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자신이 세운 건물 관리업체에 딸과 아들이 직원으로 근무한 것처럼 가짜 서류를 꾸며 다달이 월급을 지급했다는 사실이 9일 알려지면서 삽시간에 인터넷에 2만여 개의 댓글이 달렸다. 이 정도의 거센 비난여론이면 주요뉴스 거리가 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나 신문에서 관련기사를 찾기란 '모래에서 바늘 찾기'다. 대중의 기호를 중요한 판단 잣대로 생각한다는 신문들이 침묵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강기정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이 9일 국회대정 질문에서 밝힌 자료에 따르면 이 후보의 큰딸은 2001년 8월부터 2006년 4월까지 직원으로 등재돼 매달 120만 원씩을 받았고, 막내아들은 2007년 3월부터 현재까지도 이곳에서 매달 250만 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들은 이 업체에서 일한 적이 없는 유령직원으로 밝혀졌다.

   
  ▲ 한겨레 11월12일자 2면  
 
일하지 않은 자녀에게 매달 꼬박꼬박 회사 돈을 지출한 것도 남들이 보기에 부도덕한 일이지만, 자녀들을 근로자로 허위 신고하는 수법으로 8800만 원 가량의 소득신고를 누락·탈세해 부당한 수익을 얻은 것은 법을 어긴 것이다. 헌법을 수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대통령 후보로서는 중대한 결격사유가 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신문들은 이 정도쯤은 기사 깜이 안 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런 의혹이 제기된 다음 날인 10일, 이를 보도한 신문은 경향신문 서울신문 한겨레에 불과했다. 한국일보도 보도했지만 '후보 연일 흠집내기'로 처리했다. 특히 전체 신문시장에서 절반이 넘는 독자들을 확보하고 있는 조선 중앙 동아일보의 침묵으로 이번 사건은 이슈화되지 못했다.

12일(11일은 휴간일)에도 사정은 비슷했다. 침묵을 지키고 있던 다른 신문에도 이 내용이 뒤늦게 보도됐지만 대부분 단신으로 처리됐다. 침묵하고 있던 조중동도 관련 내용을 보도하기 시작했지만 이 후보의 해명과 사과에 초점을 맞췄다. 아들은 취직하려는 것을 선거기관 중에 특정회사에 들어가는 게 오해를 살 수 있어 건물관리를 하며 기다리라고 했던 것이고, 딸은 유학 가기 전 건물관리를 도왔는데 정리를 하지 못한 것이라는 내용이 중심이었다.

   
  ▲ 조선일보 11월12일자 4면  
 
조선일보는 4면에 <"아이들 위장취업 논란은 내 불찰" 이명박 사과>를, 동아일보도 8면 <신당 "자녀 유령직원 등재 이 후보 고발" / 이 "내 불찰…근무한 건 사실">을 제목으로 뽑았다. 중앙일보도 5면에 <이명박 "꼼꼼히 못 챙겨 죄송">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언론이 이 후보의 해명을 그대로 받아 전하고 사태진화에 나섰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한겨레 정도만 <"반박 계획 없다→건물 관리했다→잘못 인정"> 기사에서 오락가락 해명이라고 비판했다.

최재천 대통합민주신당  12일 "원래 남의 흠은 크게 보이고 자기 흠은 안 보이는 것이지만 그래도 이 정도의 문제가 그냥 묻혀 지나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결국 우리가 반성할 일"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헤럴드경제는 이를 일 하지도 않은 딸과 아들에게 회사 돈을 매달 지급하고 탈세까지 한 혐의가 있는데도 '이명박 대세론'이 이어진다는 것에 대한 자조가 깊게 배어나는 말이라고 해석했다. 경쟁관계에 있는 신당의 입장을 다 들어줄 이유야 없지만, 신당으로서는 '여러 명의 이명박 후보'와 싸우는 느낌을 받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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