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에 억류된 한국인 인질 구출작전이 개시됐다는 보도는 믿기 어려운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이를 보도한 대다수 한국 언론의 자체 취재력이 제한돼있는만큼 로이터통신 등 외신을 인용하여 보도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로이터통신 등이 '오보'를 바로 인정했기 때문에 구출을 위한 군사작전은 애초부터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 언론은 이번 사건 초기부터 '몸값' '협상시한 이틀 연장' 등 오보를 반복해왔다. 이런 오보는 현지 특파원이 없고 정보 접근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또한 청와대나 외교부는 늘 '확인중'이라는 답변만 하는 답답한 상황에서 외신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현실성이 분명히 있다. 한국언론이 외신보도에 춤을 추며 오보와 정정을 되풀이하는 사이 억류된 한국인들의 가족과 친지들, 국민은 이런 보도에 일희일비하며 피를 말리는 고통과 긴장을 거듭하고 있다.

한국 언론의 외신 의존에 따른 오보를 탓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러 의도한 것도 아니고 신속한 정보를 서비스하려는 충정에서 나온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속보성 내용보다 자체 한국인 기자들의 분석이나 해설기사에서 더 큰 문제점을 보게 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중앙일보의 군사전문기자가 작성한 8월1일자 기사다.

   
  ▲ 중앙일보 8월1일자 6면  
 
중앙일보 6면 <속 끓는 한국군>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전문가들은 특전사 2개 여단(2000명)과 해병 1개 연대, 보병 및 지원 병력 등으로 구성된 작은 사단급(1만명 이하)이면 충분할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탈레반 무장 세력이 정규군이 아니라 게릴라식으로 분산돼 있기 때문에 특전요원이 정확한 정보를 갖고 타격을 가하면 승산이 크다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군사전문기자가 작성한 기사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의 수준이하의 보도였다.

이 기사는 기본적으로 기사의 신뢰성을 의문시하도록 모든 부분에 걸쳐 익명의 취재원 '군관계자'를 인용하여 보도하고 있다. 기밀을 요하거나 취재원 공개시 불이익이 예상되는 내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군관계자'라는 모호한 익명의 취재원을 남발하며 기사를 이어가고 있다. 전문기자가 아니라 일반기자의 기사도 이런 식은 곤란하다. 심지어 한국군을 띄워주는 데에도 익명의 취재원을 동원했다. 이번에는 '군 관계자'가 아니라 '군 고위 관계자'로 바뀌었을 뿐이다.

"군 고위 관계자는 '한국군은 전세계에서 각개(개별)전투를 가장 잘하는 군대라고 평가받는다'고 말했다." 여기다 군사전문기자는 "한국전쟁을 전후한 빨치산·공비 토벌에다 베트남전 참전 경험 등을 갖췄기 때문이다"라고 해설을 덧붙였다.

내용으로 들어가보면 더욱 문제투성이다. 이처럼 '각개전투를 세계에서 가장 잘하는 한국군'이 파견만 되면 '인질을 구출해낼 수 있는 것'처럼 호도하는 보도는 위험천만이다. 한국군 파견을 통한 무력해결을 조장하고 또 다른 한국인들의 희생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무력으로 해결될 수 있었다면 러시아군이 1989년 아프간에서 철군 결정을 내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또한 2001년 미국이 일방적으로 군사침략을 감행한 이후 수십만의 군사력을 집중하고도 소탕하지 못한 탈레반이다. 한국군이 가서 단기간에 탈레반을 무찌르고 한국 인질들을 구해올 수 있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만화에서나 가능할 법하다.

또한 논리적으로도 말이 안 되는 기사를 작성했다. 군사작전을 감행하게 되면 탈레반은 모든 인질을 살해하겠다고 수차례 공언했다. 한국인 인질이 모두 죽은 뒤 탈레반을 무찌르게 될 경우 한국에 무슨 실익이 있는가. 이것은 가능하지도 않는 시나리오다. 우선 인질이 어느 곳에 있는지 위치파악 정보조차 없다. 한국 특전사가 아프간에 가서 어디를 향해 '돌격앞으로' 해야 할지 상상이나 해봤는가. 게다가 이런 자신감도 표현했다.

