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경영개발원(IMD·International Institute for Management Developement) 피터 로랑지(Peter Lorange) 총장의 23일 발언이 대서특필되고 있다. "노사문제와 교육문제가 한국의 국가경쟁력 상승을 막는 주요인"이라는 것이다.

문화일보는 1면 머리기사로 그의 발언을 전했다. 제목은 <"한국 과격한 노사관계 국가 경쟁력 약화시켜"/로랑지 IMD 총장 경총 강연>으로 뽑았다. 헤럴드경제는 2면 머리기사 <"한국노조는 군사적이고 하드코어적" IMD 총장의 쓴소리>에서 관련내용을 보도했다. IMD가 무슨 일을 하기에 이렇게 크게 보도했을까.

   
  ▲ 문화일보 8월23일자 1면.  
 
   
  ▲ 헤럴드경제 8월23일자 2면.  
 
IMD, 1979년부터 세계 각국 경쟁력 현황 분석 발표

IMD는 세계경제포럼(WEF·World Economic Forum)이 운영하는 특수경영대학원으로 스위스 로잔에 있다. 1979년부터 매년 세계 여러 나라의 경쟁력 현황을 분석, 발표하고 있다. IMD가 지난 5월 발표한 2007년도 평가의 총 조사대상은 55개 국가였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지난 94년에는 이 IMD보고서를 둘러싸고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IMD가 그 해 조사한 41개 나라 중 한국이 24위라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1위인 미국의 국가경쟁력을 100으로 할 때 한국은 53으로 개발도상국 18개국 가운데서도 7위라는 게 보고서 내용이다.

그러자 한국일보는 그해 9월8일자 사설 <추월 당하는 국가경쟁력>에서 "충격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경제가 경제성장에 관한 한 세계적으로 상위권에 들어있어 경쟁력도 같은 수준에 있는 것으로 인식해왔다. 그러나 이것이 착각이었다는 것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1991년만해도 싱가포르, 홍콩에 이어 3위였으나 92년에는 대만, 말레이시아에 밀려 5위로 떨어졌고, 93년에는 칠레에 뒤져 6위, 94년에는 태국에 처져 7위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서울신문도 같은 날 사설 <충격 준 우리의 국가경쟁력>에서 "국제적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스위스 민간연구재단인 국제경영개발연구소(IMD)가 최근 발표한 94년 세계경쟁력보고서는 우리에게 큰 실망과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며 "적수로 생각지 않던 말레이시아·태국·칠레 등에도 떨어진 것이라 충격을 더해준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충격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당혹스러움으로 바뀌게 된다. 정부가 보고서가 잘못됐다며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1994년 보고서 소동…파이낸셜타임스, 객관성·신뢰성에 의혹 제기

당시 정부가 IMD보고서를 반박하기 위해 든 근거 중 하나는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 보도였다. 파이낸셜타임스는 IMD보고서에 대해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국가경쟁력보다는 최근의 경제상황을 주로 평가했으며 △평가방법 상의 공정성과 달리 평가 결과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사례가 많고 △설문 회수율이 17.3%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일부 언론은 보고서에 문제가 있었다는 정정 내지 후속 보도 대신 '시비 거는' 정부를 짐짓 나무랐다.

국민일보는 9월12일자 사설 <'경쟁력'에 관한 충격과 시비>에서 "나쁜 소리를 좀 들었다 해서 지나치게 날카롭게 반응하는 것은 보기가 안 좋다"며 "나쁜 소리를 들었을 때는 한 번 더 자신을 들여다보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기상천외'한 논지를 펼쳤다. "물론 IMD의 평가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라고 전제했지만, 며칠 전 기사에서 이런 말은 물론 없었다.

국민일보는 "지금은 우리의 처지와 위상을 우리 스스로 정확히 점검할 때다. 괜히 공연한 시비로 국민을 혼란에 빠뜨릴 일이 아니다"라며 "너무 말만 앞세워 왔다는 것도 이번 기회에 깊이 반성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언론 스스로의 반성이 부족해서인지, IMD보고서 해프닝은 해를 넘겨도 계속됐다.

이듬해인 95년 한국은 26위를 차지했다. 96년에는 27위가 됐다. 한국일보는 "개선은 과오를 겸허하게 수용, 이를 고쳐 나가려는 진지한 노력이 따르지 않는 한 실현되지 않는다"는 문장으로 96년 5월26일자 사설 <떨어지는 국가경쟁력> 글머리를 열었다.

