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조선닷컴에 실린 <외신들도 삼성사태 촉각'… "국가경제 해칠 수도">는 흥미로운 기사였다. 인터넷 뉴스 이데일리 뉴스를 전재한 기사인데, "비자금 로비와 분식회계 혐의 등 이른바 ‘삼성 사태’로 삼성그룹 뿐 아니라 한국의 국가 경제도 해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과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주요 외신들이 진단했다"는 내용이다.

   
  ▲ 조선닷컴 11월28일.  
 
주목할 부분은 "(파이낸셜타임즈가) 외국인 투자자들이 삼성을 부패했다고 인식하면서 한국의 다른 기업들도 마찬가지라고 판단해 관계를 끓을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나타낸 한 신문 사설을 인용하기도 했다"는 부분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한 신문은 조선일보다. 원문을 살펴보자.

"Samsung is an important business representing Korea's economy on the global stage," the Chosun Ilbo, Korea's biggest newspaper, wrote in an editorial. "Foreign investors may end up thinking that if Samsung is… corrupt, then other Korean businesses must be much the same."

   
  ▲ 파이낸셜타임즈 온라인판 11월28일.  
 
파이낸셜타임즈는 "(Chosun Ilbo)조선일보"라고 출처를 정확히 밝히고 있다. 원문을 그대로 번역하면 이렇다.

"삼성은 지구상에서 한국 경제를 대표하는 중요한 기업"이라고 한국의 가장 큰 신문인 조선일보가 사설에서 말했다. 이 신문은 "외국인 투자자들은 만약 삼성이 부패했다고 생각하게 되면 다른 한국 기업들도 똑같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문제의 사설은 조선일보 27일자에 실려있다. 조선일보는 "삼성은 세계 시장에서 한국 경제를 대표하는 중요한 기업"이라며 "외국 투자자들은 삼성의 경영이 투명하지 못하고 구린데가 많다면 다른 한국 기업들은 더 볼 것도 없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조선일보는 "이번 일로 삼성의 간판 기업인 삼성전자까지 흔들리게 되는 일이라도 벌어진다면 대한민국 경제도 무사할 수 없다"며 협박아닌 협박을 늘어놓았다.

   
  ▲ 조선일보 사설 11월27일.  
 

이 어처구니없는 왜곡 보도의 전말은 이렇다. 조선일보가 27일 "삼성 사태가 국가 경제를 해칠 수도 있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파이낸셜타임즈가 28일 이를 인용보도하자 이를 이데일리가 다시 인용했고 조선일보가 이를 전재해서 다시 실었다. 조선일보의 호들갑이 외신 보도로 둔갑한 셈인데 조선일보는 자신들 이름을 뺐다.

중앙일보는 더 어처구니가 없다. 29일 6면 <"삼성 이미지 타격 입고 있다">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삼성의 경영이 투명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면 다른 한국 기업들도 마찬가지로 투명하지 않다고 판단할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역시 이 문장이 조선일보에서 나온 문장이라는 사실을 빠뜨렸다. 원문에 조선일보라고 명확하게 명기돼 있는 이상 이를 몰랐을 리 없다. 그런데도 중앙일보는 조선일보의 말을 외신으로 둔갑시켰다.

기사를 쓴 손해용 기자는 "FT가 조선일보를 인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전체 맥락을 읽어보면 그 부분을 넣으나 안 넣으나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글의 흐름으로 볼 때 FT의 주장이라고 봐도 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다.

   
  ▲ 중앙일보 11월29일 6면.  
 
조선일보의 억지 주장이 확대 재생산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27일 조선일보 사설→28일 파이낸셜타임즈→28일 이데일리→28일 조선닷컴→29일 중앙일보. 보수·경제지들의 입맛대로 외신 베껴쓰기는 하루이틀 일이 아니지만 이번 경우는 좀 심각하다. 독자들이 영어를 읽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낯 뜨거운 일이고 나라 망신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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