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삼성경제연구소 베껴쓰기가 지나치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의제를 설정하고 언론이 이를 인용 보도하면 정치권에 반영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민간 기업 부설 연구소가 의제설정을 주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보고서가 발간될 때마다 웹 사이트에 공개하기에 사흘 정도 앞서 언론에 이를 보도자료 형태로 송부한다.

10월1일부터 30일까지 한 달 동안 18개 주요 일간지(종합지·경제지)의 삼성경제연구소 인용 보도는 무려 251건에 이른다. 한 신문당 14건, 거의 이틀에 한 번 꼴로 이 연구소를 인용 보도했다는 이야기다. 정부 부처를 제외한 뉴스 소스로는 단연 1위라고 할 수 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한국 사회 의제 설정을 주도한다는 우려가 설득력 있게 들릴 정도다.

   
   
 
삼성경제연구소가 10월4일 배포한 <두뇌 강국으로 가는 길>  이라는 보고서는 조중동과 한겨레, 경향 등 11개 전국단위 일간지와 7개 경제지가 모두 받아썼다. 11일 발간한 <서브프라임 사태와 세계 경제 향방>와 29일 발간한 <중국 인플레이션 원인과 시사점>은 각각 11개와 10개 신문에서 받아썼다.

문제는 이 연구소가 재벌 대기업의 이해를 대변하는 논리를 지속적으로 생산해 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 연구소는 자본시장통합법의 핵심 논리를 제시해 왔고 인수합병(M&A) 활성화와 금산분리 완화,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등을 주장해 왔다. 대기업의 경영권 보호장치를 제도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일찌감치 한미FTA(자유무역협정) 논의를 촉발시킨 곳도 바로 삼성경제연구소다. 노무현 정부 출범 전에는 400여 쪽에 이르는 <국정 과제와 국가 운영에 대한 아젠다>를 대통령 당선자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보고서가 통째로 인용되는 경우도 있지만 연구원들의 주장이 인터뷰 형태로 기사에 반영되는 경우도 많다.

정희용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새사연)’ 미디어센터장은 “재벌 대기업이 산하 경제연구소를 통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보고서와 정책 제안을 발표하면 언론은 그 주장을 여과 없이 보도하기 바쁘다”면서 “기업의 천국이라는 미국에서도 일개 기업 연구소가 국정 아젠다를 정부에 공급하는 일은 없다”고 지적했다.

기자들은 전문가 풀의 부재를 한계로 지적한다. 삼성경제연구소 보고서의 퀄리티가 높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데이터베이스 관리가 잘 돼 있고 다른 민간 연구소에 비해 상대적으로 공신력을 인정받고 있기 때문에 자주 찾게 된다는 이야기다. 다른 신문에서 비중 있게 다루는 보고서를 무시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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