96년도 IMD보고서 조사항목인 국내경제, 사회간접자본, 국제화, 기업경영, 정부, 과학기술, 금융, 인력 등에서 국내경제만 4위이고 나머지 분야는 21위에서 43위까지 중간 이하라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한국일보는 "누가 누구를 나무랄 것도 없다. 어느 부문을 특히 찍어 지적할 것도 없다"며 "그동안 진단과 처방은 무수히 내려졌다. 이제는 실천만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일보가 한 해 전인 95년 9월4일자 칼럼 <국가경쟁력 순위의 허실>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국가 경쟁력의 강화가 단순한 경제지표의 향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질' 전체를 포괄하는 개념이라면 외국 연구기관의 연례보고서 정도에 온 나라가 떠들썩한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다. 중심을 잡는 것도 경쟁력"이라고 한 지적은 잊힌 지 오래였다.

매년 발표순위에 따라 부끄러웠다 기뻤다 반복

해프닝은 계속됐다. 국민일보는 97년 3월26일자 칼럼 <국가경쟁력>에서 "성적표 보기가 겁이 난다"고 털어놓았다.

국민일보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한 국가경쟁력 비교에서 한국은 평가대상 46개 국 중 31위에 마크되어 있다"며 "말레이시아(16위) 태국(28위) 필리핀(30위)에도 뒤지는 성적이다. 이제는 우리가 그들을 배워야 할 입장으로 선후가 뒤바뀌었다. 부끄럽고 슬픈 일"이라고 토로했다. 이 칼럼은 "오늘 정신차리지 못하면 내일은 늦는다"는 명문으로 갈무리 됐다.

우리 언론을 '부끄럽고 슬프게' 만든 이 보고서에 대해 한국일보는 이듬해인 98년 3월25일자 기사 < IMD보고서란?>에서 이렇게 평가했다.

"이 보고서는 한 국가의 경쟁력을 구체적 수치로 평가하기에는 평가기준의 객관성이나 내용의 신뢰성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WEF는 이 같은 비판을 의식, 96년부터는 독자적으로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다."

하지만 그 뒤로도 부끄러웠다 기뻤다 하는 해프닝은 반복됐고, IMD는 국제적인 권위를 인정받다가도 어느새 사설기관으로 전락하기도 했다. 2004년이 되자 10년 전 해프닝과 비슷한 일이 일어났지만 상황은 상대적으로 나아졌다.

2000년부터 2002년까지 국가경쟁력 종합순위 29위를 유지하던 우리나라는 2003년 37위, 2004년 35위로 떨어졌다. 동아일보는 그 해 9월8일자 기사 <한국 노동시장 유연성 세계 44위…대만 싱가포르보다 낮아>에서 "주요 60개국의 해고 및 채용의 용이성, 최저임금 수준 등을 기준으로 각 국의 2004년 노동시장 유연성지수를 조사한 결과 한국은 3.17로 44위에 랭크됐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2004년 이정우 위원장 "객관성 떨어져 비판 수용할 수 없다"

그러자 이정우 당시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은 9월17일 "IMD의 국가 경쟁력 평가는 해당국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한 주관적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객관성이 떨어진다"며 "이를 바탕으로 참여정부 이후 국가 경쟁력이 급격히 떨어졌다고 비판하는 것은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형근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 역시 10월19일자 경향신문 칼럼 <국가경쟁력 순위 '허와 실'>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세계경제포럼과 함께 세계적으로 유명한 국가경쟁력 평가기관으로 국제경영개발원(IMD)이 있다. 필자는 1999년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을 38위로 발표한 국제경영개발원의 평가결과에 대해 설문조사 결과를 제외하고 경제지표 등의 경성자료로만 분석한 적이 있다. 그 결과는 원래의 순위에서 무려 15단계나 상승한 23위로 나타났다.

결국 세계경제포럼과 국제경영개발원의 국가경쟁력 평가보고서는 경제지표 등의 경성자료 이외에도 기업경영인에 대한 설문조사를 활용해 작성됨에 따라 조사의 객관성과 신뢰성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세계경제포럼은 설문조사의 문제점을 인식하여 이들 항목에 대해서는 가중치를 낮게 부여하고 있지만, 설문대상자의 자의성을 통제할 수 없는 근본적인 한계는 여전히 남아있다.

따라서 이처럼 중대한 문제점을 안고 있는 이들 기관의 국가경쟁력 평가결과에 대해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국내 일부 언론은 이에 대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보도하는 경향을 보였다. 일본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임에도 불구하고 세계경제포럼의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지난 95년 4위를 기록한 이래 작년까지 10위권에 올라선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러나 일본 언론이 그러한 결과에 대해 우리처럼 대서특필한 적은 없었다."

