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5년 10월 전국민의 관심이 노태우 전대통령의 비자금 수사에 집중되고 있을 때 터져나온 부여 간첩 김동식-박광남 사건을 다룬 언론의 보도태도는 철저한 사실 확인 보다는 사건의 충격을 확대보도하는 데만 급급했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특히 안기부가 생포 간첩 김동식의 과거 행적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허인회씨 등 국내 재야단체 인사들을 연이어 접촉했다고 밝히자 언론은 간첩 김동식의 증언만에 비중을 둔 채 허씨를 간첩과 내통한 ‘수상한 사람’으로 몰아부치기도 했다.

간첩 김동식과 박광남의 부여 무장 간첩이 발생한 직후 언론은 사건 당시 최초 신고자를 비롯, 도주 간첩에 대한 수색작전, 휴대 무기 등에 대한 사실 확인 작업에 소흘한 결과, 적지 않은 ‘오보’를 양산했다.

일부 언론의 경우 최초 보도에서 간첩이 기관총을 휴대하고 있다고 보도했으나 실제 간첩들이 휴대한 무기는 무성 권총 1정씩이 고작이었다. 또한 총기 오발 사고를 군경 수색작업 도중 간첩과의 교전이라고 보도한 언론사도 있었다. 군경 당국이 기자들의 상황실 출입을 통제하는 등 취재과 관련된 제한 조치가 많았다고는 하나 언론이 사실 확인을 명확히 하지 않은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언론은 또 검거된 간첩 김동식이 안기부 조사 과정에서 허인회씨 등 재야 인사를 만났다고 자백한 사실이 공개되자 간첩 김동식의 말만을 비중 있게 다뤄 허씨 등의 간첩 김동식 접촉설을 기정 사실화해 보도했다.

더욱이 언론은 허인회씨가 국가보안법 상 불고지죄 등의 혐의로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김동식이 허씨가 취득하지도 않은 운전면허를 취소당했다고 말했다는 등 사실과 전혀 다른 내용을 진술한다거나 “기억나지 않는다”며 답변을 회피하는 등 진술의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됐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선 관심 밖이었다.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보겠다는 의지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허씨가 구속된 지 1년만인 지난해 11월 8일 1심 선고 공판에서 허씨의 무죄 사실이 입증되자 이를 단순 사건성 기사로 취급하는 데 그쳤을 뿐이다. 허씨는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직후 이같은 언론의 보도 태도에 대해 “어떻게 대한민국 국민보다 간첩의 말을 더 믿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며 답답해 심정을 털어놨다.

결국 언론은 사건 초기 부정확한 사실 확인이라는 ‘악수’를 연발했으며 입증되지 않은 간첩의 진술을 액면 그대로 신뢰한 나머지 간첩 김동식의 ‘실체’ 규명에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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