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권 최대의 의혹사건으로 남은 ‘한보특혜대출비리’는 예상했던 대로 흘러가고 있다. 여야 의원 몇 명과 현정권 고위 관련자 몇 명 끼워 맞춰 구속시킨 뒤 적당히 봉합해 덮어두자는 식이다. 그러다보니 국민들로서는 한보사건이 어떻게 된 건지 앞뒤가 무엇인지 쉽게 납득이 안된다. 황장엽 망명과 이한영 피습사건이 발생하면서 사태는 자연스럽게 전환국면을 타고 있다.이렇게 한보사건이 유야무야되는데 방송을 포함한 언론도 톡톡히 한몫했다. 국민들의 알권리를 위해 뚜렷이 노력한 흔적이 없다. 특히 방송가운데 KBS의 한보 보도는 낙제수준이다.

황장엽 망명이라는 또 하나의 충격적인 사건은 20일 넘게 끌어온 한보사건을 국민의 최대관심에서 한발 물러나게 했다. 검찰수사도 어지간히 진행된 상황에서 검찰은 2월 13일 여야 정치인 3명을 구속하면서 ‘한보사건’을 마무리 국면으로 몰아갔다.

당일 MBC뉴스데스크의 경우 ‘수사속보’에 덧붙여 한보사건의 핵심인물과 주변인물에 대한 법률적용이 거꾸로 됐다는 비판과 외압실체, 뇌물수수 시기, 은행장 혐의 축소 등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검찰수사를 강도높게 비난했다. 다음날도 ‘풀리지 않는 한보의문’ ‘한보특혜의혹’ ‘정관계 수사미흡’ ‘여전한 의혹들-은행장’ 등 검찰수사의 한계와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13일 SBS도 검찰이 의도적으로 한보사건의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고 비교적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13일 KBS 9시뉴스에서는 ‘검찰의 적용혐의’와 ‘사실상 수사마무리’라는 검찰발표 내용을 그대로 전달하고 ‘문어발 경영이 문제다’라는 리포트를 통해 ‘한보사건’이 마치 잘못된 기업경영 풍토에서 비롯된 것처럼 사건의 본질을 축소 왜곡하기까지 했다. 14일에야 ‘의혹해소 미흡’에서 외압실체에 대한 수사가 미진했다는 것과 16일 시민인터뷰를 통해 검찰수사의지가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했지만 뒤늦게 마지 못해 한 것같다.

2월 19일 검찰중간수사발표 때도 MBC가 ‘몸체 의혹’과 시민과 중소기업인 등 각계 7인의 인터뷰를 담은 리포트로 검찰수사를 강하게 문제 삼은 데 비해 KBS의 경우 홍인길 배후실체와 전현직 관련부분 등 이미 언급된 일반적인 비판내용을 나열해 검찰수사에 대한 비판이 훨씬 약하게 나타났다.

2월 15일 발생한 ‘이한영 피살사건’은 황장엽 망영사건과 함께 또 한 번 회오리 바람을 일으키며 ‘한보사건’을 언론의 관심 뒷전으로 물러나게 했다. 더구나 이 사건에 대한 언론보도 태도는 줏대도 방향감각도 없는 듯하다. 2월 16일 MBC뉴스데스크에서는 13꼭지, SBS 8시 뉴스는 12꼭지, KBS 9시 뉴스는 8꼭지의 리포트로 이한영 사건을 집중보도했다. 다음날에는 KBS가 10꼭지, MBC 6꼭지등 전날보다는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큰 비중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방송 3사 모두 경찰발표에 지나치게 치중하다 보니 현장에서 수거한 탄피를 근거로 벨기에제 브라우닝 권총이 범행에 사용됐고 이는 간첩의 소행이라는 식으로 요란하게 몰아갔다. 그러나 18일 권총에 대한 검찰수사의 잘못이 드러나면서 이 사건에 대한 보도도 갈팡질팡했다. 보도의 비중도 현저하게 줄었고 처음에 간첩범행으로 무작정 몰아가던 태도를 바꾸어 ‘단순 형사사건’의 가능성도 점점 강하게 제시됐다.

한보사건에서 이한영 피습사건까지 방송의 접근자세는 능동적이고 주체적이기보다는 별 방향감각없이 관계기관의 발표를 무조건 확대포장했다는 별 성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슬그머니 뒷꽁무니를 빼고 있다. 갈팡질팡한 수사에 언론까지 맞장구치면서 국민들만 혼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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