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계 은행 HSBC가 외환은행의 대주주인 론스타 펀드와 매각 협상을 체결했다는 소식과 함께 국부 유출 논란이 다시 제기됐다. 쟁점은 두 가지다. 론스타가 세금 한 푼 안내고 돈 벼락을 맞도록 내버려 둘 것이냐는 것이 첫 번째고 론스타에게 팔렸던 은행을 다시 외국계 자본에 넘겨도 되느냐는 것이 두 번째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쟁점은 서로 충돌한다. 외환은행은 지금 론스타의 소유다. 이를 다시 사들여서 론스타에게 천문학적인 시세차익을 안겨주는 것이 국부 유출일까. 아니면 이를 HSBC에 팔아넘기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국부 유출일까. 엄밀히 말하면 국부 유출은 2003년 9월 외환은행이 론스타에 팔려 넘어가면서 시작됐다. 그 거래가 합법이었다면 외환은행은 이미 국부가 아니고 이 은행이 어떻게 다시 팔려나가거나 국부 유출과는 무관한 일이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만약 2003년 9월 외환은행의 매각이 불법이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외환은행이 론스타의 소유가 아니라면 그 무렵 정부 소유의 은행이었던 외환은행은 여전히 국부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번 외환은행 매각 역시 국부 유출의 관점에서 신중하게 고민해야 한다. 2003년의 매각을 원점으로 돌릴 수 있는 가능성도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법원의 판단이 그리 쉽지 않을 것이라는 데 있다. 외환은행 관련 재판은 두 건. 론스타의 주식 매입이 불법인지 가리는 재판이 있고, 외환카드 주가 조작 사건에 대한 재판도 있다. 

   
  ▲ 매일경제 9월5일 3면.  
 
첫 번째 재판에서 론스타가 애초에 외환은행의 대주주가 될 자격이 없었는데 불법적으로 주식을 매입했다면 주식 매입이 무효가 될 수 있다. 문제는 이 경우에도 법원이 할 수 있는 일은 주식 매각을 명령하는 것. 론스타가 기꺼이 바라던 바다. 론스타 입장에서는 이미 매각 협상까지 체결했고 이제 와서 불법이든 합법이든 아무 상관이 없는 셈이다. 다만 내년 4월까지 매각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부담이 남아있다.

두 번째 재판 역시 외환카드를 합병하는 과정에서 주가 조작 혐의가 드러나 대주주 자격을 잃는다고 해도 달라질 게 없다. 이 경우에도 주식을 강제 처분해야 하는데 론스타 입장에서는 오히려 마음 편히 떠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거나 마찬가지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한겨레에 기고한 칼럼에서 "울고 싶은 아이 뺨 때려 주는 격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또 다른 문제는 재판이 좀처럼 끝날 기미가 안 보인다는 것. 20명의 증인 가운데 3명만 신문이 끝난 상태다. 아무리 일정을 당겨 잡아도 내년 1월 안에는 끝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금감위는 법원의 판단을 기다린다며 발을 빼고 있고 재판부 입장에서는 빨리 끝낼 수도 질질 끌 수도 없는 답답한 상황이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론스타와 HSBC의 계약이 자동 파기되는 내년 4월 이후로 최종 판결을 미뤄야 할 수도 있다.

국부 유출 논란이 방향을 잃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매각을 중단시키자니 계속해서 론스타에게 외환은행을 맡겨둘 수도 없는 일이고 론스타를 끌어내리자니 결국 HSBC에게 외환은행을 넘겨주는 꼴이 되고 말 것 같다. 그 틈을 타서 론스타는 매각 협상을 일사천리로 진행시키고 있다. 매각이 계획대로 성사된다면 론스타가 얻게 될 시세차익은 5조4547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 한국경제 9월5일 6면 머리기사.  
 
한국경제는 금융계 관계자의 말을 인용, "금감위가 거래를 막을 법률적 권한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안다"고 보도했다. 진행 중인 재판과 론스타의 외환은행 소유권이 무관하다는 전제 아래 금감위의 입장을 무시하고 매각을 강행할 가능성도 있다는 이야기다. 한겨레도 사설에서 "자격이 없는 대주주가 경영권 프리미엄을 챙겨서 떠나도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생길 수 있다"고 불안감을 드러냈다. 
 
   
  ▲ 한겨레 9월5일 17면 머리기사.  
 
한겨레는 "론스타가 한국을 쉽게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한 시민단체의 주장을 인용하기도 했다. 김주연 경제개혁연대 연구원은 "론스타의 대주주 적격성 문제 등을 철저히 조사하면 할수록 론스타의 가격 협상력은 떨어지게 될 것"이고 "론스타가 시간에 쫓긴 나머지 매각 차익의 일부를 포기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겨레가 인용한 김 연구원의 주장은 약간 애매하다. 재판 결과와 무관하게 외환은행의 몸값은 계속 치솟는 추세다. 론스타가 시간에 쫓기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헐값에 팔고 떠날 거라고 보기는 어렵다. 외환은행을 사겠다는 은행은 국내외에 줄을 서 있다. 게다가 론스타가 시세차익을 조금 더 많이 내느냐 적게 내느냐는 논란의 핵심이 아니다.

