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12일 조선(북한) 노동당 황장엽 비서의 망명을 발표하면서 관련 부처 기자들에게 충분히 고지할 수 있었던 내용임에도 신문·방송사의 편집국장과 보도국장을 소집, 언론을 우롱한 처사라는 빈축을 사고 있다.

정부 대변인인 오인환 공보처 장관은 이날 오후 4시30분 각 언론사 편집·보도국장에게 “대북문제와 관련해 급하게 브리핑할 것이 있다”며 오후 5시30분까지 공보처에 모여줄 것을 요청했다.
오장관은 편집·보도국장이 모인 자리에서 황비서의 망명사실을 발표하고 중국과의 외교적 협상에 시간이 필요한 만큼 저녁 8시까지는 보도를 유보해 줄 것을 요청했다.

오장관의 이같은 발표는 망명자의 신분이 북한의 최고위층으로서 비중있는 인물임에는 틀림없으나 사실상 정부의 망명발표 취재를 신문및 방송제작의 최고책임자인 편집국장및 보도국장에게 시킨 꼴이어서 언론을 경시한 터무니없는 행태라는 빈축을 샀다.

중요한 국가적 사안인 경우 공보처장관등이 언론사 책임자 등을 불러 그 배경 설명을 해주는 경우는 있지만 이번처럼 책임자들을 소집해 사실상 취재를 시킨 일은 전례를 찾기 힘든 경우다.
오장관측은 이에 대해 사안이 중대하고 중국과의 외교 관계 등을 고려해 저녁 8시까지 엠바고(보도시한유보) 요청을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망명자가 아무리 북한의 최고위층이라고 하더라도 정부 발표에 대한 취재는 기본적으로 일선 취재기자들의 역할인데도 불구하고 신문제작 마감등 바쁜 일정에 쫓기고 있는 편집 보도국장을 불러 취재를 시킨 꼴이어서 언론계 취재 보도 관행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비난을 샀다.

또한 엠바고 요청 때문이었다는 해명도 사안의 성격상 3시간 정도의 보도유예를 요청하면서 중국과의 외교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는데다 이같은 요청이라면 기자들을 통해서도 충분히 가능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없다는 지적이다.

더구나 오장관의 엠바고 요청은 오장관의 소집통보를 받은 각 언론사 편집·보도국장들의 취재 지시로 이미 회견전에 황비서의 망명사실이 알려진데 이어 오후 5시30분 YTN에서 황비서의 망명 사실을 보도해 자동적으로 무산돼버렸다. 조간 신문들은 뒤늦게 기사를 작성해 싣느라 초판 제작까지 미루는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한 일간지 편집국장은 “정부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바쁜 마감 시간에 편집 및 보도책임자들을 소집한 것은 상식밖의 결정”이라며 “결과적으로 정부의 미숙한 일처리로 엠바고도 지켜지지 못하고 보도 시간만 앞당긴 우스운 꼴이 됐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