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손범수, 오영실, 정은아 아나운서가 봄철 프로그램 개편이 있는 오는 3월 2일 KBS를 사직하고 프리랜서로 나서게 됐다.

이들은 그동안 ‘가요톱 10’,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손범수), ‘가족오락관’(오영실), ‘아침마당’, ‘회전목마’(정은아) 등 KBS 주요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으며 간판 아나운서 역할을 해왔다.

이들은 회사를 떠나 프리랜서로 나서게 된 까닭에 대해 “6개월 전부터 사직의 뜻을 표했다”(손) “그동안 소홀했던 아이들과 가정에 충실하고 싶다”(오) “직장인이라는 틀에 얽매이지 않고 능력만큼 대우를 받고 싶다”(정) 등으로 각자의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이런 개인적 이유 외에도 이번 세 아나운서의 잇단 사직엔 지난 1월 벌어졌던 노동법 총파업도 적잖은 원인이 됐다는 후문이다.

총파업 당시 회사측과 노조는 아나운서들의 파업참여 문제를 놓고 몇 차례 몸싸움을 불사하는 신경전을 벌여야 했다. 회사측은 아나운서들이 파업에 참여하게 될 경우 당장 프로그램 진행에 차질을 빚을 뿐만 아니라 파업의 여파를 시청자에게 알리는 결과가 돼 이들을 구인(拘引)하다시피 프로그램에 투입시키려 했다. 노조측은 이들의 참여여부가 파업 분위기 등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에서 사측의 시도를 극력 저지했다.

아나운서들은 대부분이 파업에 참여, 노조측의 입장에 섰다. 그러나 이들은 파업 기간 내내 다른 노조원들보다 더 심한 고초와 정신적 갈등을 겪어야 했다. 간부들이 계속해서 프로그램 복귀를 종용했던 것이다. 심지어 홍두표 사장은 “파업에 참여한 아나운서들에겐 마이크 잡을 기회를 박탈하겠다”는 협박성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파업이 끝나자 당장 보복조치들이 취해졌다. 파업기간중 복귀를 종용했던 간부들은 태도를 돌변 이번에는 아나운서들의 프로그램 복귀를 육탄으로 저지하고 나섰다. 이 과정에서 한 아나운서는 업무복귀 첫날 프로그램 진행을 맡지 못했으며 다른 아나운서는 프로그램 진행 도중 간부들에 의해 끌려나갈 뻔 한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회사측은 오는 봄철 프로그램 개편에서 MC를 새로운 얼굴로 바꾸겠다고 공언하는 등 아나운서에 대한 대폭적인 물갈이를 암시하기도 했다.

노조 간부를 맡고 있기도 한 오영실 아나운서는 파업 참여 당시의 심경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사실 중간에 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이런 어려움을 개인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웠고 한계를 절실하게 느꼈다.” 오아나운서는 자신을 비롯해 손, 정아나운서가 사직을 결심하게 된 배경엔 자신이 겪었을 이런 어려움도 적잖이 작용했다며 앞으로도 노사가 이런 평행선을 달리는 상황이 또 벌어질텐데 “남아 있는 사람들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KBS 아나운서들의 잇단 프리선언을 지켜보는 방송계의 시각은 이런 점에서 상당히 착잡해 보인다. 능력에 따라 대우를 받는 ‘프리시대’를 열어나간다는 측면에서 전향적인 평가도 없지는 않지만 방송의 공정성 등 프리시대의 전제가 돼야 할 방송환경의 개선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자칫 방송인들의 개별화·파편화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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