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담해져버린 이땅의 언론을 건지는 길은 실천과 행동의 전략일 뿐이다.”
병자년 한해를 갈무리할 무렵, 김중배선생이 권력과 대재벌의 ‘나팔수’로 전락한 언론을 향해 내놓은 처방이다.

이미 비판 불감증 환자가 돼버린 언론을 치유하기 위해선 구체적 실천밖에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김선생의 행동 전략은 두가지로 요약된다. 그 하나는 언론사 소유의 집중과 세습을 단절할 운동과 법제의 실현이다. 또 하나는 국민주 방송의 설립이다.

이 두가지 실천 전략은 언론인인 동시에 운동가인 그만의 독특한 처방이라고 볼 수 있다. 30여년간 몸담아 온 언론 현장에서 느낀 문제의식과 지난 94년부터 시민운동단체인 ‘참여민주사회시민연대’를 이끌어 오면서 체득한 운동적 해법이 융합한 결과라고 하겠다.

보다 엄밀히 말하면 김선생의 실천 전략은 운동적 해법에 더 가깝다는 인상을 준다. 소유권과 편집권의 분리를 법제화하는 것이나 국민주 방송을 건립하자는 제안은 모두 국민적 운동을 통해서만 실현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난 91년 권력보다 더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언론자유 제약세력인 ‘자본과의 싸움’을 선언할 때까지만해도 그의 해법은 ‘언론적’이었다. 그러나 이젠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그는 이미 실천가로서 이 시대의 한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1일 있은 대담은 서울 광화문 근처의 ‘6월항쟁 10주년기념 범국민추진위원회’의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김선생은 이 단체의 상임공동대표이기도 하다. 대담은 MBC 손석희 아나운서가 맡았다.

누구나 김선생을 처음 만나게 되면 자의반타의반 작은 문제 하나를 풀어야 한다. 바로 호칭문제다. 지인들은 그를 ‘김부장’, ‘김국장’, ‘김위원’, ‘김사장’, ‘김대표’ 등으로 부른다. 그만큼 김선생은 곡절 많은 시절을 겪어왔다.

김선생은 이 많은 호칭 가운데서 ‘김부장’, ‘김위원’으로 불리는 게 가장 편하다고 한다. 동아일보사 재직 당시 20년 가까이를 사회부 부장과 논설위원으로 일한 만큼 귀에 익은 호칭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아직 그가 ‘기자’이기 때문이다.

-‘6월항쟁 10주년기념 범국민추진위원회’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습니다. 현재 범추위 상임대표를 맡고 계신데요. 이 사업의 취지를 설명해 주십시요.

“단순히 ‘과거’를 기념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6월항쟁 10주년을 맞아 보다 미래지향적인 사업을 해보자는 것입니다. 87년 6월항쟁은 4.19혁명 당시에도 조용했던 지역 주민들까지도 시위 대열에 참여할 만큼 전국민의 민주주의 열망이 분출된 역사적 사건이었지요.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도 국민들의 염원인 민주주의는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실질적 민주주의 이전에 절차적 민주주의조차 실현되지 못한 현실이 과연 자유민주주의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어요. 이는 바로 일부 지배세력이 민주주의를 외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제를 총체적으로 조명하고 미래지향적인 전망을 만들어보자는 게 이 사업의 취지입니다. 민주 민족운동의 새로운 토양을 만들기 위한 운동입니다.”

김선생은 시민운동에 몸담은 이후 줄곳 ‘새로운 운동’을 고민해왔다. 그가 대표로 있는 ‘참여민주사회시민연대’ 역시 80년대 운동의 긍정성은 살리되, 90년대의 새로운 운동 방식을 창출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이번 6월항쟁 10주년 사업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다가올 미래를 어떤 전망 아래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다.

-노동법, 안기부법 날치기 개악에 반발해 터져나온 노동계 총파업 정국을 지켜 볼 때 아직 사회 저변에는 반독재 정서가 내재돼 있다고 보여지는데요. 최근 한보 부도 사태에 이르기까지 시국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한마디로 ‘혁명적 상황’이라고 봅니다.
소위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절차적 민주주의를 무시하는 행태가 재현되고 있는 데 대해 많은 국민들이 강한 불만을 느끼고 있습니다. 실제 많은 국민들은 아직 개정 노동법이 왜 문제인가에 대한 확고한 인식이 없어요. 일차적으로 날치기에 분노하고 있는 것이지요. 문제로 부각된 정리해고제다, 변형근로제다 하는 것들이 중산층까지 생존적 불안을 느끼도록 자극해 새로운 분위기를 양산했습니다.

