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임금동결과 무교섭을 선언한 사업장이 부쩍 늘어나자 노동계가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17일 현재 노사합의로 임금을 동결키로 한 사업장이 2백50개, 무교섭을 선언한 업체는 1백42개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에 비해 각각 1백45개와 1백16개 사업장이 늘어난 것이다. 특히 올해 임금동결과 무교섭 선언에는 예년과 달리 대기업의 참여가 두드러진 점이 특징으로 꼽히고 있다.

실례로 올해 초부터 경영난 등으로 인해 ‘삼성인수설’에 시달려야 했던 쌍용자동차의 경우 고용승계 등을 조건으로 노조가 무교섭을 선언했다. 대우전자 노조가 지난 3월 회사측과 임금동결에 합의했으며 효성중공업, 동국제강 등의 사업장 노조들 역시 무교섭을 선언했다.

노동부 노사협의과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최근 재벌기업의 부도 사태가 잇따르고 경기 침체현상이 지속되자 각 사업장 노조들이 임금인상보다는 고용안정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민주노총 조직국의 한 관계자는 “대기업의 잇따른 부도사태에서 보듯 사용자의 부실경영이 노동자들의 고용상태를 위협하는 직접적인 요인이 되고 있다”면서 “조합원의 고용안정을 책임져야 하는 노조로서는 임금동결 등이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노동계는 이런 ‘현실론’을 감안한다해도 무교섭 업체의 증가 현상이 전체 임단협 기상도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는 데 대해 적지 않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통상 개별 사업장의 임단협이 동종업종이나 인근 지역 사업장의 임단협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쳐 온 관례를 보더라도 무교섭 사업장의 증가는 결코 반가운 일이 못되기 때문이다. 임금동결 등으로 인해 해당 노조의 활동 뿐 아니라 전반적인 노조 운동 진영의 조직력과 투쟁력을 약화시킬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더욱이 일부 노조에선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등 노동법의 독소조항을 앞세운 사용자측의 공세에 떠밀려 임금동결에 합의하는 모습도 보여 우려를 더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 22일 전문노련(위원장 양경규)이 임단협 과정에서 사용자측과 임금동결은 물론, 전임자 축소 등을 합의한 전경련 노조를 제명 조치하면서 “전체 노동자들에게 심각한 악영향을 끼쳤다”고까지 평가한 대목은 최근 상황을 바라보는 노조운동 진영의 ‘긴장감’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모든 임금동결 사업장 노조들을 상대로 전경련 노조와 같은 ‘고강도’ 처방을 내릴 수 없는 현실 또한 노조운동 지도부의 고민 거리이다.

민주노총 조직국의 관계자는 “임금동결 등에 합의한 각 노조의 처지가 제각각인 상황에서 상급단체가 일률적인 대응책을 집행하기도 곤란했다”며 “그러나 5월 중순을 지나면서 더 이상 무교섭을 선언할 사업장이 없을 것으로 판단되는 만큼 이제는 본격적인 임단협에 집중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임금동결 등으로 인해 조성된 침체 국면을 강한 교섭력을 바탕으로 한 사업장들의 투쟁으로 돌파하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실제 본격적인 임단협 시기를 맞아 노사간 대립이 첨예화될 경우 교섭권 포기현상은 한풀 꺾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파장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경기 침체가 지속되는 한 사용자들은 언제든 또다시 노조의 약한 고리를 공략하면서 임금동결과 무교섭을 요구해 올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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