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갈린다. 웬만큼 머리 좋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기본적인 흐름조차 따라가기 어렵다. BBK가 나오다가 EBK가 튀어나오고 다스, LKe뱅크, A.M. Pappas, 마프펀드 등 무슨 암호 같은 수십 개의 말들이 서로 뒤엉켜 미로처럼 복잡하다. 문제는 이처럼 복잡한 BBK 주가조작 사건이 다음 달 19일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 향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인자라는 점이다. 온 국민의 시선이 검찰수사에 쏠려있는 이유다.

이해 안 가는 이명박 부동의 지지율

   
  ▲ 박상주 논설위원  
 
이해하기 어려운 건 BBK 사건뿐이 아니다. 이외에도 다른 숱한 불법·탈법 의혹을 받고 있는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의 지지율이 요지부동이라는 점은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이면계약서와 이 후보의 명함 사용 논란 등 BBK 의혹 공방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시점인 지난 24일 한겨레신문과 리서치플러스의 조사 결과 이 후보 지지율은 36.9%로 나타났다. 일주일 전 조사(36.8%)와 큰 차이가 없는 수치다.

이 후보는 BBK 주가조작 사건, 두 자녀와 자신과 부인의 운전기사 유령취업, 임대소득 축소신고 탈세, 위장전입, 한양대 위장출강, 고용산재보험료 미납 등 온갖 의혹을 한꺼번에 받고 있다. 일반의 상식대로라면 이중 한 가지 의혹만으로도 '낙마'를 하거나 적어도 지지율의 큰 추락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까진 그럴 기미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한 마디로 국민들 사이에 "이번엔 바꿔야한다"는 심리가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짧게는 현 참여정부에 대한 넌더리요, 길게는 10년 개혁 정권에 대한 실망이라고 할 수 있다.
보수 및 수구진영에선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싸잡아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한 뒤 이른바 '좌파 정권'의 집권을 이번엔 반드시 저지해야 한다며 벼르고 있다. 진보 개혁 진영마저 자신들의 편인 줄 알았던 참여정부가 역대 정권 중 가장 서민의 삶을 고달프게 만들었다며 손가락질을 하고 있다. 집값과 사교육비의 앙등, 비정규직 양산, 양극화의 심화 등이 서민들의 분노를 촉발한 원인들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후보의 '성공신화'와 '경제 전문가' 이미지가 부자와 가난한 자의 기대 심리를 동시에 부풀리고 있는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 일각에서 '부패가 무능보다 낫다'는 담론이 받아들여지는 것도 이런 민심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우리 유권자들에게 주어진 선택은 '부패'와 '무능' 둘 뿐일까.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숨 가쁠 만큼 많은 불법·탈법 의혹을 받고 있는 후보와 지리멸렬한 상태에서 고만고만한 헐뜯기 경쟁을 벌이는 범여권 후보들…. 참으로 답답한 선거판이다.

그러나 어차피 한 표를 행사해야 한다면 '부패' 보다는 차라리 '무능'을 선택하는 게 옳다. 부패는 국가의 근간을 좀먹는 위험한 독소(毒素)다. ‘무능’은 나라의 발전을 지체 시킬 뿐이지만, ‘부패’는 거기에 더해 역사를 후퇴시킨다. 필리핀이 그 반면교사(反面敎師)다. 한때 우리보다 10배 이상 높은 국민소득을 자랑하던 필리핀이 우리의 원조를 받는 빈국으로 전락한 이유는 마르코스, 라모스, 에스트라다 등 역대 정권의 부패 때문이었다. 그런 위험을 우리가 감수해선 안 된다.

25~26일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한나라당 이명박, 민주노동당 권영길, 민주당 이인제, 국민중심당 심대평, 창조한국당 문국현, 무소속 이회창씨 등이 대선후보 등록을 마쳤다. 그들이 내놓는 정책공약들도 속속 정리돼 발표되고 있다. 이들 공약(公約)의 상당부분은 지키지도 못할 공약(空約)이겠지만 그래도 앞으로 5년 간 국정을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밑그림들이다.

국가 근간 좀먹는 '부패'

지금부터는 복잡한 BBK 사건을 들여다보면서 골치를 썩이는 일보다 그들의 공약집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건 어떨까. 이제 막 물꼬가 터지기 시작한 남북관계를 어떤 후보가 잘 이어갈 것인지, 양극화의 상처는 누가 잘 어루만져 줄 것인지, 새로운 경제 도약을 이뤄낼 인물은 누구인지 가늠해보자. 마땅한 인물이 없다고 지레 포기해선 안 될 일이다. 원래 진주도 뻘 속에 묻혀있고, 금강석도 잡석에 쌓여있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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