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3월31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 이후…캘리포니아 와인을 내밀었더니 아내가 웃는 얼굴로 냉동고에서 쇠고기를 꺼내 놓는다. 미국산 쇠고기가 물밀 듯 들어온 뒤로는 쇠고기 값이 절반으로 떨어진 것 같다. 고급인 프라임급 미국산 쇠고기는 오히려 한우보다 맛이 좋다는 평가도 받는다. 오늘도 와인을 곁들인 쇠고기에 하루의 피로가 날아간다."(머니투데이 4월3일자 2면 <포드차 타고 미 쇠고기 만찬…'소비자는 즐겁다'>)

"영등포점에서 꽃갈비살 300g을 구입한 손석천(73.등촌동)씨 부부는 '손주한테 오랜만에 쇠고기 한껏 먹여 보자'고 좋아했다. 미국산 쇠고기의 등장으로 그동안 수입 쇠고기 시장을 거의 독점해 온 호주산 쇠고기 값도 덩달아 내려 소비자의 선택 폭도 넓어졌다.…우리 축산 농가를 염려해 미국산 쇠고기가 싸지만 사먹지 않겠다는 여론이 있다. 광우병 시비로 미국산이 여전히 거북하다는 소비자도 적잖다. 그런 자유가 있듯이 3년7개월 만에 좀 더 값싼 쇠고기를 살 기회를 만난 소비자들의 선택의 자유를 쇠똥 투척으로 빼앗아서는 곤란하다."(중앙일보 7월16일자 취재수첩 <'쇠똥' 세례 당한 소비자 선택권>)

   
  ▲ 머니투데이 4월3일자 2면.  
 
"미국산 소고기가 팔리는 것이 보여준 교훈 하나는 눈여겨 볼만하다. 소비자의 선택권이 '이데올로기 공세'에 흔들리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는 증표이기 때문이다. 개방은 불가피하고, 그 폭이 확대될수록 소비자 이해와 우리 산업계의 이해는 첨예하게 갈리며 논쟁은 더 커질 것이다. 제발 '미국 소 먹으면 뇌에 구멍이 뚫리고 미쳐 죽는다' 같은 자극적이지만, 수준을 의심케 하는 선전전보다는 좀 더 냉정하고, 과학적인 논쟁이 이뤄질 때가 됐다. 이데올로기를 덧씌운 먹거리 논쟁은, 이제 좀 지쳤다."(조선일보 7월26일자 칼럼 <'미국산 소고기 먹으면 미친다'는 그 주장>)

   
  ▲ 지난 7월29일 미국에서 수입된 쇠고기에서 척추뼈가 발견됐다. 척추뼈는 현행 수입위생조건상 광우병 특정위험물질(SRM·Specified Risk Material)로 분류돼 있다. ⓒ농림부  
 
미국산 쇠고기에서 광우병 특정위험물질(SRM)이 들어있는 척추뼈가 발견됐다.

농림부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은 지난달 29일 미국에서 수입된 쇠고기 18.7톤, 1176상자를 검역한 결과 1상자에서 현행 수입위생조건상 광우병 특정위험물질로 분류돼 있는 척추뼈가 발견됐다고 2일 밝혔다. 이에 따라 검역원은 지난 1일자로 모든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검역을 중단했다.

검역 중단은 말 그대로 미국산에 대한 검역 절차만 진행하지 않는다는 뜻의 상당히 낮은 제재단계로 지난해 1월 일본은 미국산 쇠고기에서 척추뼈가 발견되자 수입중단 조치를 취했었다.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등 시민단체들은 "광우병 위험물질이 발견됐는데도 정부는 수입중단 결정이 아닌 검역 중단이라는 애매모호한 결정으로 사태를 얼버무리려 하고 있다"며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즉각 중단하고 필요한 검역조치에 착수하라"고 촉구했다. 아울러 이들은 롯데마트, 이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 유통업체의 미국산 쇠고기 판매 중단을 주문하고 있다.

   
  ▲ 한국일보 8월3일자 3면.  
 
   
  ▲ 조선일보 8월3일자 1면.  
 
3일자 아침신문 중 이 문제를 가장 집중적으로 보도한 곳은 한국일보다. 한국일보는 이날 1면 기사와 사설, 그리고 3면 전면을 할애해 이 문제를 다뤘다. 3면 관련기사의 제목은 <속 타는 미국>과 <속 넓은 한국>이다. 한겨레와 서울신문, 세계일보, 중앙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는 1면과 사설에서 이 문제를 다뤘다. 다른 신문들은 속이 넓은 것일까. 조선일보는 유일하게 1면에 관련기사가 없다.

   
  ▲ 한국경제 8월3일자 사설.  
 
사설은 썼지만 속이 타는 듯한 모습을 보인 곳도 있다. 한국경제는 3일자 사설 <미 쇠고기 뼈 빨리 마무리해야>에서 "이번 기회에 정부 당국은 미국 측에 진상 규명과 함께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를 강력하게 요구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농림부는 이미 2일 오후 이 조치를 취했으며, 이 태도가 문제라는 게 한국일보 등의 지적이다.

한국경제는 이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번 사태를 한·미FTA나 미국산에 대한 수입규제 등과 연계시키려는 일이 일어나서는 결코 안 된다는 점"이라며 "한마디로 위생 안전 검사 과정에서 미국 측과 감정적으로 대립하거나 이를 한·미FTA반대운동의 빌미로 삼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광우병 통제보다 미국과 감정적으로 대립해선 안 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지금껏 일부 언론은 소비자 선택을 중요시 해왔다. '먹기 싫은 사람은 안 사먹으면 된다'는 주장 앞에 '일단 들어오게 되면 학교·병원 등 대형시설 급식에 섞여 들어갈 수밖에 없어 자신도 모르게 먹게 된다'는 우려는 중요하지 않았다. 한겨레나 한국일보, 프레시안의 지적은 대세를 거스르는 목소리였을 뿐이다.

   
  ▲ 한국경제 7월16일자 사설.  
 
물론 FTA 덕분에 고기맛 좀 보겠다는데(< FTA 덕분에 고기맛 좀 보겠네> 헤럴드경제 7월24일자 사설) 판매방해와 같은 국기문란행위(한국경제 7월16일자 사설 <미쇠고기 판매방해는 국기문란행위>)를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손주한테 오랜만에 쇠고기도 한껏 먹여야 하는데 먹거리 논쟁에 이데올로기를 덧씌우면 이제 좀 지치는 것도 사실이다. 2012년 3월31일이 되면 아내가 내놓은 프라임급 미국산 쇠고기에 피로가 날아간다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자신에게 유리한지 불리한지를 따져서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장은 지난달 26일자 파이낸셜뉴스 칼럼에서 미국산 쇠고기와 이랜드 비정규직 문제를 다루면서 소비자 선택과 경영진 고유권한을 존중해야 한다는 논지를 펼쳤다. 그의 논지에 이견은 있을 수 있어도, 부정할 수 없는 한 가지는 아래와 같은 주장이다.

"한 사회가 경험하는 갈등은 미봉책이 아니라 기본 상식이나 원칙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검역 중단이 옳은지 아니면 수입 중단이 옳은지, 아직도 소비자 선택만 중요한지 광우병 위험 앞에 일부 언론의 기본 상식과 원칙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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