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한국, 1991)
감독 : 강우석

대통령 후보 물망에 오르던 한 유력 정치인이 대선을 앞두고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우연찮게 한 여자가 이 장면을 목격한다. 자살이냐 타살이냐를 놓고 뜨거운 논란이 벌어진다. 경찰은 수사 결과를 토대로 자살로 결론짓지만, 자살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는 걸 눈치 챈 방송국 정치부 기자가 사건을 예리하게 파헤쳐 들어간다. 목격자와 취재기자는 보이지 않는 세력으로부터 생명에 위협을 받게 된다.

틀에 박힌 스토리다. 설정도 어설프다.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영화는 정적에 의한 숙청 가능성을 관객들에게 흘린다. 다만 한국 영화의 역사에서 일찍이 이런 유의 정치 스릴러를 본 일이 없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할까. 소재의 충격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만큼 이 영화는 희귀하다. 소재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시중에서 구해보기도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기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는 아마 지금까지도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닌가 싶다.

   
  ▲ 영화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 스틸컷  
 
많은 이들의 반응도 그랬다. 그 시절에 어떻게 이런 정치판의 뒷얘기를 영화화할 수 있었을까. 그만큼 세월이 변한 탓도 있을 것이다. 우리 현대사에서 1991년이라는 시점만큼 정치적으로 절묘한 시기가 또 있을까. 공교롭게도 내 머리 속에 퍼뜩 떠오른 1991년의 사건은 김중배 선생이 사표를 던지고 동아일보를 떠난 일이었다. 김 선생은 그때 이미 "지금까지 언론의 최대의 적은 정치권력이었지만 앞으로는 자본이 될 것"이라고 일갈했다. 물론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꿰뚫어본 선생의 혜안이었겠지만, 그 이후에도 줄곧 한국의 언론은 정치권력의 치맛바람에 묵묵히 고개를 조아려야만 했다.

   
  ▲ 영화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 포스터  
 
그래서였는지 영화는 음모이론을 흘리고 구린내 나는 정치권과 언론계의 치부를 가감 없이 보여주면서도 1976년에 미국인들이 '대통령의 음모'에서 경험한 것과 같은 '왕의 목을 치는' 과단성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검열이라는 전근대적 악습이 서슬 시퍼렇게 살아있던 시절이니 그럴 만도 했으리라. 98분에 지나지 않는 상영시간이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 적절한 수준의 자기검열도 불가피했을 것이다. 틀림없이 잘려 나갔을 많은 장면들 때문에, 영화는 여러 가지 설정과 이야기 전개 과정에서 구체성을 결여하고 있다. 이 영화가 과도기적인 작품으로 평가될 수 있는 건 그런 1991년의 한국 사회가 처해 있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의 경계선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시선으로 정치권력에 맞서는 존재로서의 언론인의 모습을 이만큼 적극적으로 평가한 영화가 없다는 사실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가히 언론의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게 된 지금, 한국 언론은 믿을 만한가. 시대적 소명을 가지고 진실을 말하는가. 정론이니 직필이니 한껏 떠들어대는 언론을 국민들은 신뢰하고 있는가. 시대가 변해도 너무 변했나보다. 방종에 가까운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언론을 향해 정부는 군사독재 시절에도 없었던 아주 특별한 취재제한 조치를 마련해주었다. 하지만, 시대를 거슬러가는 건 결코 '못난' 정부만은 아닐 게다.

KBS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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