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항일운동을 펼친 스님 출신의 독립운동가 운암 김성숙 선생(1898∼1969)의 기념관이 선생의 출신 학교인 중국 광저우 중산대학에 세워진다.

㈔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www.kimsungsuk.or.kr)에 따르면, 사업회는 최근 중산대학과 '김성숙 기념관' 건립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2009년 완공하기로 합의했다.

   
  ▲ (사)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와 중산대학이 '김성숙 기념관' 건립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  
 
김성숙 기념관은 중산대 본관 옆 중산루 부지 8981㎡에 지상 7층, 지하 1층으로 세워지며, 기념관 내부에는 학술보고실, 중·한류센터, 아세아연구센터, 유학생언어교육실, 한국무역관, 김성숙 기념실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김성숙 기념관 예정지 옆에는 중국의 국부 쑨원(孫文)을 기리는 '쑨원 기념관'이 건립돼 있다.

기념회 쪽은 "동북공정에 박차를 가해온 중국은 외국인 동상은 허가하지 않는다며 2006년 1월 하얼빈시에 있던 안중근 의사 동상도 철거했을 정도"라며 "그러한 중국 정부가 한국인 기념관 건립을 허용한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밝혔다. 기념회 쪽은 중국 정부의 건립 허용 배경에 대해 "김성숙 선생이 중산대 출신인데다 선생의 중국인 부인이자 항일운동가였던 두쥔후이(杜君慧) 여사 또한 중산대 출신이라는 점이 높게 평가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중국 중산대학에 세워질 '김성숙 기념관' 조감도 ⓒ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  
 
운암 김성숙 선생은 1898년 평북 철산에서 태어나 1916년 경기도 용문사에서 승려(법명: 태허스님)가 됐다. 1919년 3·1운동에 참여, 2년간 옥고를 치렀으며 이후 중국에 건너가 창일당, 조선의열단, 광동 코뮨, 조선민족해방동맹, 조선민족전선연맹 등에 관여하면서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1938년에는 약산 김원봉 선생과 조선의용대를 조직하여 지도위원 겸 정치부장을 지냈고, 이후 좌우가 통합된 임시정부에 참여, 국무위원, 선전위원 등을 역임했다. 1925년부터 1928년까지 중산대학에 재학했다.

해방 이후에는 좌우합작과 혁신정당 운동에 몸담았다. 김성숙 선생은 귀국 후 몽양 여운형과 함께 근로인민당을 조직하여 중앙위원으로 좌우합작 운동을 펼쳤고 조봉암과 접촉하여 진보당 추진위원회에도 관여했다. 5·16 쿠데타 이후 이른바 통일사회당 사건으로 다시 옥고를 치렀고 1969년 숨졌다. 1982년 정부는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유해는 2004년에야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김성숙 선생은 님 웨일즈·김산(장지락)의 '아리랑'에서 '붉은 승려 김충창'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운암은 중국에서 김산과 함께 창일당을 조직한 인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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