한보사태에서 보듯 5조 몇천억원이라는 막대한 돈을 한 재벌에게 융자해주는 사상 최대의 부패현상이 터졌어요. 확인은 안됐지만 한보 비리에 연루됐다는 사람들의 면면이 권력의 핵심들이고 권력자의 혈육까지 거론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를 총제적으로 바라볼 때 혁명적 상황이라고 할 수 있지요.”

김선생은 이 ‘난국’의 돌파구를 어디서 찾느냐가 관건이라고 진단했다. “혁명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처방이었다. 정치 경제 사회 전분야에 걸친 총체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선생은 현 정부가 이같은 총체적 개혁을 단행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고 진단했다.

임기가 1년 남은 상황에서 많은 것을 요구할 수 없는 만큼 몇가지로 축약한다면 그 첫째가 바로 이번 한보 사건에 대한 철저한 수사이다. 말 그대로 성역 없는 수사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대통령은 이를 통해 ‘고비용’의 정치 문화를 청산하는 토대를 마련하는 동시에 신한국당의 정권 재창출에 매몰되지 않는 역사적 대통령으로 남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이번 노동계 총파업 양상이 6월 항쟁 때와는 달리 조직된 대중이 거리로 나서고 있는데요. 조직 대중 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까지 포괄할 수 있도록 운동 방식을 좀 더 다각화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나 생각됩니다만.

“운동세력이 어떤 방식으로 운동을 펼쳐나가느냐의 문제인데요. 민주노총이 총파업 과정에서 보여준 유연전략은 많은 시민적 지지을 얻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운동세력은 대중적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6월 항쟁의 성과로 많은 시민단체들이 생겨났습니다. 이전에 비해 횔씬 탄력적이고 유연하면서도 전문성을 확보하고 있지요. 한단계 높은 민주운동을 전개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들 다양하고 전문성을 갖춘 시민단체들이 통합적 전망 속에서 새로운 운동 양상을 보여준다면 대중적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봅니다.

이번 노동계 총파업에도 보듯 세계사적으로 한국 사회의 위상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세계 그 어느 나라를 봐도 우리 사회처럼 운동의 역동성을 갖고 있는 사회가 드문 게 현실입니다. 이를 보고 외국의 사회운동가들은 한국을 부러워하고 있어요. 그 만큼 사회와 역사 변화의 요구가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관심을 언론쪽에 맞추면 이번 민주노총 총파업 대열엔 언론 노조들도 참여했는데요. 사상 초유의 언론 총파업은 이후 언론운동의 진로에도 많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난 1월16일은 언론인들에게 있어 궐기의 날이자 참회의 날이었지요. 비록 신문과 통신 노조의 참여가 적었어도 전국의 거의 모든 언론 노조가 참여했다는 점에서 우리 언론사에 기록될 날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후배들에게 꼭 이날이 ‘참회의 날’이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그 이유는 첫째가 왜 궐기하는가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고 둘째로 대중적 설득력을 얻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언론은 노동법 개정 논의가 지속되는 동안 과연 얼마나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했는가, 또 국민에게 제대로 알려왔는가, 정권의 날치기를 준엄히 질타한 적이 있는가 등을 되물어 봐야 합니다. 실제 일부 지식인들 가운데는 언론종사자들이 언론자유를 위해 파업을 하면 설득력이 있지만 노동법과 관련해 총파업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보는 사람들도 더러 있는 상황입니다.

언론노조의 총파업에 대한 국민적 설득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대중과 영합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이들의 지지를 많이 확보하기 위한 전략은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언론 역시 한보 사태에 책임이 있습니다. 그들이 5조 몇천억원에 이르는 엄청난 거액을 대출받는 것을 감시해야 하는 언론이 제 역할을 다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언론노조의 총파업은 분명 ‘한국 언론사에 기록될 사건’이었다. 그러나 언론 노조가 총파업을 단행했다는 사실과 언론이 날치기 악법의 문제점을 제대로 보도했는가는 별개의 문제이다. 언론종사자들이 각자의 ‘현장’에서 진실 보도라는 사회적, 역사적 소명을 다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는 이번 언론 총파업이 남겨 놓은 숙제이기도 하다.

