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www.dcinside.com) 디시뉴스는 세밑 28일 <"∼좀 하면 어떠냐?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지">라는 기사를 올렸다. 네티즌들 사이에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를 대체할 유행어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새해 첫날 대부분의 아침신문들도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라는 여론을 전하고 있다. 그런데 7% 성장으로 한국을 선진국으로 견인할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난데없이 "법과 질서를 지키는 데서 선진화를 시작하자"는 신년사를 내놓았다. 법과 질서를 좀 안 지키면 어떠냐,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라며 뽑은 대통령 아니었던가.

국민일보 조용래 논설위원은 "민심은 무딘 듯 날선 칼"이라며 이 당선자의 분발을 촉구하는데, 중앙일보 문창극 주필은 "이 당선자의 어깨에 놓여진 짐"을 걱정하고 있다. 연 7% 성장 운운하며 혼자 경제를 다 살릴 것처럼 말할 때는 가만있다가 왜 이제야 걱정하는 것일까.

10년 전 오늘 IMF외환위기 속 아침신문들은 "바닥까지 간다는 각오"(조선일보)로 "시련을 극복하자"(동아일보)고 주장했다. 앞으로 10년 뒤에는 어떤 주장이 1면에 나올까. 다음은 1일자 전국단위 종합일간지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 조선일보 1월1일자 1면.  
 
경향신문 <개발보다 성장보다 소중한 가치…생태가 무너지면 인간도 무너집니다>
국민일보 <"행복 나눔에 중독됩시다">
동아일보 <"대한민국 최대 업적은 경제성장" 57.5%>
서울신문 <"새 정부, 잘살고 안정된 한국 만들라" 71%>
세계일보 <"경제 살리기 최우선" 58%>
조선일보 <"법·질서 지키는데서 선진화를 시작하자">
중앙일보 <"한나라 찍어 국정 안정" 53% "야당 밀어 줘 독주 견제" 29%>
한겨레 <한국사회, '진보적 가치' 여전히 선호>
한국일보 <이제는 경제다/유럽은 지금 '경제 리모델링중'>

새해 진단, 경향신문·한겨레만 다른 길로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다. 서울신문이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KSDC)와 세밑 23일부터 26일까지 전국 19세 이상 남녀 1000명을 조사한 결과, 잘살고 안정된 한국 만들라는 응답이 71%였다. 깨끗한 나라는 13.6%, 평등한 나라는 7.5%, 강한 나라는 7.0%였다.

세계일보가 각계 전문가 1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도 다르지 않다. 경제 살리기가 최우선이라는 응답은 58%인 반면, 양극화 해소가 최우선 국정과제라고 답한 전문가는 21%에 그쳤다.

   
  ▲ 세계일보 1월1일자 1면.  
 
한국일보가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세밑 26일 전국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한 결과, 새 정부의 경제운용 방안에 대해 응답자의 71.5%가 성장 위주라고 답한 반면 분배 위주는 21.7%에 불과했다. 18대 총선지지 정당으로는 46.9%가 한나라당, 6.9%가 대통합민주신당이었다.

중앙일보가 지난 12월27일과 28일 이틀간 전국의 만 19세 이상 남녀 213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도 비슷하다. 한나라당을 찍어 국정을 안정시켜야 한다는 응답자는 53%인 반면 야당을 밀어줘 독주를 견제하겠다는 응답자는 29%에 불과했다.

그러나 한겨레의 설문조사 결과는 많이 다르다. 한겨레가 지난 26∼27일 리서치플러스에 의뢰해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경제적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답한 응답자는 31.6%에 불과했다. 사회복지가 잘 갖춰진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답한 응답자는 67%에 달했다.

이런 결과는 설문 문항을 어떻게 설계했느냐의 차이일 수 있으나, 한겨레는 한국사회가 여전히 진보적 가치를 선호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바로 3년 전 같은 조사결과와 비교했기 때문이다.

'성장과 분배 가운데 무엇을 우선해야 하느냐'라는 물음에 '더 많은 분배를 위해서라도 성장이 더 우선돼야 한다'는 대답(54.7%)이 '더 안정적인 성장을 위해서라도 분배가 우선돼야 한다'는 대답(38.8%)보다 많았다. 그러나 2004년 조사결과에 견줘볼 때 분배를 우선하는 답은 9.8%p 늘었다.

