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한보 사태 수사와 관련, 금품 수뢰 정치인들을 잇따라 특종 보도하자 정치권과 언론계 일각에선 ‘특정의도를 갖고 있는 일단의 세력이 개입돼 있다’며 보도 경위에 강한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가운데 조선일보측은 이같은 소문이 아무런 근거도 없는 일방적인 비난이라며 강력 반발하는 등 파문이 일고 있다.
▶관련기사 3·4·5면

조선일보는 지난 5일자에 신한국당 홍인길, 국민회의 권노갑의원이 정태수 총회장으로부터 각각 8억원과 5억원씩의 자금을 수수했다며 이를 1면 머릿기사로 보도했다. 조선은 또 10일자에 신한국당 김덕룡 박종웅 박성범의원, 문정수 부산시장이 선거자금으로 각각 5천만원을 수수했다고 단독 보도한데 이어 12일에는 국민회의 김상현의원, 신한국당 김정수의원, 이철용 전의원등도 한보로부터 각각 1억원에서 3천만원씩의 돈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조선에서 돈을 받은 것으로 보도한 정치인 가운데 권노갑의원과 홍인길의원은 구속됐으나 나머지 의원들은 금품 수수사실을 부인하고 있으며 검찰 수사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조선의 잇따른 특종은 모두 청와대를 포함한 서울시내 일부 지역에만 배포되는 이른바 ‘광화문 판’에서만 기사화됐다. 조선일보가 이처럼 한보 사태 수사 내용에 대해 다른 언론사에 앞서 관련 정치인들을 거명한 특종 기사를 내보내자 정치권과 언론계 안팎에선 조선일보 보도 과정에 ‘보이지 않는 손’이 개입돼 있다며 보도경위에 강한 의구심을 드러내고 있다.

김덕룡의원측은 “정치권의 재편을 노린 세력이 고의적으로 조선일보에 정보를 유출해 정치적 타격을 입히려는 고도의 ‘언론플레이’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덕룡의원은 10일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정치 음모설’을 공식적으로 제기했다. 한보로부터 1억원을 받은 것으로 보도된 김상현의원측도 “동일인에 의해 동일한 자료가 유출되고 있는 것 같다”며 “한보그룹 정보근 회장이 검찰에 소환된 이후 관련 정치인 명단이 대거 흘러나온 것에 주목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종웅의원측도 “배후가 의심스럽다”며 “단 한번의 확인도 없이 난데없이 돈을 받은 것으로 보도돼 명예를 실추당했다. 언론중재위에 조만간 중재신청을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각 언론사들도 공개적으로 이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 중앙일보는 12일자 ‘연루 정치인 명단 누가 왜 흘리나’라는 제하의 상자기사를 통해 “검찰 수사기록에도 나와 있지 않은 연루 정치인들의 명단이 마치 정태수 총회장이 검찰에서 진술된 양 외부로 유출되고 있다”며 “한보그룹과 검찰, 청와대 등이 그 배후로 지목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일보도 13일자 “보도경위도 야릇하고 마녀사냥 방식으로 진행돼 각종 설이 떠돌고 있다.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미뤄 특정인 혹은 특정세력이 한보리스트를 쥐고 정치적 딜링을 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는 게 정치권 안팎의 중론이다”고 밝혔다. 이밖에 KBS MBC 국민일보 경향신문 등도 ‘언론플레이’ 가능성을 거론했다.

이런 가운데 조선일보측은 “터무니 없는 비방”이라며 “그 어느 신문보다 한보 의혹에 대한 실체적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에도 이를 제대로 평가해주기는 커녕 깎아내리기에 혈안이 돼 있는 언론계 풍토에 환멸을 느낀다. 바람직한 기사경쟁은 도외시한 채 각종 설이나 음모설을 확대 재생산하는데 급급한 일부 언론사의 태도는 결코 바람직한 태도가 아닌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조선일보측은 또 “일련의 특종 보도 경위는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사회부와 정치부가 합작해서 만들어낸 것”이라며 “결단코 취재기자들이 아닌 윗선에서 정보를 확보하거나 기사 작성을 지시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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