김선생은 그런 점에서 과거 ‘참여연대’등 시민단체들이 그토록 줄기차게 전두환·노태우씨에 대한 사법처리를 요구할 때 언론이 보였던 ‘철저한 외면’과 김영삼대통령의 한마디에 ‘돌변한 태도’ 사이의 괴리를 ‘참담함’으로 말한다. “언론종사자들은 대국적 견지에서 언론의 사회적 역사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김선생은 강조했다.

-최근 언론 구성원들은 지사적 측면보다는 월급쟁이로 폄하되기도 하고 또는 새로운 성격의 권위적 주체로 행동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미 ‘언론자본과의 싸움’을 선언하신 바 있는데요, 언론자본이 권력화하면서 그 구성원조차 다면적 성향을 띠게된 것 아닌가 싶은데요. 어떻게 보십니까.

“거대 신문사의 경우 패권주의적 현상이 있습니다. 권력을 창출한다고 믿는 거지요. 이에 편승해 부화뇌동하는 일부 언론종사자들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협의에 있어 언론자본의 횡포는 민주주의와 관련된 문제라고 볼 수 있는데 바로 언론사 내에 언론자유가 없다는 아이러니입니다.

이런 풍토를 개선시켜 나가기 위해선 사내 민주주의 획득이 우선돼야 합니다. 언론자본 문제는 자본 그자체로 기능하면서 일반자본과 동화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언론 사주의 말이 자본 일반을 대변하는 것이지요.

언론 종사자에 대해 지사다, 월급쟁이다 하는 식의 평가에 대해선 회의적입니다. 그보다 언론종사자들이 전문직업인다운 모습을 갖췄으면 합니다. 그만큼 사회와 역사를 책임지려는 프로페셔널이 됐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김선생의 언론 자본에 대한 매서운 비판은 계속됐다. 언론 사주가 자본가 처럼 신문 제작 공정에 사사건건 개입하는 참담한 현실을 지적하면서 그는 유린된 언론자유의 참상을 보는듯 했다.

“신문 발행인의 자유가 끝없이 확대 강화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자본 일반을 대변하고 있고 자연스럽게 권력의 목소리와 일치되고 있습니다. 권력의 언론 통제 보다 더 강한 언론사주의 통제력이 발휘되고 있지요. 실제 신문 발행인이 칼럼 필자를 지정하고 사설에 개입하기까지 합니다.

상상할 수 없는 풍속이 지금 일상화되고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듣게됩니다. 당연히 언론종사자들은 부자유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다 패권주의와 자사이기주의에 매몰될 경우 집단이익이 된다면 자기 의견과 안맞아도 수용하겠다는 의식이 팽배해지는 것이지요.”

-역시 올해 최대 이슈는 대통령 선거입니다. 방송은 의례 기술적 측면 아니면 신속성 쪽에 무게를 두다보니 선거과정의 공정성 문제를 간과하기 쉬운데요.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시점부터 공정성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그래도 최소한의 임무가 아닌가 생각되는데요.

“일상적인 보도 역시 선거보도라고 봐야지요. 민주주의를 일컬어 날마다 국민투표하는 제도라고도 합니다만, 언론이 바로 그 국민투표의 참고서가 되는 것이죠. 그만큼 언론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의제를 설정하고 공약을 비교할 수도 있겠지만 그 보다는 국민이 올바로 후보를 선택, 평가할 수 있도록 참고서 역할을 제대로 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올해 또 다시 우리사회의 고질적인 지역주의가 재가동되는 비극적인 상황이 재현될 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김선생은 평소 우리사회의 전망을 제시하는 ‘대이론(grand theory)의 부재’를 안타까워 했다. 97년의 대통령선거가 이미 예정돼 있었던 것처럼 국면 국면에 일희일비 할게 아니라 장기적인 전망을 갖고 구체적이고 단계적인 준비를 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점에서는 언론인들, 언론운동도 결코 예외는 아닐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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