용되는 탄핵소추 조항을 위원들에게도 확대 적용시켜야 한다. 위원 자격요건과 관련해, 방송이나 통신 분야에서 15년 이상 근무한 사람을 명시했는데, 사업자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서 사업체 임직원의 경우 상법처럼 최소 퇴사 2년 후에 근무할 수 있다는 조항을 넣을 필요가 있다. 방송영상정책을 문화부장관과 합의해야 한다는 조항도 삭제해야 한다."

-방송통신위원회 설치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누구를 위원으로 인선할지에 대한 논쟁이 이어질 것 같은데.

"위원 구성에서 실질적 요소는 위원들이 통신과 방송 분야의 전문성을 얼마나 갖췄느냐이다. 또 통신 분야와 방송 분야의 위원 구성 비율도 위원회 운영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통신 혹은 방송 분야에 오랫동안 종사해온 사람들은 각기 분야가 달라 이질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상대 분야를 모르는 이들이 방송과 통신 양쪽에 대한 입장을 내야 하는 상황이다. 현재로서 위원들 개개인이 책임성있게 제 역할을 하게 만들려면 더 공개주의로 가야 한다. 위원들이 각 사안에 대한 개인의 이해도를 드러내고, 외부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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