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 추진과 관련해) 전 언론사들이 모여서 성명 내고, IPI(국제언론인협회) 를 움직여 난리를 피우고 있다. 하지만 기자들이 아무리 난리를 부려도 임기까지 가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동 63빌딩에서 열린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아래 PD연합회) 창립 2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과 관련해 임기가 다할 때까지  현재의 정책을 강력하게 밀고 나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이날 "PD 모임에 대통령이 왜 왔나하고 놀랐을 것"이라며 "저는 PD연합회가 되게 센 줄 알고 왔다. PD는 방송의 전 영역을 커버하고 있고 보도와 순수창작 등 대중예술, 대중 정서와 함께 하는 대중문화를 주도해, 보도만 하는 사람들보다 사회적 영향력이 훨씬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그런데 사람들이 여러분의 그 영향력을 잘 모르는 모양"이라며 "권력은 아무리 큰 권력이라도 휘두르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여러분도 권력이 있고 저도 권력이 있다. 그 권력을 좀 쓰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또  "오늘 (이 자리에) 온 것은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말할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라며 "비서와 참모실에서 '(기자들 간담회 등에) 절대로 나가지 마세요. 이야기는 몇 사람에게만 전달되고, 그 다음에 나오는 기사는 기자 마음에 달린 것이니까 사건을 만들지 않는 게 좋겠다'고 하던 중에 PD연합회가 영상메시지를 보내달라는 요청을 해왔고 실물이 더 나을 것 같아 왔다"고 말했다. 이어 "기자가 오라 하면 안 가겠지만 프로듀서가 오라고 하면 가겠다"며 기자들에 대한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노 대통령은 이어  "소위 인권·노동 변호사 이름을 달고 사회현실에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왜 언론이 독재정권의 입노릇을 하는지 거짓말이 너무 많았다. 독재권력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구나 싶었다. 1987년 이후 많이 바뀌기 시작했고 언론이 스스로 자유로워지기 시작했지만 그것을 거부한 언론도 있었다. 우리 편 언론은 좋아보이고 반대편은 미워보였다. '긁어버리겠다' '확 조져버리겠다'는 협박을 많이 당했다. 당시 노무현 대변인이 소송을 취하하지 않으면 시리즈로 긁어버리겠다고 해서 (해당 언론과) 적이 되었다"고 털어놓았다.

   
  ▲ 31일 서울 여의도동 63빌딩에서 열린 한국프로듀서연합회 창립 20주년 기념식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축사를 하고 있다. ⓒPD저널  
 
노 대통령은 "(이렇게) 우리편과 저편으로 언론을 이해했지만, 노태우 전 대통령이 말년에 자신을 지지한 언론으로부터 버림받고 몰락하는 것을 봤다. 새로운 권력의 대안인 김영삼을 선택하고 노태우를 무력화하는 것을 봤다. 문민정부 말년에 또 '새로운 권력의 대안'을 보고 김영삼 정권을 가차없이 침몰시키는 것을 봤다. 그러면서 '아! 언론이 권력이다. 더는 권력에 편드는 게 아니고 그들 스스로가 이미 권력이다'라고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인수위원회를 꾸려 대통령직을 준비할 당시 기안 단계에서 검토되고 있을 뿐 이후 단계까지 진전되지 않은 정책안들을 언론이 마치 정책인 양 기정사실화해서 기사로 만들었다. 심지어 기획문서를 (기자들에게) 도둑맞기도 했다"며 "그래서 기존의 민주주의에 대한 생각보다 정부조직의 기능을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민주주의 사회에서 합의를 이뤄나가기 위해서는 △정확한 사실을 근거로 하는 것 △공정하게 토론의 기회를 주는 것 △마지막으로 표결하는 것 등이 필수적인 원칙으로 필요하다"며 "견제의 메커니즘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임기이며 이 메커니즘을 제대로 작동시키는 게 사회적 공기이자 공공의 자산으로서의 언론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내가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뒷받침할 여러 사실들을 '국정브리핑' 등에 올려놨는데 언론은 읽지도 쓰지도 않는다"고 성토하는 한편 "기자실을 운영하는 나라가 몇 나라나 되고 평가는 어떠하며 사무실 출입에 대한 원칙, 기자 인터뷰할 때 절차가 어떤지 등과 관련, 우리(정부)가 주장하는 바에 대해 갑론을박하고, 이해관계가 없는, 지성을 갖춘 사람들이 판단을 하게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언론은 '그들'의 사유물"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노 대통령은 또 "특권을 인정하지 않는 소위 '개혁'을 하려 했고 공생관계를 청산하려 했더니 예전에 편갈라 싸우던 언론이 내게 다 적이 됐다. 편들어 주던 진보언론까지 일색으로 나를 공격한다. 그게 이 싸움"이라면서 "요즘 '깜'도 안 되는 의혹이 춤추고 (내) 과오는 부풀려지고 있다"며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 추진을 둘러싼 정부와 기자들간의 갈등관계에 대한 인식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노 대통령은 '언론이 권력'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며 "검찰, 국정원, 국세청, 경찰 등 권력기관들과 공생관계를 청산했다. 다음은 언론 차례"라고 경고했다. 노 대통령은 "정부 초기 언론이 인사에 대해서도 발언할 만큼 큰 권력을 갖고 있어서 그 때 이미 기자실을 폐지시켰다"며 "그런데 몇 년 지나서 보니 그루터기가 남아 있어서 가판 끊고 기자실 폐지하고 사무실 무단출입을 막았더니 그 때부터 참여정부는 언론을 탄압하는 정부가 됐다"고 주장했다.

노 대통령은 이와 함께 "정언(正言)의 장이 있어야 한다"며 "국정브리핑 청와대브리핑 KTV 등이 열심히 하는데 많이 안본다. 그거나마 있고, 무기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노 대통령은 한 시간여 동안의 축사에서 대선주자에 대한 평가, 국정운영 전반과 관련된 철학 등에 대해 설명하며 "국민 각자가 자신의 이해(利害)와 결부된 인과관계를 이해하도록 하려면 언론이 협조해줘야 한다"면서도 "이 복잡한 얘기를 기자들은 쓸 수 없고 프로듀서라야 이 긴 얘기를 담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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