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은 우리 EBS 사람들에게 참으로 악몽과도 같은 나날이었다. 이른바, 교재 출판비리가 신문 방송의 톱을 장식하더니, 급기야 강사진 선정과 관련 PD들의 금품수수설까지 더해져, 흥미진진한 읽을거리, 볼거리를 제공했다.

특별한 ‘목적’이 있었다는 얘기도 있고, ‘이해관계’가 얽힌 다른 언론매체의 의도적인 때리기라는 짐작도 가는 터이지만, 어쨌든 이런 과정에서 우리는 충격과 분노, 참담함과 부끄러움, 절망과 무력감을 수없이 느껴야 했다. 대다수 직원들이 어려운 여건속에서 악전고투하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비리가 저질러지고 있었다는데 우리들 스스로도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적어도 어제까지 EBS는 우리들에게 명예로운 직장이었다. 말도 안되는 제작비, 열악한 제작여건, 비교하기 조차 부끄러운 봉급. 그래도 상업주의에 물들지 않고 권력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고,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일회성 프로그램이 아닌, 어린이로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 모든 계층에 꼭 필요하고 유익한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자긍심이 있었다.

그런 자긍심으로 적어도 우리는 주어진 여건속에서 최선을 다했고 국민들도 교육방송에 대해 뜨거운 격려와 사랑을 아끼지 않았다. 이제 그간 ‘무공해 방송, 샘물같이 깨끗한 방송’을 지향하며 지난 20여년간 쌓아온 국민적 신뢰와 사랑을 어떻게 다시 찾을 수 있을런지 참담하기만 하다.

프로듀서들은 출연자 섭외가 안되고, 학교에 촬영나가면 어린이들이 촬영 차량을 걷어찬다. 장소 사용료까지 받은 문방구 주인은 촬영도중에 장소사용료로 준 봉투를 도로 들고 나오며 돈도 필요없으니 그만 찍으라고 소리지른다. 모두 그만큼 EBS를 사랑했던 사람들이다. 이제까지 아빠가 교육방송에 있는 것이 그렇게 자랑스러웠던 아이들이, 학교에서 친구들이 놀린다고 교육방송 그만두라고 하는 말은 더더욱 우리를 절망케 한다.

억울한 구석도 없지 않다. 이번 사건 관련자 상당수가 실상보다 부풀려진데 대해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이 지면이 미디어 전문지이기에 몇가지 서운함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첫 보도이후, 신문, 방송매체가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여 일사불란하게 EBS 비리를 들추고 부풀렸다.

그것이 모신문의 사설, “PD부터 간부에 이르기까지 일사불란하게 장단을 맞춰가며 비리를 저질렀다”는 터무니 없는 날조에서 절정에 달했다. 대부분의 언론은 ‘PD들 출연 대가로 3천∼5천만원 받아’ ‘빠르면 내일 PD 2∼3명 소환 조사 예정’하다가 슬그머니 PD들은 받은 액수가 얼마 안돼 조사를 않기로 했다느니, EBS 형편이 어려워서(?) 소환않기로 했다느니 봐주기식으로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그런 과정에서 우리는 ‘언론은 하이에나의 습성을 가졌다’고 하는 저널리즘학 첫장의 명제를 실감하였고, 그것을 해명하고 저지할 수단과 방법이 전무하다는데 절망적인 무력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설 것이다. 사건의 실제 크기,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우리가 그토록 헌신적으로 일해오고 국민들이 사랑해준 EBS에서 이같은 비리가 생겼다는 것에 대해 국민들에게 송구한 마음을 느끼면서 이제 새로운 조직, 새로운 EBS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우리는 결코 ‘그해 6월’을 잊지 않을 것이다. EBS는 이제 진정한 무공해, 청정 EBS가 될 것이다. 그것은 누구보다도 EBS를 출입하는 외부 관련자, 출연자들이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이와 함께 교육방송 전체 직원들은 좋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만이 진정한 ‘명예회복의 길’이 될 것이라고 다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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