2007년 교육부 "42위→29위로 껑충"…순위 오르면 '자랑'

2007년엔 괜찮아 졌을까. 아니다. 게다가 언론만 탓할 것도 아니었다.

정부는 지난 5월 "IMD가 발표한 2007년도 세계경쟁력 평가에서 우리나라는 지난해(32위)에 비해 순위가 3계단 상승하여 총 조사대상 55개국 중 29위를 기록했다. 특히 정부효율성 부문이 지난해 41위에서 31위로 10계단 상승했다"고 밝혔다. 교육인적자원부도 지난달 2일 < IMD 교육경쟁력 42위→29위로 껑충>이라는 보도자료를 내놨다.

IMD보고서 순위가 오르자 이정우 위원장의 지적은 사라진 것이다. 그래봤자 소용없었다. 문화일보는 지난달 25일자 기사 <'선택 2007' 차기정부 10대 어젠다/교육부 권한 축소…학교에 맡겨야>에서 "한국의 교육경쟁력 순위는 29위로 해마다 상승하고 있다. 그러나 대학교육 경쟁력은 세계 40위에 그쳐 고등교육 경쟁력 강화를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한 달 여가 지난 오늘 IMD 로랑지 총장의 발언은 '애정 어린 충고'(헤럴드경제 온라인 기사)로 독자들에게 다가왔다.

지난 1994년 소동을 보고 지금은 고인이 된 정운영 당시 한겨레 논설위원은 그해 9월13일자 칼럼 <꼴찌에게 박수를>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솔직히 나는 그들이 우등으로 채점한 항목에는 불안이 앞서고, 차라리 꼴찌로 평가한 몇몇 항목에는 안심이 되었다"는 것이다.

IMD로 10년이 넘는 소동을 벌여왔기에 IMD보고서와 그 보고서를 만든 책임자의 말을 전하기 전에 이 칼럼부터 꺼내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상략)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이 기관이 배포한 1만6500통의 설문지 가운데 2851장만이 회수된 사실을 근거로 평가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계량이 가능한 객관식 문항이 381개라는데, 그 중 '사회안정'이나 '법률환경' 따위를 어떻게 채점했는지 나로서도 도통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리고 경쟁력이 그대로 국력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더라도, 인구 300만의 싱가포르의 경쟁력이 과연 독일이나 일본에 앞서는지는 실로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의 우승에는 흔히 '리스트럭처링'이라고 불리는 기업재편이 크게 한몫 거들었는데, 그것은 대량해고에 의한 감량경영으로 생산성을 높이는 수법이다. 이 기업재편으로 작년에는 62만명이, 금년 상반기에 벌써 32만명이 직장에서 쫓겨났다. 경쟁력 강화의 내막이 이토록 살벌하다면, 그 1등이 전혀 반가울 것이 없다.

솔직히 나는 그들이 우등으로 채점한 항목에는 불안이 앞서고, 차라리 꼴찌로 평가한 몇몇 항목에는 안심이 되었다. 한국경제의 경쟁력 1위 부문에 수입성향과 근로시간이 꼽혔는데, 최고의 수입성향과 최장의 노동시간은 명예의 상징이기보다는 도리어 수치의 산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41위에는 금융시장, 보호주의, 문화개방이 들어 있다. 금융 조달의 애로는 재벌의 과식과 자금의 만성적 초과수요에 기인하며, 국내금리가 국제금리의 두 배나 되는데도 자금 수요가 여전히 활발한 현실은 사업 의욕이 그만큼 왕성하다는 증거가 된다.

1960년 이래 무역수지가 흑자를 기록한 것이 5개년에 불과하고, 수입성향이 세계 최고에 이를 만큼 열심히 시장을 열었는데, 대체 보호주의가 웬말인가? 무엇보다도 나는 문화 개방이 꼴찌를 한 사실에 크게 안도한다. 어떤 희한한 도구로 '문화의 국제화'를 측정했는지 모르겠으나, 문화의 생명은 개방이 아닌 보호에 있다. 국어보다 영어를 잘하고, 호적등본 외에 외국 영주권을 지닌 그런 '국제인'이 보태는 경쟁력은 사실상 별로 미덥지가 못하다.

그 24위를 사이비 연구기관의 선정적 보도쯤으로 치부하는 것은 정직하지 못하다. 1991년 우리나라가 개도국의 3위에 올랐을 때는 조금도 그 '진실'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디 의연하게 처신하기 바란다.(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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