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5년 7월 26일 신문들은 일제히 외무부 대변인 발표를 인용, ‘한국목사 연변서 납북’이라는 제목으로 안승운 목사의 입북사실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25일 외무부 대변인의 공식발표를 보면 “본인의사에 반해 유인된 것”이지만 “북한의 납치로 판단하기에는 이르다”는 유보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어 신문들이 자의적 판단에 따라 ‘북한의 납치’로 단정, 보도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당시 언론은 ‘북 또 사람 납치’(조선), ‘한국목사 중서 납북’(동아), ‘북 강경파 주도 화해 찬물’(국민) 등 안목사의 입북사실을 단정적으로 보도했다.

또 납치자의 숫자도 동아 2명, 조선 3명 등 신문사마다 각기 다른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라 사실확인 없이 보도한 데 이어 납치범의 신분도 신문사마다 ‘북한으로부터 청부받은 자’(동아), ‘북한의 특수요원’(중앙), ‘남한요인 납치조’(조선)등으로 납북이라는 전제하에 추정 보도했다.

특히 조선은 정부가 안목사사건과 쌀회담을 연계시키지 않기로 한 것과 관련 ‘안 어울리는 <납치>와 <쌀>’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게재, 안목사사건을 남북경색 국면으로 몰아가는 듯한 보도태도를 보였다.
이런 가운데 연길에서 실종돼 북한으로 간 안목사 사건은 자진 월북인지, 납북인가에 대한 진상규명이 관건이었음에도 불구 이에대한 의혹을 제기했던 신문은 많지 않았다.

동아와 세계 등이 각각 ‘납치인가 자의인가’, ‘안목사 납북인가 망명인가’라는 제목으로 몇가지 의혹을 제기했을 뿐이다.

안목사 입북사건은 사건 발생으로부터 1년 남짓 지난 96년 8월26일이 돼서야 중국 법원이 ‘북한 공작원에 의한 납치’로 결론내리고 북한인 리경춘 및 조선족 3명을 사법처리함으로써 사실상 종결될 수 있었다. 언론의 추측보도가 이번처럼 ‘사실’로 밝혀진 사례는 극히 드문 경우이다. 박미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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