경향신문은 최장집 교수와의 대담에서 이명박 당선자의 국정방향을 비판했다. 최 교수는 "민주화는 달성했으니 이제 선진화로 가자는 것은 결국 또 다른 성장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국민동원"이라고 지적했다.

   
  ▲ 경향신문 1월1일자 4면.  
 
대통령 당선자 마음과 어깨만 걱정하나

국민일보 조용래 논설위원은 칼럼 <민심은 무딘 듯 날선 칼>에서 이렇게 토로했다.

"혼란스러웠다. 지난달 19일부터 10여일이나 지나 새해를 맞았지만 혼란은 가시지 않는다. 솔직히 고백컨대 아직 그 원인조차 잘 모르겠다. … 위장 취업·전입의 경력이라도 좋다. 주가조작사건의 주모자인 국제사기꾼에 놀아난 인사라도 상관없다. 경제를 살려준다고 하질 않는가. 그렇게 MB(이명박 당선인)의 손을 들어준 것은 무딘 민심이었을까."

   
  ▲ 국민일보 1월1일자 22면.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공약에 대한 우려도 이어진다. 연 7% 성장이 가능한가, 경제살리기의 수혜자는 누구인가, 일자리는 과연 늘어날 것인가 등이다.

"당선인의 화려한 공약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우선 연 7% 성장이 가능하겠느냐는 의문이다. 단기적으로 잠재성장률을 웃도는 성장을 꾀하면 인플레이션은 피할 수 없다. 이는 경기회복은커녕 또 하나의 난제를 끌어안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잠재성장률을 당장 2∼3%포인트 올린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경제 살리기의 수혜자가 과연 누구냐는 점도 거론된다. 민심은 저마다 수혜자가 자신들일 것이라고 믿고 있지만 순서로 보면 기업이 우선이다. '규제 완화→기업투자활성화→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는 경제 살리기 시나리오만 봐도 그렇다. 문제는 규제 완화로 기업투자가 늘어날 가능성은 높지만 기업투자와 비례해 일자리가 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고용 없는 성장'은 이미 피할 수 없는 흐름이 아닌가."

반면 중앙일보 문창극 주필은 칼럼 <그 어깨에만 짐을 얹지 말라> 들머리를 이렇게 시작했다. 충분히 주장할 만한 내용이다.

"민심이란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인 듯싶다. 요즘 이 나라에는 어떤 희망과 설렘이 출렁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제부터는 무언가 안심할 수 있고, 잘될 것 같기도 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덕담을 나누고…. 마치 함박눈이 내린 아침 같다. 특정인이나 정당을 지지한다는 말이 아니다. 누굴 찍었느냐의 문제도 아니다. 나라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기대감이 온 땅에 퍼져 있다. 나라 전체가 이런 기분을 느낀 적이 몇 날이나 될까. 해방의 감격은 이보다 훨씬 더했을 것이다."

   
  ▲ 중앙일보 1월1일자 31면.  
 
하고싶은 말은 다음에 있다. 충분히 주장할 만한 내용이라고 보기엔 애매하다. 온 나라를 이끌 대통령의 마음이 무거운 것은 당연하고, 대통령 당선자가 후보 시절 미다스의 손을 가진 것처럼 보이게 한 것도 국민이 아니라 후보 본인과 언론이었다.

"지금 모두의 눈은 당선자에게 쏠려 있다. 모든 것이 그 혼자 몸에 달린 듯 얘기한다. 이런 기대감이 당선자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고 있다. '기쁜 마음은 잠시고 걱정이 태산'이라고 고백했다. 그 어깨가 얼마나 무거울까. … 사람들은 당선자가 경제를 살리는 비책이나, 돌을 황금으로 만드는 미다스의 손을 가진 것처럼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니 한 사람의 어깨에 경제의 모든 짐을 얹고 있다. … 한국 경제가 살아나기를 바라고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면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사람의 변화다. … 이 나라는 다시 살아났다. 2008년 새 아침, 그 나라를 위해 내가 할 일이 무엇이며, 지켜야 할 윤리가 무엇인가. 이제는 당선자를 보지말고 각자 자신을 돌아보자."

앞으로 5년은 법과 원칙은 됐으니,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라고 한 게 엊그제다. 뽑아놓은 지 열흘 밖에 안 지났는데 벌써 당선자를 보지말고 각자 자신을 돌아보라니, 이 칼럼은 다음 대선을 눈앞에 두고 나와야 적절한 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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