국내 자본을 역차별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외환은행을 노리고 있는 국민은행이나 하나은행에 기회를 줬어야 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다. 매경은 사설에서 "국내 은행들이 정부 눈치를 보며 발목이 잡혀 있는 사이 외국계 은행인 HSBC가 어부지리를 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 매일경제 9월5일 3면.  
 
헤럴드경제는 "시민단체의 투기자본 비판이 오히려 외국계 자본을 도와준 꼴도 됐다"는 시중은행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경향신문도 사설에서 "지난해 거세게 일기 시작한 '먹튀' 논란이 외국계 자본만 도와주고 국내 은행은 역차별한 결과를 초래한 셈이 됐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도 "먹튀 논란이 먹튀를 도와준 꼴"이라고 비난했다. 

조선일보는 좀 더 직설적이다. "정부로서는 국내 금융기관에 더 싼 가격으로 넘기게 하는 게 최선의 해법으로 보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어느 정도 시간을 끌어주면 HSBC가 제풀에 지쳐 포기할 수 있고 그렇게 될 경우 자연스레 국내 금융기관들이 한층 더 싼 가격에 외환은행을 인수할 기회가 올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들 신문은 HSBC보다는 이왕이면 국민은행에 매각되는 게 낫다는 입장을 숨기지 않았다. 먹튀 논란을 그만두고 진작에 외환은행을 국내 은행에 매각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 역시 석연치 않다. 국내 은행에 좀 더 싸게 팔고 떠났으면 먹튀가 아닌가. 이들은 먹튀 논란으로 결국 론스타의 이익이 늘어났다는 것, 그래서 국내 은행이 외환은행을 사기 어렵게 됐거나 더 많은 비용이 필요하게 됐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 조선일보 9월5일 B3면 머리기사.  
 
매경은 <기자24시>에서 한 국내 은행 임원의 말을 인용, "그놈의 국민정서법만 아니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거세게 비난하기도 했다. "민족주의는 반역"이라는 임지현 한양대 교수의 말을 인용한 대목까지 이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시민단체의 투기자본 비판을 민족주의로 몰아붙이면서 외환은행을 반드시 국내 은행에 팔아야 한다는 앞뒤가 안 맞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냉정히 말하면 국부는 이미 유출됐다. 1999년에는 제일은행을 팔아넘겼고 2000년에는 한미은행을 팔아넘겼다. 그리고 2003년에 외환은행을 팔아넘겼다. 외환은행을 노리고 있는 국민은행이나 하나은행 역시 지배적인 대주주가 없을 뿐 과반수 이상의 지분을 외국인 투자자들이 확보하고 있다. 냉정히 말하면 외환은행의 대주주가 HSBC가 되거나 국민은행이나 하나은행이 되더라도 국부 유출이라는 과거의 사실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물론 투기자본감시센터 등은 "론스타의 대주주 자격을 박탈하고 외환은행에 관리인을 파견해 강제 처분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취득 원가에 이자를 더한 금액으로 처분하되 취득 자금이 범죄에 사용됐다면 원금까지 몰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1991년 미국에서도 FRB가 BCCI은행의 경영권을 접수, 지분을 강제 처분한 사례가 있다.

대부분의 언론이 주문하고 있는 해법은 일단 법원의 판단을 기다려 보자는 것이다. 재판 결과가 론스타의 지분 매각을 막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마땅히 다른 대안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금감위에 결단을 요구하지도 않고 법원 판결을 재촉하지도 않는다. 다만 국부 유출이라는 감정적이고 다분히 공허한 비난을 쏟아내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 외국 은행에 넘겨주는 것보다는 국내 은행이 인수하는 게 낫겠다는 정도다.

짚고 넘어갈 부분은 단순히 외국 자본이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해서 비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중과세 방지협약이 체결된 나라에서 들어온 외국 자본이 우리나라에 세금을 내지 않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민족주의로는 국부 유출을 막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많은 언론이 론스타가 올해 2월 3542억원의 배당을 받았다고 비난했지만 외국인 지분이 80%가 넘는 국민은행의 올해 외국인 주주 배당은 1조154억원이나 됐다. HSBC보다 국민은행이 외환은행의 대주주로 적합하다고 볼 근거는 없다. 오히려 외환은행이 국민은행에 넘어가 합병되는 경우, 은행의 대형화와 독과점화가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해볼 수도 있다.

흔히 간과하지만 문제의식은 외국 자본이 아니라 투기자본에 맞춰져야 한다. 론스타가 외국 자본이어서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애초에 금융기관의 대주주가 될 자격이 없는 사모펀드였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재판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크게 무리수를 두지 않는다면 결국 외환은행 매각은 원칙대로 처리하는 게 맞다. 외국 은행은 안 되고 국내 은행은 된다는 제한을 둘 수는 없다. 금융기관의 대주주가 될 자격이 있느냐 없느냐를 심사하는 것이 금감위의 역할이다.

더 본질적인 대안은 장기적으로 금융의 공공성을 확보할 제도적 장치를 만들고 은행에 사회적 책임을 강제하는 것이다. 또 다른 론스타를 막는 것, 그리고 누가 대주주가 되느냐와 무관하게 은행이 제 역할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 더 시급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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