"현지 사정에 밝은 아프간 정부군의 협조에다 미군의 정보력과 기동력(헬기와 장갑차), 화력(야포와 공군)의 지원을 받으면 우리 특전부대가 단독으로 소탕 작전을 할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현지 사정에 밝은 아프간 정부군'을 높이 평가하고 미군의 '정보력과 기동력, 화력의 지원'을 전제로 했다. 우리 군이 없더라도 아프간 정부군과 미군의 합작으로 왜 지금까지 전쟁을 끝내지 못하고 연일 희생자가 나오는 준전시상황일까. 한국군과 미군 사이에 그렇게 의사소통이 원활히 이루어지고 아프간 정부군의 현지사정이 기대만큼 성과를 낼 수 있을까. 한국군을 과소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아프간 현지상황에 대해 무지한 해설기사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무력도발에 무력해결을 부추기는 듯한 군사전문기자의 의식이 문제다. 물론 우리의 무고한 국민이 생명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에 심정적으로 충분히 공감이 가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공신력있는 언론사의 전문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겨야 할 군사전문기자가 또 다른 한국인의 인명희생이 불을 보듯 훤한데 이런 함량미달의 기사를 작성한다는 것이 안타깝다는 것이다.

이번 인질사건보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일본의 NHK, 교도통신 등을 보고 반드시 참고해야 할 것이 있다. 한국 언론은 상황이 발생하면 비로소 분쟁지역에 기자를 갑자기 특파하는 식이다. 그런 식으로 보내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일본 기자들은 몇 년째, 몇 달 째 상황을 추적하며 고급 취재원 등을 이미 확보해두고 신빙성있는 채널을 가동하고 있다.

또한 현지에 보내는 기자들도 '영어가 되니까 네가 가라' 식의 주먹구구로 보내는 것은 의미가 없다. 아프가니스탄 같은 곳에서 영어는 무용지물이다. 물론 2차 정보접근은 영어를 통해 가능하지만 현지어, 현지문화와 역사 등에 정통한 기자가 가야 한다. 그런 기자가 없다면 키워야 하고 투자해야 한다.

한국의 전문기자라는 타이틀의 남용은 한 방송사에서도 확인됐다. 불과 8개월여만에 방송위원회 보도교양심의위원회는 취재원의 홍보에 경도된 기사를 반복해서 내보낸 모 방송사의 전문기자에 대해 징계를 내렸다. 전문기자가 윤리성과 전문성 차원에서 일반기자보다 못하다면 이는 독자나 시청자를 기만하는 상업적 목적이 될 뿐이다. 기자는 자신의 기사에 책임을 진다는 자세가 절실하다.

아프가니스탄 사태와 관련한 전문기자의 보도는 인질을 무사히 구출해내는 데 초점이 맞춰줘야 한다. 모든 전문기자의 노력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독자나 시청자들이 전문기자라면 좀 더 신뢰성을 부여하는만큼 그에 걸맞는 전문성과 윤리성을 갖춰달라는 주문이다. 감정적인 접근이나 또 다른 희생과 분쟁을 야기하는 쪽으로 여론을 조성하는 것은 일종의 언론의 횡포가 될 것이다.

   
 
 
김창룡 교수는 영국 런던 시티대학교(석사)와 카디프 대학교 언론대학원(박사)을 졸업했으며 AP통신 서울특파원과 국민일보 기자, 한국언론재단 연구위원 등을 지냈다. 현재 인제대학교 언론정치학부 교수 겸 국제인력지원연구소 소장으로 재직중이다. 1989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1991년 걸프전쟁 등 전쟁 취재 경험이 있으며 '매스컴과 미디어 비평' 등의 저서와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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