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어두운 군사독재 시절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가 그리웠고 호소했다. 역사는 반복될 수 있다고 하지만 지금 우리의 가슴속에는 눈물이 흐른다."

80년대 재야 민주화 투쟁의 대열에 섰던 대표적 인사인 김근태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은 5일 오후 서울 명동에서 비장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김근태 의원은 "역사는 2007년 12월5일을 대한민국 정치검찰이 국민을 배반한 날로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5일 오전 BBK 의혹에 대한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이명박 후보에게 면죄부를 줬다. 여의도 정가에서 나돌던 다양한 시나리오 가운데 한나라당에게 가장 유리한 시나리오가 현실이 된 것이다.

김근태 "역사는 오늘을 정치검찰이 국민 배반한 날로 기억할 것"

   
  ▲ 대통합민주신당 소속 의원들과 지지자들은 5일 서울 명동에서 집회을 열고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에 대한 검찰의 BBK 사건 무혐의 발표를 규탄하고 있다. ⓒ이창길 기자  
 
이명박 후보가 BBK와 관련이 있다는 수많은 증언과 자료 등이 각종 언론과 정치권을 통해 공개됐지만 검찰은 무혐의를 선언했다. 이명박 후보는 단 한차례도 검찰에 소환되지 않았고 김경준씨와의 대질 신문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검찰은 수사에 최선을 다했다고 자평 했다. 한나라당을 제외한 정치권은 착잡한 표정으로 검찰 수사 발표를 지켜봤다. 이날 오후 서울 명동의 '정치검찰' 규탄집회는 이번 발표가 끝이 아니라 시작일 수 있음을 보여줬다.

대통합민주신당 소속 주요 정치인들은 이날 쌀쌀한 날씨 속에 진행된 규탄 집회에 참석했다. 70∼80년대 민주화운동을 함께 했던 김근태 이해찬 한명숙 오충일 등이 다시 손을 잡았고 손학규 정세균 정대철 등의 중진 정치인들도 자리를 함께 했다.

한명숙 "민주주의 바로세우는 국민운동 전개해야"

   
  ▲ 대통합민주신당은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BBK 사건 연루 의혹에 대해 무혐의 결론을 내린 검찰의 수사결과에 강력히 반발하며 'BBK 특검법' 발의를 추진하기로 했다. 대통합민주신당 소속 의원들이 5일 서울 명동에서 검찰의 '편파수사'를 규탄하고 있다. ⓒ이창길 기자  
 
이날 행사 사회는 전대협 의장 출신인 임종석 의원이 담당했다. 롯데백화점 건너편 명동 입구에는 사람들이 점점 모여들었다. 임종석 의원은 "참담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 정동영을 찍어달라고 이 자리에 모인 것이 아니다. 뒤로 갈 수 없다는 본능이 여기에 있게 했다. 국민의 이름으로 정치검찰을 규탄한다"고 말했다.

한명숙 의원은 "국민 희생에 의해 쌓은 민주주의가 우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검찰발표는) 온 국민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선거운동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기 위한 국민운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해찬 의원도 "명동은 20년 전 6월 민주항쟁 당시 넥타이부대가 군부독재를 물러나게 했던 역사의 성지"라며 "검찰이 이명박은 두려워하는데 국민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 나라 민주주의와 평화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오충일 "오늘은 왜이리 슬픈지 모르겠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도 "무거운 마음으로 이 자리에 있다. 언론인 기자들이 많이 있지만 기자 사이에서 떠돌던 말이 사실이라고 하니 슬프다. 검찰은 이명박을 조사해 비리를 캐낼 것이다. 그러나 비리결과를 내놓지 않을 것이다. 검찰이 이명박 약점을 끝까지 잡고 흔들 것이라는 얘기"라고 주장했다.

오충일 당 대표는 "오늘은 왜이리 슬픈지 모르겠다. 김근태 의원은 가장 혹독한 고문으로 이 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애쓰고 헌신했던 인물인데 다시 이 자리에 섰다. 20년 만에 다시 길거리에 나와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다"고 말했다.

명동 규탄집회는 오후 1시30분 정도에 마무리 됐다. 이들은 오후 6시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광화문 규탄집회를 열기로 했다. 대통합민주신당은 물론 이회창 후보 지지자, 박사모, 진보단체 등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다양한 이들이 각각 광화문에 모일 것으로 보인다.

서울 광화문 '정치검찰' 규탄 '촛불집회'

정동영 후보와 이회창 후보는 이번 사태에 대한 배수진을 치고 나왔다. 유세를 중단한 정동영 후보는 이날 명동 집회에 참여하지 않았다. 오후 5시35분 MBC 라디오를 통해 검찰의 BBK 수사결과에 대한 입장을 내놓기로 했다.

한나라당은 검찰 발표를 통해 이명박 후보를 둘러싼 의혹이 풀렸다는 입장이지만 이번 대선은 12월5일을 기점으로 전혀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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