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혜림씨 일가 서방탈출 사건은 지난해 조선일보 2월13일자를 통해 보도됨으로써 세상을 한바탕 떠들썩하게 했다. 국내외 언론사는 후속보도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진흙탕 싸움을 방불케 하는 취재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과열 경쟁과 달리 현재까지 언론에 의해 밝혀진 사실은 이들이 과연 망명에 성공했는지, 아니면 다시 러시아로 돌아갔는지조차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채 언론사에 따라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조선일보의 보도 이후 동아일보, 한겨레21, 기자협회보 등은 성혜림 일가의 서방탈출에 대해 여러가지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를 요약해보면 △성씨가 김정일의 본처라는 근거가 없다 △취재원(이한영씨)과 협의한 보도시점을 어겨 결과적으로 망명에 어려움을 초래했다 △성씨가 월간조선이 주선한 전화통화로 망명결심을 내린 것은 사실과 달리 부풀려졌으며 결과적으로 망명자의 인권을 저버렸다 등이었다.
지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동아일보는 지난해 4월24일자 기사를 통해 재러시아교포 H씨의 말을 인용 “성혜랑씨는 지난 2월13일 보도 이후 일주일이 지나도록 성혜림씨와 합류를 하지 못해 혜림씨의 생사를 걱정했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이제 초미의 관심사는 과연 성혜림씨가 망명을 했는가의 여부였다.

중앙일보 지난해 7월25일자는 여기에 하나의 귀중한 단서를 찾아냈다. 중앙일보는 장기간의 추적 끝에 러시아 크렘린의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 “성혜림씨가 서방이 아닌 북한의 영향력이 미치는 지역에서 관계요원들의 보호를 받고 있다”며 “그동안의 성씨 관련 보도는 특종의식과 센세이셔널리즘이 촉발한 추측 보도”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성씨의 망명이 좌절된 데는 언론의 성급한 보도가 중대한 원인이 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1월엔 SBS가 성혜림씨가 중국 북경에 체류하고 있다는 보도를 했지만 이는 오보일 가능성이 크다. SBS의 보도는 성씨의 북경체류설을 뒷받침해주는 어떤 사실(fact)도 갖추지 못했으며 이에 대해 정부 당국은 공식부인했다.

성씨 일가 탈출 사실을 최초로 보도한 조선일보 우종창기자(월간조선부)는 최근 이한영씨 피격 사건이 발생한 직후 주간조선 2월27일자를 통해 정부 관계 당국의 한 고위관계자의 말을 인용 “성씨 일가가 성공적인 잠적을 하고 있는 상태”이며 이 일행 가운데 성혜림씨도 합류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 보도 역시 익명의 관계자 진술 외에 별다른 근거를 제시하고 있지 못한다. 결국 성씨 일가의 서방탈출 보도는 성씨 일가가 무사히 망명을 했는지, 망명 일행에 성혜림씨가 합류했는지 등 중요한 사실에 대한 어떤 규명도 하지 못한 채 미제(未濟)의 사건으로 남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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